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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김희자: 쑥이 깨워주는 내일
바람의 메시지 (10) 오래된 미래를 위하여
쑥이 깨워주는 내일
Wheiza Kim, Tranquil morning, 60"x16"x3", acrylic on wood with mirror, 2014
여러가지 목적을 위해 바쁘고 지치게 다닌 긴 여행에서 돌아와 시차적응도, 여독도, 풀지 못한 채 내 자신과 약속한 미룰수 없는 쑥 채취일로 마음이 급하다. 시간을 쪼개 쓰며 살던 나이에선 이미 벗어 났다고 스스로에게 타이르면서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습관에서 놓여나질 못한다. 아직 재촉하며 할 여러가지 일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마음가짐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이 낡아가는것이 아니라 숙성되어 가는 거라는 누군가가 한 위로의 말에 의지해서, 내 몸과 영혼의 일들이 연륜과 함께 깊어가는 느낌에 더욱 감사하며 산다.
오월 단오경이라야만 약효를 본다는 쑥을 채취하기 위해 해변가 언덕으로 내려 오며 바다 내음이 물씬한 신록의 숲 쑥 향기 가득한 해풍을 깊이 들여 마시니 모든 피로가 가시는듯 하다. 이 세상 어디에 몸과 마음이 자연에 녹아 정화되는 것보다 나은 힐링이 있을까 싶다. 인간의 행복한 미래는 고래의 전통과 자연상태로 영혼과 육신이 유지되어야 만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 Ancient Futures>라는 책 속의 라다크 사람들이 떠오른다. 하늘 아래 첫 동네에 사는 티벳인들의 고요하고 욕심없는 삶이 정부관광시책에 의해 억지로 개방되어 그들의 순수함이 유린되고, 무너져 내린 얘기가 안타까움을 자아 냈었다.
그 이전의 그들의 평화로운 날들도 이 숲속에서의 내가 느끼는 평화로움과 같았을 테지하면서 또 다른 아린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수년 전 페루에 관광을 갔을 때, 티티카카 호수의 볏짚 위에 집을 짓고 떠돌며 살던 원주민들에게 싸구려 동정심을 베풀은 것이 그들 삶에 상처를 주었을 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이 늘 남아있다. 그들의 자연과 융화된 평화롭고도 독특한 삶을 구경하러 가서 현지아이들 교육을위해 TV를 사는데 보탠다는 명목에 몇푼의 돈들을 남기고 온일이다. TV를 시청하는 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보다는 분명히 물질문명에대한 상대적 빈곤의 바이러스로 침투되어 지금쯤은 그들 모두가 매우 불행감에 빠져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가끔하게 된다. 세상 어느 오지에나 피할 수 없는 과도기적 시기와 상황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순수하고 행복했던 삶이 너무나도 급속도로 물질과 자본주의에 의해서 회생이 불가능할 파멸을 몰고 오진 않길 비는 마음이다.
세계의 온갖 뉴스의 현장 소식들이 거리와 시간을 초월하고 빛의 속도로 오가는 디지탈 시대에 아직도 단오라는 원시 농경시대의 유물인 시간 개념을 중요히 여기고 있고, 그러한 속도의 정서 속에서나 마음이 편안한 아날로그 시대에 영글어진 내 두뇌와 가치관의 현재지표는 또 어디인가 싶다. 흘러가는 이 과도기의 물결의 종착지는 어디고, 어떠할지를 늘 생각해보곤 한다. 무위자연으로서의 모든 생명체의 작동은 한치도 디지탈 문명과는 상관이 없다는 걸 아직은 역력히 보고 느끼고 있지만, 조금 전까지도 인터넷 서치를 하며 뭔가를 알아내는 빠르고 편리함은 결코 디지탈 시대를 역류할 수는 없을 꺼다.
내가 살면서 언제 농경시대의 절기 개념에 깊은 관심을 가져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지만, 선친들의 입으로 늘상 예견되고 어김없던 지혜가 지금도 계절이 돌아가는 계지판처럼 움직이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꽁꽁 언 한겨울 속에 봄이 있고, 뙤약볕 깊은 여름 속에 이미 가을이 깃들어 있는 그러한 이치를 터득하고 자연의 순리와 변화 예측을 느끼고 배우며 살아온 오랜 습관의 흔적이 도시에서만 자라고 살아온 내 의식 속에서 아직도 작동하고 있었다. 음력 카렌다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같은 이 미국 땅에서까지 그 어김없는 자연의 순환 법칙은 정확히 적용됨에 가끔 놀란다. 물론 엘리뇨 현상으로 지구는 중병을 앓고있어 예측이 불가하고 예측 밖의 현상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Wheiza Kim, Fervid moment, 50"x17"x 3", acrylic on wood with mirror, 2015
3대가 한집에 살던 어린 시절, 음력 5월 단오가 지나면 매우 분주하게 친척과 가족들이 함께 강화섬 쑥밭으로 소풍을 갔었다. 갯벌에 막아진 염전들과 찝질하고 습하던 바람과 함께 즐거움으로 남아있던 기억들이오늘도 해풍 속에 녹아 깊은 호흡을 따라 전신으로 퍼진다. 약쑥 소풍은 할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해마다의 필연적 행사였다. 까마득한 추억 속에서 할머니의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7년 묵은 고질병에 3년 묵은 쑥을 쓴다.
주변에 농지가 없고, 반드시 해풍에 자란 쑥을 채취해서 해풍 속 그늘에 삐덕삐덕하게 말려야한다.
양지가 섞이지 않은 순수 한지에 싸서 바람이 잘 통하는 음지에 숨을 쉬도록 눌러서 3년을 발효시켜야 한다.
