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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이수임: 구두쇠 이민자들을 위한 변명
창가의 선인장 (42) 내가 쪼잔해진 이유
구두쇠 이민자들을 위한 변명
Soo Im Lee, 7/25, waterfront, 1997, 11.75 x 9 inches
"너 왜 이렇게 쪼잔해졌니?"
서울 갈 때마다 돌아가신 친정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다. 예전 부모 밑에 있을 때는 명동 한복판에서 몸만 한번 비틀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힘든 결혼 그리고 이민생활이 나를 쪼잔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결혼 초기엔 힘들 때마다 친정에 가서 맛있는 것 먹고 쉬다가 용돈 두둑이 받아오는 재미로 툭하면 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몇 불에 벌벌 떠는데 그들은 펑펑 써대니, 대조적인 삶이 서러워 더는 갈 곳이 아니라며 발길이 뜸해졌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친정은 새로운 식구인 올케 그리고 아버지의 여자친구가 주인 행세를 하며 엄마가 알뜰히 모아놓은 재산을 서로 축내며 나를 반갑지 않은 나그네로 취급했다. 친정은 더는 끼어들 수 없는 타인들의 무대로 바뀌며 씁쓸한 기억으로 멀어졌다.
나도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 쪼잔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돈 좀 풀어. 돈을 써야지 경제발전에 기여하지.’"
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사고 싶은 것이 있어야 쓰지.’ 하고 점잖게 얼버무린다.
"죽을 때 가지고 갈 거라고 해." 남편은 말하지만, 사실 난 물건을 살 때마다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이 ‘허접스러운 것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집었다가도 놓는다.
"집안에 가구 없이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냐?"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무거운 물건으로 가득 채우기보다는 사고 싶은 것을 언제든지 살 수 있는 은행계좌를 슬쩍슬쩍 훑어보는 순간을 즐긴다. 그러나 ‘내가 죽고 나면 누구 좋아하라고? 며느리 아니면 그 누구?’ 하는 생각에 틈틈이 후딱 여행을 떠난다.
남의 금전에 뭔 그리 관심이 많은지? 직장 잃고 서너 달 쪼들리다 주위 사람들에게 꾸고 자식과 부모 형제에게 손 내밀다 결국에 그들과도 멀어져 하루아침에 홈레스되기 쉬운 것이 이민생활 아닌가. ‘옛날 노승이 젊은 수좌와 동행하다 대동강 물에 얼굴을 닦던 중 노승 왈 “물 좀 아껴라. 이놈아.” “이 많은 물을요?” "있을 때 아끼라는 말이야.” 남편이 자주 들먹거리는 옛이야기의 한 토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