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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김희자: 내 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기-2
바람의 메시지 (11) 작가란 무엇인가
내 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기-2
Wheiza Kim, 그는 바닥 없는 배를 타고 떠났네, 18"x15", 1997, acrylic on natural wood and glass
작가.
작가라고 불리워지는 것은 창조적 행위로써 만들고 짓는 것에 일가견을 이룬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 숙련에 의해 도를 이루는 장자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장인들은 오랜 숙련에 의해 도의 경지에 오름을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창의적인 어떤 의도를 가진 사유와 철학이 바탕이 아니기에 작가라고 할수는 없을 것 같다.
작가란 모름지기 영혼을 승화시키며, 삶에서 보는 것들을 깊은 내면의 자신의 거울에 비추어서 고유한 영감을 자아올리기 위해 고립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지키는 자들이다. 오르한 파묵은 작가란 바늘로 우물을 파고, 산을 뚫어 길을 내는 끈기를 가진 자라고 말한다. 그러한 외로움과 고통을 참아내고 사유를 한 자의 창작품에선 깊이를 알수 없는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강한 순수의 빛줄기가 흘러나오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은 공감의 울림으로 파고든다.
혹자는 무슨 케케묵은 고루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작가관이냐고 비아냥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록 인간들이 우주를 날아 다닐지라도, 로보트가 아닌 이상, 사람이 먹고 배설을 하는 인간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인간의 정신적 본질에 대한 사유를 버릴 수 없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예술은 바로 그 사유 속에서만 자라고 꽃피운다. 본래 있지도 않기에 볼래도 볼 수가 없고, 알려도 알 수가 없는 마음이라 불리는 분별의식을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서 이미 세상에 마련되어 있던 몸을 위한 공기와 정신을 위한 언어로 생은 시작되고 끝난다. 그리고 언어에 의해 세상을 보고, 느끼며, 인지하는 인간으로 키워지기에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안(눈).이(귀).비(코).설(혀).신(감각)의 오욕과 함께 작동된다.
우리는 글이 없던 수만년전의 동굴 벽화들을 알고있지 않은가. 인간의 표현욕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말과 글과 시각 형태로 발현되는 소통하고자하는 욕망이다. 나 역시 시공을 건너 전해지는 책들을 읽고 글을 쓰는 가운데, 내 생각의 길이 열리고, 내 삶의 환경과 더불어 영감을 얻게 되어 작품을 만들게 된다. 지금 이 시대의 시각예술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에, 언어적 사유기능을 뭉뚱거려서 시각 청각의 모든 소통방법을 통합하여 새로운 문화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는 양상을 감지할 수가 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믹스하여서, 상상으로 밖엔 있을 수 없던 것들을 시각화시켜내어 현실에 존재하도록하고 있다는 얘기다. 소위 '가상현실'이라고 불리는 현실이 시각화되고, 그것이 과학과 예술이 서로 맞물려 더욱 앙양되어 가고 있다.
예나 기금이나 시간은 같은 속도로 돌고 있겠지만, 지금은 인간의 지력 속도가 빛의 속도를 따라 잡고도 남는지라 언어들 또한 알아듣고 보기에 비밀 코드만큼이나 난해하게 생략이 되어 날아 다니지 않은가. 그리고 언어가 주는 의미들 또한 세대에 따라 같은 글자이긴해도 다른 의미를 가지게됐듯이 시각미술에서도 색깔과 형태의 모든 상징들이 작가의 고유성 조건에 따라 변질된다. 특히, 세대와 지역에 따른 해독 오차는 어떨 땐 딴 별에서 온 작가의 작품을 보는가 싶을 때가 더러 있다. 그 충격이 신선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불쾌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코끼리의 똥으로 성모 마리아를 그린 화가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신성모독에 대한 논란은 문화배경에서 오는 '차이(difference)'에서온, 이젠 전설이 되어가는 예이다.
Wheiza Kim, 이름자 끌고 다니다, Dragging Name Around, 13"x15"x1", 1998, acrylic on natural wood and glass
세상의 모든 일들이 지구상 어디건 시차가 없이 전달되듯 전시회라는 것들도 그러하다. 나도 그 빠르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계에 동참하려는 작가이지만, 너무도 센세이셔날한 전시장엘 가면 호흡을 멈추고서 그 의미를 해독할 수 없어 불안한 답답증과 불쾌감에 싸일 때도 더러있다. 어쩔 땐 각종 전기로 돌고 움직이는 어뮤즈먼트 파크의 엔터테인먼트 기계에 몸을 실은 것 같은 현기증도 온다. 비엔날레나 아트페어나 큰 이벤트 현장일수록 더욱 심하다. 이제 소위 고등예술도 엔터테인먼트에 합세를 해야만 대중들에 가까워질수 있다고 주장들을 하는 맥락이기도 할테지만, 내가 느끼기엔 관객의 뒷통수를 때리고자하는 억지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만 경악이 일어나 기사거리가 되기 때문일 테고, 그래야만 유명세를 확장하고 그와 함께 돈방석에 올라 타게 된다는 시대적 요구 현상이라는 가치관에 내가 무슨 시비를 감히 걸 수있겠는지. 부지불식간에 이미 이러한 시대상황의 바다로 흘러들어와 버렸기에 어지럽기까지한데, 어딜 가고 누굴 만나도 모든 뉴스들에 100세 시대를 맞아 작가들도 미래로부터 밀려오는 파도를 더 오래오래, 즐겁게 써핑을 해야하므로 개념의 혁신을 해야만 한다고들, 내겐 저주로밖엔 들리지 않는 소리가 도처에 윙윙댄다.
