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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한혜진: 목욕탕의 여인들
에피소드 & 오브제 (22) 동생네 목욕가방
목욕탕의 여인들
Le Pho, The Three Bathers, 1938
몇달 전 서울 방문 때의 일이다. “ 언니, 내일 목욕 갈래?” 토요일 저녁 걸려온 전화는 동생한테서 온 것이었다. 서울에 도착했으면 마땅히 목욕부터 해야 한다는 투였다. 동생은 일요일 아침 약속한대로 일찌감치 나를 데리러 왔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붓듯이, 첫물에 목욕하자며. 차 안에는 동생 말고도, 조카 두 명이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며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보니 일요일은 그네들의 목욕가는 날이었다. 오늘은 새삼 미국에서 온 이모가 끼어든 셈이었다.
목욕탕은 건물의 이층에 있었다. 옛날보다 신식이겠구나 싶은 예감은, 요금 창구에서 삐죽이 내미는 주인 아저씨의 얼굴을 보자 싹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한쪽으로 열린 미닫이 문 사이로 우리는 요금과 옷장 열쇠를 주고 받았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수건 두장씩을 끼워주는 것이었다. 기계적으로 신장에 신발을 넣고 #7이라는 열쇠의 번호와 같은 번호의 옷장을 찾아내었다. 서슴없이 옷을 벗고 있는 조카애들을 보면서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나의 주변을 휘둘러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여러 사람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것에 겸연쩍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 상황이 내가 경험했던 어떤 시점을 떠오르게 했다. 그걸 유식한 말로 데자부라고 하던가? 이건 예전엔 밥먹듯이 하던 일이었다. 그것도 주말이면 언제나, 엄마랑 또는 동생이랑. 그러나, 미국에 살게 되면서 느긋한 목욕하고는 거리가 점점 멀어졌었다. 정신차리기 위해서 하는 것처럼, 아침에 샤워 한방이면 족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나는 내가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끼며, 벗은 옷을 옷장에 던져 넣었다.
Camille Pissarro, Bathers Seated on the Banks of a River, 1901
탕은 모두 네개였다. 동생과 나는 반신욕탕에서부터 시작했다. 마치 뜨거운 온돌 방에 앉아 있는 것처럼 따듯하고 아늑했다. 반신욕은 건강 뿐만아니라 대화나누기에도 안성맞춤인듯 했다. 동생이 꺼낸 이야기는 이랬다. 언니가 그냥 내내 서울 같이 살았으면 어땠을까? 무남독녀 외아들에게 시집간 그 애는 단촐한 시집에 신경쓸 것이 하나도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외로워 보였다. 열기가 머리 끝으로 서서히 올라왔다. 나가서 찬물로 샤워를 마치자 동생은 사우나방에 들어가서 누워 있자고 했다. 아침 6시부터 서둘러 나온 참이라, 다시 반 시간쯤 누워있자니 피곤이 절로 풀리는듯했다.
조카가 갖고 들어온 삼각 비닐팩의 커피우유는 미국 어느 호텔의 룸서비스와 견주어도 될 만했다. 빨대를 쭉쭉 빨아올리면서 우리 넷은 서로 눈을 맞추고 있었다. 홀라당 벗고 앉아서, 볼 것 다 본 사이 우리는 감출 것이 없어 보였다. “친해지려면 같이 밥을 먹어라.”라고 말하지 않는가? 더 친해지려면 같이 여행을 가라. 등등. 나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어졌다. “같이 목욕을 하면 미워할 수 없다”고. 사실 정이란게 무엇인가? 살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 그 자리에 남는 안온함 그리고 허전함이 아니겠는가?
우유를 마시고 난 우리는 물찬 제비처럼 사우나를 벗어나서, 목욕탕 벽을 따라 설치된, 샤워기가 붙은 수도꼭지 앞에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자리는 여유가 있었다. 열심히 비누칠을 하는 사람, 머리를 감는 사람, 이태리 타월로 때밀기에 한창인 사람. 순서는 각자가 알아서 정하되 대충 그렇게 몸을 씻으면 되는 것이었다. 동생은 화장품 살 때 사은품으로 받은 것같은 비닐 가방에서 삼푸랑 비누랑 이태리 타월이랑 꺼내서 나와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먼저 삼푸를 받아든 나는 다시 목욕가방 안을 살펴 보았다. 그 밖의 것들이 무엇이 있나 싶었다. 뒷꿈치를 정리하는 돌, 샘플 사이즈의 기초 화장품 몇 개, 그리고 바디 스프레이가 제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자처럼 얌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들 나름대로 한 식구가 되어 목욕을 올 때마다 동생네와 동행이 되어주는 동반자였다.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The Valpinçon Bather, Oil on canvas, 1806, Louvre, Paris, France
우리는 가끔은 온탕을 들락거리기도 하면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소홀함이 없도록 씻기작전에 충실했다. 사실 동생은 묵은 때를 벗기라고 때밀이 언니한테 반약속은 해놓은 모양이었지만, 나는 그냥 조카들과 나란히 앉아서 도란도란 때를 밀고 싶었다. 목욕의 하이라이트는 등밀기이다. 등밀 때가 되면, 목욕은 어느 정도 끝이 나있는 셈이다. 내가 먼저 동생에게 등을 맡겼다. 등을 안밀면 목욕은 하나마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 시원했다.
동생의 등을 마주 대할 때, 사람의 등짝에도 표정이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모나리자 그림을 마주했을 때처럼, 경이롭게도 무표정의 하얀 살집속에 들어있는 세월의 두께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일이었다. 인간의 뒷모습, 그것도 옷이라는 표피가 벗겨진 적나라한 등가죽은 무언의 스테이트먼트를 던지고 있었다. 벌거숭이로 태어나, 가슴을 포개고 등을 맞대며 사는 일이 인간의 삶이 아니던가? 등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의 무리를 우리는 가족이라 불러왔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딸의 등을 토닥이고, 딸이 엄마의 푸근한 어깨에 손을 올려 놓을 수 있는 곳, 목욕탕의 온기는 따뜻한 물의 수증기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시 옷을 차려입은 조카들의 뺨은 복숭아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함께 목욕을 한다는 것은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에 올라 탄 나는 옆에 놓여진 목욕가방을 다시 물끄러미 쳐다보게 되었다. 물기를 머금은 채로 얌전히 놓여 있었다. 엄마와 딸들을 이어주는 완벽한 소통창구… 다음 번 출동을 위해서 그것들도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반쯤 차창을 열었다. 아침의 맑은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휘날리는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과일향의 삼푸냄새가 싱그러웠다.
한혜진/수필집 '길을 묻지 않는 낙타' 저자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 결혼, 1985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한양마트 이사로 일하면서 김정기 시인의 권유로 글쓰기와 연애를 시작, 이민 생활의 균형을 잡기위해 시와 수필을 써왔다. 2011년 뉴저지 리지필드 한양마트에 갤러리1&9을 오픈, 한인 작가들을 소개했으며, 롱아일랜드 집 안에 마련한 공방에서 쥬얼리 디자인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