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Spotlight) ★★★★, 신부들의 어린이 성추행 폭로한 멋진 기자들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수상 독립영화정신상 5개 부문 석권
Why did it take so long?
Spotlight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인간과 인간들(=사회) 관한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가'와 '사회는 얼마나 부조리한가'라는 두가지의 화두로 요약된다는 것. '이야기 공장' 할리우드는 인간의 고독을 해결하기 위해서 러브 스토리와 코미디를 제작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폭로하기 위해 영웅주의 SF 액션이나 스릴러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할리우드의 절대법칙은 해피 엔딩이다. 남녀가 결혼하거나, 정의가 악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결말, 즉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마무리짓는 것이다.
Photo: Boston Globe
2003년 퓰리처상 공공봉사상을 수상한 보스턴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 팀과 마티 바론 편집국장(오른쪽에서 두번째).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는 보스턴의 신문사 보스턴글로브 기자팀이 천주교 신부의 어린이 성추행 사건이 지속적으로 은폐되어온 사실을 폭로하는 과정을 담은 스릴러다. 스포트라이트는 심층취재를 전담하는 부서. 매일 마감에 시달리는 기자들에 비하면, 특혜받은 부서다. 보스턴글로브는 2003년 이 시리즈 특종기사로 '언론계의 노벨상'이라할 수 있는 퓰리처상의 최고상인 공공 봉사상(Public Service)을 거머쥐게 된다.
Spotlight
'성역'으로 여겨지는 성당의 신부들이 오랫동안 수많은 소년들을 성추행해왔고, 교구에서 이를 기술적으로 은폐해왔다. 그리고 신부와 피해자, 성당의 합의 기록을 담은 법률문서는 밀봉되어 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내용은 가볍게 달콤한 여정을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와는 달리 씁쓸하고, 분노를 치밀게 만드는 무거운 스토리다.
하지만, 결론은 통쾌하다. 인권을 유린한 교회권력을 폭로하고, 성추행 피해자를 위로하며, 보다 나은 사회로의 개혁을 촉발시키는 기자들의 용기와 진실에 대한 집요함, 그리고 언론의 파워에 대해 다시 경의를 표하게 되는 영화다.
*스포트라이트 예고편
https://youtu.be/56jw6tasomc
All The President's Men
'스포트라이트'는 1976년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의 워터게이트 폭로 사건을 다룬 영화 '모두가 대통령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을 떠올린다. 더스틴 호프만(칼 번스타인 역)과 로버트 레드포드(밥 우드워드 역)가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던 민주당 본부에 도청한 것을 폭로함으로써 사임에 이르게 한 사건을 그려 찬사를 받았다. 워싱턴포스트와 보스턴글로브에 관한 걸작이 나왔는데, 뉴욕타임스의 혁혁한 보도에 대한 영화는 언제? 그것이 궁금하다.
마이애미헤럴드 출신 유대인 편집국장 마티 바론(리브 슈라이버 분)은 서부극의 영웅같은 아웃사이더이지만, 영웅화하지 않는다.
편집국장 역으로는 너무 어린듯 하지만... 실제 마티 바론은 워싱턴포스트의 편집국장으로 스카웃됐다.
보스턴은 아이리쉬 카톨릭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도시. 보스턴글로브 기자들도 대부분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들이다. 아무리 매일 새로운 뉴스를 취급하는 하루살이 신문사의 기자들도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우며, 기득권에 동조하기 십상이다. 여기에 매일 마감에 시달리지 않고, 몇개월 동안 심층적으로 취재할 수 있는 기자단이 스포트라이트팀.
이 스포트라이트팀에 심층탐사 보도를 지시하는 것은 마이애미 헤럴드에서 새로 부임한 편집국장 마티 바론(리브 슈라이버 분)이다. 그가 천주교도가 아니라 유태인이며, 보스턴 출신이 아니라 마이애미에서 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바론은 보스턴에 팽배해있던 성당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이 은폐되어왔음을 발견하고 스포트라이트팀에 집중취재를 지시한다.
