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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ry Window
2016.05.06 12:56

이해인, 엄마와 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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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jpg



엄마와 분꽃       



이해인



엄마는 해마다

분꽃씨를 받아서

얇은 종이에 꼭꼭 싸매 두시고

더러는 흰 봉투에 몇 알씩 넣어

멀리 있는 언니들에게

선물로 보내셨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 온 나에게 엄마는

"분꽃씨를 뿌렸단다

머지않아 싹이 트고 꽃이 피겠지?"

하시며 분꽃처럼 환히 웃으셨다

 

많은 꽃이 피던 날

나는 오래오래 생각했다

 

고 까만 꽃씨 속에서

어쩌면 그렇게 푸른 잎이 돋았는지?

어쩌면 그렇게 빨간 꽃 노란 꽃이

태어날 수 있었는지?

 

고 딱딱한 작은 씨앗 속에서

어쩌면 그렇게 부드러운 꽃잎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는지?

 

나는 오래오래

분꽃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해인.jpg 이해인(1945∼)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남. 김천 성의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부산 성 베네딕도수녀회 입회. 1970년 ‘소년’에 시 ‘하늘, 아침’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민들레의 영토’‘사계절의 기도’‘여행길에서’‘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등이 있다. 새싹문학상(1981), 천상병 시문학상(2007)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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