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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
2016.01.27 01:33

(154) 스테파니 S. 리: 그녀 생애 마지막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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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 (6) 아름답게 나이 들기


그녀 생애 마지막 전시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 에서 노인이 한 말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가지 않는 구절이라 기억에 남았고, 나이가 들어가니 생각해볼수록 짙은 여운이 남아 잊혀지지 않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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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ie S. Lee, Time I, 2013, Color &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15 ½˝ (H) x 15 ½˝ (W) x 2 ¾˝ (D)



즘의 나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 몹시 두렵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에 가속도가 붙는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절절이 체감한다. 아직 보고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못다한 일들도 참 많은데…

이제서야 노을이 아름답고, 낙엽도 눈부시고, 뭔가를 제대로 보고 느끼기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야 나도 뭔가 근사한 일을 한번 시작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시간이 모자란다. 너무나도 빨리 흘러가버린다.  대체 얼마나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여야 시간의 흐름앞에서 저런 여유가 나오는 것일까…


요근래 접한 일련의 일들도 나이듦에 대해 부쩍 더 생각하게 만든다. 

집 근처에서 오픈하우스를 하기에 재미삼아 구경을 갔는데 방방마다 물건들이 꽉꽉 차 있었다. 옷장의 옷들이 죄다 나와 침대위에 있기에 이 집 주인은 어디로 이사를 가는거냐 슬쩍 물었더니 돌아가셨다고 했다. 오랫동안 거동이 불편해 정문 계단은 쓰지도 못하시고 지하 주차장을 통해 출입하셨다고 하는데, 긴 시간 아팠으면 인생을 정리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을텐데 그 사이 이 많은 짐들을 왜 정리하지 않으셨던것일까. 하필 집의 위치가 우리집 선상이랑 같아 번지수까지 똑같은 이 집의 짐들이 우리집에 쌓인 짐들같기도 해 내 마음을 몹시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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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hanie S. Lee, Death I, 2013, Color &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13 ¼˝ (H) x 13 ¼˝ (W) x 2 ¾˝ (D) 


마전, 개인전을 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화를 받고 90세 화가 할머니의 집을 방문했다. 이메일도 못하시고, 문자로도 소통이 불가능하시다고 집으로 방문해서 그림들을 봐 주면 안되겠냐 하셔서 짜증반 기대반으로 찾아갔다. 예상대로 짐이 꽉 찬 어두컴컴한 집에 혼자 계셨다. 다리가 불편해서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하시는 분이 문을 열어주기 위해서 약속시간 즈음부터 문 어귀에 서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듯했다. 퉁퉁 부은 발목으로 목발을 짚고 1층 구석구석 쌓인 본인의 소장품과 옛 작품들을 보여주며 91살이 되는 내년에,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의 작품들과 본인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를 하고싶다고 하셨다.  


다리가 불편해 윗층엔 올라갈 수가 없다시며 나혼자 올라가서 그림을 보고 오라 하셨다. 올라가보니 돌아가신 남편 침실엔 이불까지 아직 그대로다. 한참동안 사람의 출입이 없었던듯한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먼지 쌓인 낡은 그림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자니 이 집에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스산해졌다. 그래도 다행히 작품들엔 힘이 있었다. 지금 상태로 봐선 91세까지 살아 계실런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걱정이 되는 모습인데도 작은 그림 하나하나까지 다 보여주시며 애정을 보이시는 모습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져서 조금 덜 슬퍼졌다. 


만약 이 전시가 이루어진다면 생의 마지막 전시가 될지도 모르는 것인데 불편한 몸으로 부엌옆 방에서 부서져내린 남편의 조각작품을 흙으로 보수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뭔가 무거운 사명감과 함께 복잡한 기분들이 교차되었다. 전시에 쓸 본인의 사진이 있냐고 했더니 서랍에서 사진 한장을 뒤져 건내주시는데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 볼 수 없는 40대 정도쯤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받아보는데 마음이 늙는 속도가 몸이 늙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것이 왠지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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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phanie S. Lee, Death, 2013, Color &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17 ½˝ (H) x 21 ½˝ (W) x 2 ¾˝ (D)



손으로 가기 뭣해서 가는길에 롤케잌을 사다드렸다. 몹시 좋아하시더니 냉장고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사진들 중에 있는 손녀가 소포로 보내준 빵이라며 굳이 괜찮다는 나에게도 빵을 한조각 싸주신다. 냉장고 안에서 랩도 없이 며칠간 들어있었던듯한 빵을 먹을 용기는 나지 않았으나, 그 마음만은 젊었고, 고마웠다. 젊은 시절 사진과 함께 빵을 받아들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겁기도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따뜻해졌다가 이내 슬퍼지기도하며 어느 한 쪽으로 단정지을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들도 나중에 내 발로 올라가지도 못하는 2층 어느 구석에서 먼지와 함께 쌓여 있으면 어쩌나, 90이 넘은 나이에 나라면 개인전을 할 마음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거동이 불편한 채 혼자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아직 당해보지 않아 알 수 없는 일들, 하지만 언젠가 나에게 다가올 일들…


나도 이제는 어떻게 잘 살지보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지, 얼마나 아름답게 늙어가야 할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러니 시간이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노인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늘 자각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어쩌면 욕심을 내려놓고 몸과 함께 마음도 늙어버리는게 더 나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이런저런 생각에 묘한 기분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분명한 것은 사는 날까지는 건강한 상태로 지낼수 있도록 몸을 관리해야겠다는 것, 물건은 최대한 정리하며 간소하게 살아야지 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째깍째깍....



Stephanie_100-2.jpg Stephanie S. Lee (김소연) / 화가, 큐레이터 
부산에서 태어나 예술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프랫인스티튜트 학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후 맨해튼 마케팅회사, 세무회사, 법률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딸을 출산하면서 한동안 전업 주부생활을 했다. 2010년 한국 방문 중 우연히 접한 민화에 매료되어 창작민화 작업을 시작했다. 2014년 한국민화연구소(Korean Folk Art)를 창설, 플러싱 타운홀의 티칭아티스트로 활동하며,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http://www.stephaniesl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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