Spotlight
아웃사이더가 한 마을에 등장해서 악당을 분쇄하는 내러티브는 할리우드 서부영화 게임의 법칙이다. 또한, 유대인 리더가 카톨릭 사제들의 범죄를 폭로하는 이야기는 할리우드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 제작자들의 취향에도 맞았을 법하다. 성추행 스캔달을 전 세계에 폭로하게 촉구한 편집국장 바론 역의 리브 슈라이버는 너무 젊어보이지만, 감정이 동요하지 않는 절제된 연기가 돋보인다.
그가 요구한 것은 개개 신부와 개개 피해자의 스토리가 아니라 '시스템'이었다. 즉, 피자 한조각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전체의 진실을 물고 늘어지게 만든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자였던 필자에게는 엔돌핀 주사처럼 느껴졌다.
스포트라이트팀장 마이클 키튼과 기자 레이첼 맥아담스. Spotlight
스포트라이트팀의 리더 로비 로빈슨으로 분한 '버드맨' 마이클 키튼의 미세한 주름 속의 연륜있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여기자 사샤 파이퍼 역의 레이첼 맥아담스는 촌스러울 정도로 소박한 진짜 기자 패션과 취재수첩을 쥐고, 총명하게 반짝이는 눈매로 기자의 모습을 진실하고, 매력있게 담아냈다.
마크 러팔로의 메소드 연기? 마이클 키튼의 젠(zen) 연기보다 돋보였다. Spotlight
어수룩해보이며, 덜렁거리지만, 형사처럼 치밀한 직감력과 발동력을 지닌 스포트라이트 기자 마이클 레젠데스(마크 러팔로 분)는 변호사 미첼 가라베디안(스탠리 투치 역)에게서 결정적인 은폐서류에 대한 단서를 찾아낸다. 가라베디안은 아이리쉬도, 카톨릭도 아닌 아르메니아 출신이었던 것. 영화에서 몸 전체로 연기한 러팔로와 안경 뒤의 눈매로 말하는 투치의 대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연기파 배우들이 기자들의 생리를 절묘하게 포착하며 앙상블 연기를 하는 것이 '스포트라이트'의 재미이기도 하다.
아르메니아 출신 변호사 스탠리 투치. 아웃사이더이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2003년 데뷔작으로 철도를 사랑하는 난쟁이 아저씨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 '스테이션 에이전트(Station Agent)'를 연출한 토마스 맥카시 감독은 편집국장을 영웅화하지 않았다. 진실을 추적하는 개개 기자들과 신문사의 시스템, 성추행 피해자들, 그리고 성역을 지키려는 카톨릭 신부들, 변호사들을 균형있게 다루고 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저널리즘의 기본 철학인 공정하고, 객관적인 드라마가 된 것이다.
신부들의 어린이 성추행을 합의시킨 능구렁이 변호사, 자료는 묻어두었다. Spotlight
하워드 쇼어의 음악은 절제되면서도 스릴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성가대 어린이들이 "고요한 밤, 거울한 밤"을 부르는 장면이다. 성스러워야할 교회에서 신부의 욕정으로 인해 순수성이 부서지고, 박탈당하게 되었던 수많은 소년들의 노랫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성추행 피해자
열한살 때 성추행을 당했던 필 사비아노(닐 허프 분)는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기자에게 말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신부가 관심을 보여주면, 굉장한 일이었다. 어떻게 신(God)에게 '싫다(No)'고 할 수 있겠나?"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수많은 어린이들이 가장 안전하고, 성스러워야할 교회당 안에서 기이한 성적인 체험을 했다면, 그후 어떤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될까? 분통터질 일이다.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는 취재중 신부의 6%가 성추행을 했을 것이라는 제보를 받고, 마침내 87명의 신부를 찾아낸다. 2002년 1월 윤전기가 돌아가고, 신문이 발행되어 보스턴 신부들의 성추행과 교구의 은폐 사실이 폭로된다.
