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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스테파니 S. 리: 나는 너에게 못난 사람이 되어 주겠다
흔들리며 피는 꽃 (8) 못생긴 사과를 위한 변명
나는 너에게 못난 사람이 되어 주겠다 The Joy Luck Club, 1993 ‘조이럭 클럽(The Joy Luck Club)’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미국으로 이민와서 살아가는 네명의 중국 여인들과 그 딸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기억력이 워낙 간헐적인지라 영화의 전체적 느낌이 좋았다는것 말고는 내용을 거의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말미쯤의 한 장면만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늘 모임에서 만나는 엄마 중 하나가 친구의 딸을 칭찬하는 씬이었다. 모든 것이 뛰어난 엄마 친구의 딸에 비해 결혼도, 직장도, 피아노도 늘 모자랐다며 상처받은 딸이 처음으로 엄마에게 화를 낸다. 그런 딸에게 엄마가 하는 대사가 참 뭉클했다. “너는 어릴 때부터 못난 것을 골랐단다. 다른 모든 애들이 제일 좋은 것을 집었을 때 너는 달랐단다. 그 아이가 항상 최고를 고를 때 너는 가장 나쁜 걸 골랐어. 하지만 너는 최고의 마음을 가졌단다. 그건 아무도 가르쳐줄 수 없는거야. 너는 태생적으로 그런 아이였어.”
Stephanie S. Lee, I’ll be your servant, 2013, Pen drawing, 8” x 10” 세상엔 잘난 사람들이 참 많다. 모두들 하나같이 성공의 기준을 유명세나 숫자에 두고 추앙하느라 스스로를 수직구조 속으로 밀어넣으며 계산 잘하는 경제동물이 되기를 자처한다. 콧대높은 사람들 틈에서 더 잘나고 더 잘살아보겠다고 서로 경쟁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못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싶다. 요즘엔 어딜가나 반짝이는 새 물건들이 넘친다. 마켓에 가면 큼직하고 반들반들한 과일들이 꽉차게 진열되어 있고 조금이라도 흠이 있거나 못생긴 과일은 아무도 사지 않는다. 그만하면 다 먹을만 한 것들인데도 소비자들은 그래도 더 이쁘고 큰걸 골라보겠다고 이리저리 뒤적인다. 조금이라도 더 단것을 차지하겠다고 한쪽 떼어먹어보는 몰상식한 사람들도 간혹 보인다.
Stephanie S. Lee, Dream City, 2014, Color & Gold pigment on Korean mulberry paper, 19” x 31” each 모두가 이렇게 조금 더 크고 좋은 걸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니 농가는 이윤을 남기겠다고 유전자를 조작하고 약을 마구 쳐서라도 벌레먹지 않은 이쁜 과일들을 내 놓는다. 환경과 인체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파는 이는 돈을 벌기 위해 숨기고, 사는 이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 속는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잘못된 습관은 돈으로 가치를 매길수 없는 자연과 먹거리에까지 적용되어 이러한 상식밖의 일들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게 만든다. 이토록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다루는 모습을 보면 잠시 입이 즐겁자고 제 살을 베어먹는 듯한 어리석음을 보는듯 해서 할 말이 없다. 좀 못난 사과, 좀 작은 복숭아를 고르는 미덕은 요즘같은 세상에서 정말 특별해야만 가질수 있는 것일까. 좋은 것만 골라 욕심내서 먹어놓고 다이어트 하겠다고 죽는 소리 하지말고, 병든 지구를 위해 거창한 환경운동은 못하더라도 한번쯤은 못생긴 오가닉 사과를 골라보는 건 어떨까. 작은 것 하나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여느때보다 필요한 요즘이라 그런지, ‘너에게 나는 못난 사람이 되어 주겠다.’ 하는 마음씀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