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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이수임: 김치꽃 필 무렵
창가의 선인장 (34) 아파트 미니 김장 비결
김치꽃 필 무렵
Soo Im Lee, Kimchee flowers, 2009, gouache on paper, 12 x 9 inches
창가의 김치 항아리 속에 핀 꽃들을 쳐다보며 기분이 뿌듯하다.
김치는 담그고 또 담가도 어렵다. 그렇다고 김치 없이 살 수도 없지 않은가. 김치가 떨어지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모처럼 김치를 담기로 했다. 배추 한 박스를 사다 부엌 한구석에 밀어 놓고 며칠을 고민했다. 아파트 생활에 마땅히 배추를 절일 수 있는 커다란 양푼이 없어서다.
싱크대를 깨끗이 닦고 배추를 밤새도록 절였다. 한 개짜리 싱크대인지라 아침 준비를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다. 그러고 보니 커다란 비닐 백에 배추를 넣고 골고루 절여지라고 비닐백 자루를 이리저리 흔들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늘과 생강을 다지고 무채와 파를 썰고, 양념을 버무리면서 부엌 바닥과 벽 그리고 옷에 붉은 양념이 튀었다. 부엌은 한마디로 폭격 맞은 전쟁터처럼 변했다. 담그는 것만큼 치우는 것 또한 힘들다.
김치 다섯 병이 창가에 나란히 줄지어 있다.
김치가 익기를 기다리며 들여다보니 항아리 윗부분 색깔이 밝지가 않고 칙칙한 것이 이번에도 실패했다. 다시는 김치를 담그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위에 있는 김치를 병 아래 있는 것과 바꾸느라 또 한바탕 난리를 쳤다.
그래도 김치는 있어야 한다. 마켓에 만들어 놓은 김치 한 봉지를 사왔다. 너무 맵고 양념이 진하다. 양념을 털어내고 김칫국물을 병에 따로 담았다. 오이를 절여 그 양념으로 오이 김치, 깍두기 그리고 파와 부추김치를 만들었다. 남은 국물로는 물김치도.
간단히 김치 한 봉지로 네 병의 김치가 더 생겼다. Buy One Get One이 아니라 Buy One Get Four다.
부엌 창가에 김치 다섯 병을 나란히 올려놓고 잘 익고 있나! 수시로 뚜껑을 열고 먹어본다.
서울서 온 친구가 부엌을 둘러보다 김치병을 보더니 예쁘다며 창가에 꽃이 핀 줄 알았단다. 그러고 보니 파와 부추 색깔로 푸른 잎을 만들고 붉은 고춧가루에 물든 배추는 꽃 몽우리를 펴는듯하다. 특히 물김치는 물 위로 뜬 연꽃 같다.
부엌을 들락거리며 항아리 속의 김치 꽃들을 요리 보고 조리 본다. 힘들이지 않고 다섯 병이나 생긴 항아리 속의 김치가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