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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이수임: 산꼭대기 아들과의 일주일
창가의 선인장 (32) 어미의 마음이란
산꼭대기 아들과의 일주일
Soo Im Lee, 11/25, red house, 1993, 5.75 x 5.75 inches
어릴 적 아이는 엄마인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내 손을 꼭 잡고 걸으며 잘 따라 주었다. 지난번 일본에 사는 아이를 보러 갔을 때 나도 아들이 하자는대로 손을 꼭 잡고, 일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둘러봤다. 그리고는 아이가 사는 곳에서 일주일 머물렀다. 사랑하는 아들과 한 공간에서 함께 한다는 즐거운 상상은 상상만으로.
아이는 시골, 아니 산골, 양쪽에 강을 끼고 있는 산꼭대기에 살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별이라도 딸 수 있는 하늘 밑, 벌레 소리, 그야말로 적막강산인 곳에서 출가한 스님처럼 지냈다. 남향의 거실엔 종일 햇빛만 서성거릴 뿐 아무 것도 없었다. 다다미방인 침실엔 두꺼운 요가 깔려 있었다. 내가 온다고 기억자 식으로 요를 하나 더 깔아놨다.
"엄마 울어?"
"아니 너 어떻게 이런 산중 절간같은 곳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니?"
"뉴욕에 가자."
"뉴욕도 살기 나름으로 외로운 곳이에요. 전 조용히 혼자 있는 것이 좋아요. 뉴욕은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잖아요."
아이는 배가 고프면 소리없이 간단히 챙겨 먹은 후 자전거를 타고 일하러 갔다. 집에 와서는 컴퓨터를 한다거나 책을 봤다. 어미는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책만 읽는 아이에게 쓸데없이 말을 걸거나 부엌에 나가 덜커덩덜커덩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다다미에 누워 잠이나 잘 수밖에. 어떻게 그리 오랜 시간을 푹 잘 수 있었는지! 여독은 말끔히 풀렸다.
집에서야 남편 눈치 보지 않고 쓸데없는 말도 하고 잡소리도 내며 내 마음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아들 집이라고 아이가 싫어하는 짓을 하지 않으려니 없는 듯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일 가면 청소와 빨래를 하고는 햇볕에 앉아 차를 마셨다. 아이처럼 조용히, 침묵 명상이라도 하는 듯, 머리가 맑아졌다.
오래 전 친정 아버지와 함께 지척인 남자 동생 집에 갔을 때 일이 생각난다. 아버지 왈
"내가 20년 전에 사준 이 집에 딱 두 번째 온다."
"왜요? 가까운데 자주 오지 않고요?"
"서로가 불편한데 자주 오기는."
모두 있어야 할 자리에 각자 머물러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를 곁들이며.
아이고, 성질은 지랄같지만 그래도 내 낭군과 사는 것이 이렇게 편할 줄이야. 아들 집은 기웃거리지도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