등등의 절의 큰 스님이 일러주셨다는 한방약재 지식으로 철저하던 할머니의 약쑥 사랑은 대단 한 엄명이었다. 할머니 몸과 방에서는 늘 쑥냄새가 배여있었다. 그 시절 여러가지 방법으로 처방되고 실행되던 약쑥은 아마도 민간요법의 만병통치약이 였던것 같다.
쑥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그 효과에 대해 여러가지 책과 인터넷 서치를 하게 됐다. <본초강목>에서의 까마득히 잊은 단군신화와 관련된 얘기도 매우 재미 있었다. 인간이 되고자 소원하는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며 그것을 먹으며 굴 속의 어둠 속에서 백일을 인내하면, 동물에서 인간으로 환골탈퇴될 수 있음을 처방받게 되는이유가 짐승의 몸속 거친 성정을 쑥의 청혈작용으로 순화시켜서 인간으로 둔갑을 할수 있을 만큼의 뛰어난 약효를 얘기하고 있었다. <동의보감>에서도 성인이 되며 혈액에 축적된 노폐물에 의한 각종 성인질환을 고치는데 기본인, 혈관청소와 막힌 기혈의 순환을 도와 건강을 고양시켜 주는 쑥의 효험에 대한 지식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처방되는기록을 볼 수 있었다.
그 모든 걸 다 믿어서라기보다 나의 유전적 체질에 의한 병은 쑥차를 상복하는 길 밖엔 없지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혈관청소를 시도해 볼수 밖에 없는 상황에 부딛혔었기에 시험을 하게된 거다. 여러 종류의 양약 처방이 효과는 커녕 계속 부작용이 생겨 어지럼증, 이명, 구역질등으로 고생을 했었 것이 계기가 되어 나로 하여금 쑥의 신화에까지 이르게한 거다.
Wheiza Kim, Where do we go? 22"x22"x4", acrylic on wood with mirror, 2009
나는 쑥을 캐서, 말리고 보관 후 발효하여 차로 만들어 반년을 마셨다. 그후 몸에 냉한증이 사라져서 겨울나기가 쉬워지면서, 고혈압과 고지혈증 수치를 정상 상태로 돌릴 수 있었다. 나는 그 한방요법에 놀랐고, 내 한국인으로의 육신은 과학적이고 인위적으로 합성한 알약이 아닌, 자연의 에너지로 뭉쳐져서 흘러나오는 기를 따르고 있음을 자각하는 참으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의사가 내는 양약을 취하지 못한 걸 아는지라 어떻게 무얼 했기에 모든 수치들이 정상이 되었지? 라고 묻기에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그는 민간에 떠도는 알 수 없는 이상한 허브 풀이겠지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뿐, 역시 서양의사 다운 태도였다. 서양식 알약 먹기를 매우 싫어하고, 언제나 몸과 마음이 자연 속에 있을 때만 편안한 천성으로, 욕심들을 뒤로하고 불편을 택하면서 여기 바닷가 숲에서 살기로 결심한 나에게 하늘이 준 선물이라 여긴다.
아마도 수천년 한방에 내려온 쑥의 효과도 언젠가는 공해와 오염으로 쓸모가 없어질지도 모르지만,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몇해 후 황폐한 죽음의 땅에서 가장 먼저 솟아난 식물이 쑥이더라는 얘기를 접했을 때, 희망을 품으며 여러가지의 상상을 하게 됐다. 물질문명이 극에 달해서 온갖 오염물질 폐기로 인해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어 딴 행성으로 모두 떠나버린 후, 기적처럼 흙 속에서 다년생 초본인 쑥만은 죽지 않고 자라고 있어서, 쓰레기 별로 전락된 지구에 생명의 약초를 구하러 오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모든 독소를 정화하는 능력의 쑥만이 해낼수 있는 기적적인 에너지로, 자연의 생명 사이클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너무 과한 걸까 하며 혼자서 미소를 짓는다.
그 시대가 되면 태어날때 이미 DNA로 검증하기와 줄기세포로 모든병을 치료할 텐데 누가 쑥으로 혈관을 다루겠을까만, 우리 육신이 살과 피로 이루어져있고, 먹고 싸는 기능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한, 피 속에 누적되어지는 독소는 피할길이 없지 않을까 하는 무지할지도 모르는 내 소견이다. 쑥을 채취하면서 먼 과거속의 단군에서 부터 우리들의 미래에 까지 상상의 나래를 폈다 접었다 하며 헬레나 노르베리의 <오래된 미래>에 더더욱 공감을 보낸다. 한때 베스트셀러에 까지 올랐었다는 그 책이 과연 말하고자하는 작가의 뜻을 공감하여 따르고자하는 의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처럼 오래된 미래라고하는 언어감각, 즉, 어디라고 딱히 짚을 수 없는 시제에 대한 묘한 초현실적 호기심이 그 책을 펼치도록 만든건 지 알 수는 없다. 물론 'Ancient Futures'를 딱히 뭐라할수 없어서 만든 번역자의 언어적 기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여튼, 언어학자이고, 사회운동가인 작가의 의도는 희말라야의 평화롭고 건강하던 오래된 전통의 공동체가 힘없이 무너져내리는 데 대한 애석함으로 인간들의 행복감의 오리진인 옛 관습의 토대에 미래를 쌓아 보자고 주창하는 것이리라. 나 역시 우리 조상들의 쑥에 대한 사랑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며, 여러가지의 우리 전통의 고유 풍습과 사유들을 다시 잠을 깨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