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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허병렬: 뉴욕의 봄은 어디서 오나?
은총의 교실 (3) 봄 잔치와 미술 잔치
뉴욕의 봄은 어디서 오나?
오래 전 뉴욕의 봄을 여는 잔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꽃잔치이고, 또 하나는 미술잔치였다. 다행히 계속 이어지는 미술잔치는 그 내용이 점점 풍부하여지면서 뉴욕의 봄을 활짝 연다. 이 시기에는 다양한 개인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열리며, 아모리쇼(The Armory Show)는 그 작품들이 두 곳의 부두를 꽉 채운다.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가벼운 발걸음으로 작품 사이를 오간다. 모두의 표정이 즐겁다. 이 많은 사람들이 미술가이거나 그 언저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일까. 하여튼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인 건 분명하며, 그들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보여준다.
그 넓은 부두 광장에 마련된 개별적인 전시장은 마치 서로 개성미를 구가하듯 다채로운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과연 미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을 표현하여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예술이라면, 그림, 건축, 조각, 사진 따위로 제한되는가. 이 종류 중의 몇 가지가 하나를 이루거나, 전자 기구까지 합류하는 작품까지 포함되는가. 미술작품의 재료나 표현방법의 제한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어떤 재료를 활용하거나 어떤 방법으로 제작되었느냐에 관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표현했다면 틀림없이 그것은 미술작품인 것이다.
거기에 작품 표현의 동기가 되는 중심 사상인 모티브까지 넓게 열려있는 미술작품 세계가 아닌가. 이런 미술 전람회장에 또 다양한 사람들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별로 소리도 없이, 별로 빠른 걸음도 아니게, 그러나 흡족한 표정으로 눈길만은 바쁘게 작품을 훑어본다.
미술은 생활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미술과 관계없는 것을 찾기 힘들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미적 감각을 세련되게 닦고 있다. 가치 없는 복잡함을 줄이고, 물품을 용도에 맞게 부지런히 다듬고,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될 수 있는 대로 미적으로 구성하는 일이 생활화 되었다.
“이미 봄이 왔어요. 날씨가 따뜻하네요.” “아니지요, 3월21일이 며칠 남았으니... 아직은” 이렇게 대답하던 어느 미국인도 지금은 봄을 인정하게 되었다. 봄은 새로운 생각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자극하는 일 년의 첫 계절이니까. 봄에 새싹이 트면서 우리의 새로운 생각도 트는 계절이다.
“어디에 봄이 왔을까?” 어린이들에게 묻는다.
“날씨가 따뜻해요, 눈이 녹아요, 두꺼운 옷을 벗었어요, 밖에서 뛰어 놀아요, 새싹이 나와요, 하늘을 날고 싶어요...”
“그럼, 하고 싶은 일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이야기도 써보자."
그래서 어린이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봄맞이를 한다.
화가가 아닌 사람들도 봄에는 제각기 생활의 그림을 그리는 계절이다. 이번에는 아담한 꽃밭을 만들자, 주말여행을 계획하자, 친구들과 자주 만나자, 재미있는 그룹 활동을 계획하자, 착한 일을 찾아보자...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린다. 이 그림들을 실천하게 되면서, 알록달록 생활 전시회가 된다.
봄에는 제각기 그리는 그림보다 여럿이 그리는 큰 그림을 만들고 싶은 계절이다. 큰 그림이란 음식 중의 비빔밥이고, 음악 중의 앙상블이다. 봄이라는 주제로, 각자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는 도구로, 각자의 생각을 그려서 봄의 잔치를 하는 것이다. 이는 여럿의 생각과 마음을 모으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 큰 그림을 만들면서 각자의 생각을 펼친다.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 읽고 싶은 책... 등등의 생각이 즐거운 앞날을 열면서 참가자들의 마음이 서로 맞닿는다.
미술 전람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알맞게 흩어져서 작품을 감상한다. 각자가 오래 보고 싶은 작품들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작품을 제작한 미술가나,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개성적이라는 점이다. 개성의 아름다움이 만발한 미술전람회에 참가하는 즐거움과 봄맞이 기쁨이 여기 있다.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