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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6.03.27 13:16

(173) 이영주: 제인 구달의 '은총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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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32)



제인 구달의 ‘은총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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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탄자니아에서 침판지를 연구하는 제인 구달. Photo: Michael Nichols/National Geographic Magazine



리들에게 '침팬지의 어머니'로 알려진 제인 구달(Dame Jane Goodall)은 1934년 4월 3일,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바닷가에서 달팽이를 주워다가 침대 옆에 놓아 달팽이가 온방의 벽을 뒤덮게도 했고, 네 살 되던 해엔 닭이 어떻게 달걀을 낳는지 궁금해서 닭장 안에서 4시간동안이나 숨어 있다가 그 궁금증을 해결할 만큼 특별했던 어린이였습니다. 종교를 강요 당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기독교 윤리가 몸에 배는 분위기의 기독교적 가정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발명 이전의 시대 어린이들은 바깥에서 지내기, 마당에서 놀기, 자연에서 배우는 것을 좋아했고, 돈이 귀한 시절이었으므로 영화구경이나 아이스크림 사 먹는 것 같은 작은 여유가 모두 소중하고 추억할만한 큰 기쁨이었다’고도 말합니다. 그것은 제가 자라던 시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헝겊 인형에 옷을 해 입히고, 그 인형이 다 너덜너덜해지도록 데리고 놀거나 기왓장을 깨어 공기돌을 만들어서 어찌나 공기를 많이 했는지 늘 손톱이 반쯤은 닳아 없어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제인의 살아온 이야기 중에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제인 외할머니의 ‘은총의 상자’ 이야기입니다. 제인은 외할머니를 세계 모든 굶주리는 어린이들을 다 포옹해주실 큰 사랑을 소유한 분으로 기억합니다. 할머니의 ‘은총의 상자’ 안에는 30개의 작은 종이 두루마리가 들어 있는데, 그 종이마다 성서 구절들이 적혀 있었답니다. 물론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준비된 것입니다. 



jane-journal-714.jpg  1961년 제인 구달의 필드 노트북



인은 어렸을 때, 자기도 자신의 상자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집안 식구들 모르게 만드느라고 예상 외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열심히 일해야 했다고 합니다. 우선 포괄적인 성구 선택을 하기 위해 신구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하고 적절한 구절들을 골랐습니다. 그 구절들을 가로 4분의 1인치, 세로 4분의 3인치의 크기로 자른 종이에 깨끗하게 적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단단하게 잘 말아서 한 개의 성냥갑에 스무 개씩 넣었습니다. 


그렇게 여섯 개의 성냥갑에 정리해 넣고, 그 성냥갑들을 붙여 여섯 개의 서랍이 있는 작은 궤로 만든 것입니다. 서랍마다 작은 놋쇠 고리를 달아 열 수 있게 해놓았다니 대단히 공을 들인 공예품입니다. 마지막으로 궤의 바깥을 암청색 종이로 바르고, 맨 위엔 그리스도 탄생을 그린 조그맣고 섬세한 그림을 붙여 완성시켰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에 외할머니에게 그 상자를 선물했을 때 할머니는 자신의 성서 구절 상자도 아꼈지만, 제인의 상자를 받으시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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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구달의 스토리를 담은 그림책(왼쪽부터) , 자서전 '희망의 자연'과 2014년 한국 개봉된 다큐멘터리 포스터.

 


제인의 가족은 아직도 그 상자를 보관하고 있고, 자주 서랍 중 하나를 열어서 아무 두루마리나 꺼내 읽어본다고 합니다. 거기에 들어있는 위안, 감화, 훈계 중 어느 선물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그 성구들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철학과 가치관과 사랑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거듭 세우며 실천하는 삶을 매일의 일상 속에서 키워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침팬지에 관한 연구와 자연보호 교육에 대한 업적으로 1995년, 영국 왕실로부터 영예로운 CBE 작위를 받은 제인의 영혼 근저에는 바로 이러한 주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할머니의 신앙교육은 그녀로 하여금 주님이 창조하신 동물들, 나아가서는 침팬지를 사랑하게 했으며, 침팬지가 사는 숲을 사랑했고, 더 크게는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를 사랑하는 환경지킴이의 역할까지 하는 생명 사랑의 전도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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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어린이들, 침팬지 인형과 함께 한 제인 구달.



는 부끄럽지만 교회 안에서 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전엔 성가대에서 열심히 봉사한 적도 있었으나 그 다음 어느 순간부터 생활이 불규칙해지면서 연습에 참가할 수 없으니 그것마저 손을 놓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가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주님께 드리는 선물이다. 그러니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내게 맡겨지는 일들을 하자. 이 세상은 주님께서 지으신 세상이므로, 반드시 교회가 아니고 사회에서 하는 일이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일이다. 맡겨지는 일들을 주님께 드리는 보은의 마음으로 정직하게 성심을 다하자. 그런 마음으로 하다 보니 사람들은 저의 사람 됨됨이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적어도 일을 맡기면 안심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믿어주게 되었습니다. 가끔 어떤 사람이 왜 그렇게 목숨 걸고 일을 열심히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하느님께 보은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자기가 하는 일에 온 정성을 모을 때 참된 신앙은 이루어진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부활절입니다. 이제 저도 저의 ‘은총의 상자’를 만들 때가 되었습니다. 제게도 제인 구달같은 손자 ‘블루’가 있으니 말입니다. 블루도 언젠가는 할머니가 만든 은총의 상자를 열어볼 날이 있고, 언젠가는 자신의 은총의 상자를 만들 날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좋아하는 성구들을 적어 놓고 수시로 펴보며 격려도 받고, 마음도 다스리고, 이웃에게 사랑을 퍼주는 제인 외할머니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피어납니다. 따뜻한 햇살처럼 제 신앙의 바구니를 꾹꾹 눌러서 채워줍니다.




이영주000new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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