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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허병렬: 전업주부, 취업주부
은총의 교실 (13) 자녀 교육의 지혜
전업 주부, 취업 주부
다이앤 키튼이 먼 사촌 사망 후 고아가 된 6개월짜리 아이를 돌보는 '워킹맘'으로 출연한 영화 '베이비 붐(Baby Boom, 1987)'.
전업주부는 누구며 그들은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새로운 말들이 생겨난다. 어쩌면 반대로 새로운 말들이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 간다고 할 수도 있다. 30년대만 하여도 '전업주부'라는 말이 없었고 그 대신 ‘직업여성’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때만 하여도 직업을 가진 여성이 드물었고 이들은 겉모양부터 다르게 보였다. 대체로 머리는 쪽지지 않고 갸름하게 뭉뚱그려서 핀을 꽂았으며 간편한 짧은 치마에 구두를 신었고 큰 가방을 가지고 다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들이 가정 주부들과 달리 사회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에 띄었고 그 수가 극소수였기 때문에 직업여성이라는 뚜렷한 부류에 속했을 것이다. 이들은 적어도 시대를 앞서 가는 선두주자들이어서 희소 가치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 사회상은 크게 달라졌다. 이 지역의 이민사회를 보더라도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은 보통 일이고 가정에서 일만 하는 주부의 수는 적다. 가정에만 있다는 것이 혹시 무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싫고 밖에 나가 어떤 그룹의 일원으로 여럿이 섞여서 일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거기에 보수까지 받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나 않을까.
전에 전업주부의 위상을 높이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 제목은 ‘전업주부 자녀 입학률 취업주부보다 최고 6배’이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의 분석에 따른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그런데 입학 후 성적은 거의 차이 없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이것도 음미할 만한 구절이다.
가정에 주부가 자리잡고 있으면 첫째는 가족에게 안정감을 준다. 자녀가 귀가하였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며 하루 동안 학교에서 있던 일과 학습 내용에 대하여 보고 받고, 이를 듣는 주부는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면 자녀에게는 더 없는 격려가 되지 않겠는가. 하루의 피로가 확 풀리면서 공부하는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자녀가 대학에 가면 자기 스스로 학구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어버리고 주부는 제대로 조언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비록 성적에는 영향을 못 주더라도 주부의 정신적인 협조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 분명하지만.
앞의 것은 한국의 현실이고 여기 사정은 어떤가 생각해 본다. 요즈음 부모가 둘 다 일을 한다. 이로 인해 학습 준비가 부실하거나 숙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입고 있는 옷가지가 적당치 않거나 태도가 침착하지 않고 정서가 불안하거나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전업주부일 경우 때로는 과보호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하여튼 취업주부거나 전업주부거나 자녀 교육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각자의 처지에서 장점을 살려나가는 지혜가 요망된다. 자녀가 어릴 때는 전업주부, 대학에 갈 무렵에는 취업주부가 될 수 있도록 점차적으로 기술과 시간을 조절하는 일은 자신의 성장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끝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하니까.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