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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박준: 대가(大家)의 조건
사람과 사막 (1) 현대 작가의 딜레마: 작업과 생업
대가(大家)의 조건
Park Joon, Death Valley, California
난 아무래도 대가(大家)가 될 수 없는가 보다.
4년 전 나는 소위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5년 뒤로 미루기로 결정하고, 생업을 위해 직업을 가지기로 결정했다.우연히 65세 이상 시니어들을 모셔와서 케어해주는 시니어데이케어센타에서 일을 시작했다. 시니어들을 모셔 오기도하고, 노래도 같이 불러주고, 때론 영정사진도 만들어주고, 식사준비도 하고, 대화도 나누어주며 하루하루를 열정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저끝에서는 늘 작품에 대한 고민들이 나를 끎임없이 괴롭혔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들려오는 동료 작가들의 작품, 전시 소식은 더욱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무릇 예술가는 배고픔에서 걸작이 나온다"고 더러는 이야기하지만, 현대 작가에게 가난과 배고픔은 작가의 길을 포기하는 지름길이다. 그렇다고 내가 작가의 길을 포기한 것은 절대 아니다. 나에겐 지켜야할 가정이 더욱 소중하다. 예술의 길보다 가정, 가족이 나에게는 더욱 소중하다. 아마도 이런 이유가 나는 대가가 될 수 없는 조건인 것같다. 대가가 아닌들 어찌하랴. 대가가 않된들 어찌하랴. 나에겐 그보다 더 소중하고 지켜야할 가족이 늘 나를 지켜주고있다.
Park Joon, Old Man from Daycare Center
사실 난 고백할 것이 있다.
20년 전쯤 인물사진을 작파하고 자연을 기록하겠다고 무조건 자연으로 달려갔다. 집사람은 혼자서 생업을 책임져야 하는 육체적, 정신적 부담감에 힘들어 했다. 하지만, 전혀 내색을 하지않고 내 예술행위(?)에 힘을 실어 주었다. 처음 그렇게 시작된 자연으로의 여정이 날이 갈수록 미친듯이 빠져 들어갔다.
사람들이 물어본다. "왜 힘든 여정을 계속하냐?"고.
난 거짓으로 대답한다. "좋은 작품을 위한 예술행위라고".
하지만, 고백하건대 지금의 나는 작품을 위한 여정이 아니다. 그냥 자연과의 만남을 즐기게 되었다. 그곳에 있으면 무아지경의 상태로 빠져든다. 자연은 마치 마약과도 같은 존재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데, 그런 현상이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내 일생에 조직적인 회사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는데, 지금의 데이케어센타가 처음으로 그런 곳이었다. 처음에는 생존이라는 이해관계로 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이해관계를 떠나 인간과의 교제를 하게되었다. 특히 내가 모시고, 만나고 있는 어르신들과의 관계는 더욱 그렇다. 내가 처음 자연 때문에 작품을 만든다는 이해관계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그 대상이 무조건 좋았던 것처럼, 지금의 사람과의, 어르신들과의 관계도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즐기고 있다.
박준 Park Joon/사진작가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해군 제대 후 83년 암울한 정치적인 상황을 피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 포토그래픽아트센터스쿨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가 됐다. 1997년 첫번째 전시 후 카메라 들고, 캘리포니아 데스밸리만 30회 이상 촬영했으며, 7월 뉴욕에서 LA까지 크로스컨트리 여행도 10여회 하면서 ‘로드 러너’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와이와 US 버진아일랜드만 빼고 전국을 돌았다. 아웃사이더로서 미국의 역사와 역사 속의 사람들로부터 교훈을 배우기 위해 떠난다. 1년에 2번씩은 대륙여행을 하고 있다. 2005년 뉴욕타임스는 생선과 인물을 모델로 작업하는 박씨를 대서특필했다. 그에게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