이 시대의 전설이 될 아날로그식의 사고를 하는사람으로 도태되어가는 느낌이 드는 점점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이젠 모두가 문화 전반에 걸쳐서 아날로그적 모태로부터 태를 자르고서 자유롭게 광대한 공간을 걸림없이 유영하며 방만의 미덕을 즐기고 있다.
나는 아직도 탯줄을 끊지 못하는 마치 전화줄이 달린 전화를 쓰고 있는듯, 원시성을 면치 못하는 미달 인간인가 싶다. 코드리스의 인터넷 시대로 진입하며 전통과 도덕의 모체로부터의 결별은 인간이 마땅히 지니고 지키고 있어야할 인간으로써의 자존감조차도 잘라내 버린 것 같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연출되어지는 무한의 방종 행위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가 치미는 때가 많다. 나는 그들의 의도가 바로 그 방종을 고발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거라는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 속에 진실한 삶의 성찰을 녹여 부은 철학적 의도가 느껴지기보다는 매우 얄상하게, 문화 호사가들의 눈에 들고자 아당을 떨고 있거나, 번떡이는 명예욕의 펀치를 관객들을 향해 날리고 있음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그 펀치가 더욱 넌센스일수록 더 크게 매스컴의 주목을 끄는것 또한 모르는 바 아니다. 그것이 부정적인 그 무엇이라 할지라도. 왜냐하면 예술은 보편성을 깨고, 타인이 볼 수 없었던 시각에서 보아냄으로써 새로운 시각으로의 개념을 창조했다면, 비록 시각을 위한 시각작품으로의 타당성도 용서되는 것이 현재의 시각미술의 상황인 것 또한 사실이다. 얼마나 수많은 파우스트들이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누가 모르는가.
Wheiza Kim, 끝없이 재고 또 잰다, Measuring & Measuring Endlessly, 13"x15"x1", 1998, acrylic on natural wood and glass
그래도 원시성을 가진 나이지만, 현대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는 미술계의 진행형인 현재의 트렌드를 수용하여 어떻게 흐르는가를 미디어를 통해서가 아닌, 실제를 느끼고 싶기에 작년 10월에도 베니스 비엔날레에 어렵사리 들르고, 뉴욕에서 벌어진 아모리쇼를 비롯해 각종 아트마켓인 아트페어들과 경제 붕기에 의해 떠오른다는 아시아의 서울을 비롯한 많은 지역 아트페어엘 몇년간 지속적으로 다녀 보았다. 어떤 곳엔 내 작품도 걸고, 어떤 곳엔 그냥 구경을 다니며, 출품작가와 화상들과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곳은 결코 달갑지않은 루머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이벤트 주최자와 화랑들의 담합된 음모 속에 합세된 함량 미만의 작품들과 판매 목적을 위해 제작된 장식적, 복제성 아류 작품들, 결코 명예롭지 못한 작가들의 처세에 대한 정보들과 함께 얻을 수 있는 감동보다는 수십배 쓴 감정만 마시고서 돌아오곤 했다.
시각예술이 장식물로의 시각적 걸개기능으로, 혹은 공공 미술로의 기능도 필요하지만, 작품들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생에 대한 성찰과 음미로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히 파문처럼 전달되어지기에는 너무도 많은 예술가들의 경쟁과 소란, 그리고 물질만능 세계로 터져 넘치는 것 같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를 할수 밖엔 없다고 하는 변명들과 함께. "시대적 현상의 반영이 예술이다"라고 주장들을 하지만, 세상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의 욕망을 정화시키기가 더욱더 중요시되야하는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항간에 유명 화랑들과 미술품 옥션들이 돈의 액수로 작품들의 가치를 메기고, 세상 사람들을 그길로 가이드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영혼을 예술가치의 잣대로 작업하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치욕 스러움을 견디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작가들의 농담들 중에 "눈 있는 자는 돈이 없고, 돈 있는 자는 눈이 없더라"던지, 작가들은 모이면 돈 얘기로 일관하고, 돈 있는 자들은 모이면, 어떤 작품이 좋은가에 대해 논한다.
물론 투자 가치이겠지만. 모순됨을 푸념하는 거지만 그게 현실이다. 창의성보다 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불사하고 유명세를 창출해낸 부자 작가들도 꽤있다. 그들은 부자로 끝나지 않는 예술사에 길이 남겨질 것을 아는 것이 참으로 모욕적이기까지 하다. 진정한 예술정신에서 세상의 빛이 되리라고 뜻을 세운 주변의 전업 작가들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동을 나눌지라도, 택할 수 밖에 없는 궁핍함은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마도 죽고나서는? 글쎄. 그 작가의 작품이 쓰레기가 되기 전에 발굴되기를 기도해 본다.
날이 갈수록 그러한 느낌이 들면서 이젠 예술을 향한 나의 예술관과 개념의 잣대를 접고, 관심을 끊어야할 때가 온거구나 하는 결론을 내리며, 각종 아트 마켓과 이벤트로부터 뒤돌아 서게 된다. 스스로 유일하고 존귀함을 홀로 인정하며, 그 자존감으로 삶을 충만하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라고 나를 위로하며 더욱 멀고 깊은 곳으로 떠나고 싶다. 어쩌면 무덤같은 적막 속에 미리 들어가 있는 것이 최선일까도 생각해 본다. 사유하는 마음이란 것을 가진 인간으로서, 정직하게 자신의 운명의 별로써 항해하며 자기 자신이나 정화하며 살아가기를 응당하게 여기며 살아내야 할까부다. 세상의 번뇌의 흑탕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작품을 만들며, 염화시중의 미소로 깊이 공감해줄 가섭을 기다림이 아마도 내 작가로써의 본분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마치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샤무엘 베켓의 '고도(Godot)'라 할지라도.
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