성당의 섹스 스캔달과 교구의 은폐사실이 마침내 인쇄되고, 배달되고, 보스턴글로브의 편집국. 스포트라이트 부서의 기자들은 피해자들의 제보 전화를 받고 있다. 여기서 영화는 끝난다. 멜로드라마식의 영웅 만들기나 샴페인 터트리기는 없다. 이 영화의 강점이다.
스포트라이트의 특종
보스턴글로브의 건물 밖에 AOL 광고판이 종이신문에서 인터넷 뉴스로의 전환기를 예고했으며, 이와 맞추어 신부 성추행 스캔달은 인터넷을 통해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이후에도 스포트라이트팀은 249명의 신부와 1000여명의 피해자를 밝혀냈으
며, 600여건에 걸쳐서 팔로우업 기사를 실었다. 피해 어린이 중에는 네살 짜리도 있었으며, 어느 피해자는 자신의 아들이 교
회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나오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신부의 희생양이 된 것.
버나드 로 추기경의 사임
130여명을 성추행한 존 게이건 신부
폭로기사 후 성추행을 은폐하면서 사제들을 병가(sick of leave)로 교구 이전을 시켜온 로 추기경은 마침내 사임했다. 또, 30년간 6교구를 옮겨다니면서 130여명의 어린이를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난 존 게이건 신부는 기소되어 9-10년 구형받았다가 동료 죄수에게 살해됐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토론토영화제에서 출연진과 기자들
영화 중 기억에 오래 남는 대사를 꼽으라면, Why did it take so long?일 것이다.
교구의 은폐, 피해자와의 비밀 합의, 변호사의 침묵, 신문사의 묵인... 피해자들의 부서진 인생을 주워 담기엔 너무나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 영화가 그들에게 치유가 되며, 세상 곳곳에서 가해자들이 자각하고 자제하기를... '스포트라이트'는 또한, 기자를 꿈꾸는 이들, 기자라는 직업이 궁금한 이들에게 멋진 기자들의 초상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이어지는 시위
퓰리처상 위원회는 2003년 보스턴 글로브의 "비밀을 꿰뚫고, 지역사회, 전국, 그리고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교회의 변화를 야기시킨 용기있고, 해박한 보도를 치하하며 공공사회 서비스상을 수여했다. 이후로 세계 곳곳에서 교회는 물론, 보이스카웃, 스포츠팀, 합창단 등지에서 아동 학대와 성추행 고발이 이어졌다.
Photo: Bernd Weissbrod/EPA
그리고, 2016년 1월 8일 뉴욕타임스에서는 독일 바바리아의 레겐스부르거 돔슈파첸 소년 성가대에서 지난 40여년간 최소한 231명의 어린이들이 폭행, 고문 및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이 성가대는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형인 라칭어 신부가 30년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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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포트라이트'는 할리우드에는 불편한 영화일지 모른다.
할리우드 외신 기자단 80여명이 선정하는 골든글로브상 최우수 영화상, 감독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했다. 연예부 기자들이 심층보도-사회부에 열등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 감독, 각본, 편집, 여우조연(레이첼 맥아담스), 남우조연(마크 러팔로)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평균연령 63세, 백인 94%, 남성 76%의 분포를 지닌 아카데미 회원들은 신부들의 섹스 스캔달보다는 대하 드라마를 선호한다. 할리우드 파워 엘리트에 유대인이 많고, 보스턴 신부들의 성추행을 폭로하게된 결정적인 계기는 유대계 편집장이었다는 것이 유리할지는 몰라도.
수상과는 상관없이 '스포트라이트'는 지난해 본 영화 중 가장 통쾌하고,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다.
스포트라이트 상영관@REGAL UNION SQUARE STADIUM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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