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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이수임: 무식한 아내의 넋두리
창가의 선인장 (47) 알고 보면 투자의 귀재
무식한 아내의 넋두리
Soo Im Lee, sweet dream, 2010, gouache on paper, 10.25 x 8.25
“아니 그것도 몰라?” 남편이 무시할 때마다 “알았는데 아이 낳는 산통에 사라진 모양이네. 결혼생활이 힘들어서 기억력이 쇠퇴했나?” 등등 여러 변명을 늘어놓는다. “학교를 다니긴 한 거야? 뭐 아는 게 있어야 대화를 하지.” “그래 너 잘났다. 잘났어.”
어금니가 아파 얼굴 좌우가 삐뚤어질 정도로 부었다. 오랫동안 다니는 중국 치과에서 신경치과의사를 추천받았다. 임플란트 의사, 아이들 치아교정의도. 치아뿐만 아니라 내과의사, 재정설계사, 프레임 숍, 변호사 등등 중국인들과 거래를 많이 한다. 한때 맨해튼 차이나타운 근처에 살았기 때문인지, 한자 쓰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중국 한의사와 인연을 맺고부터다. 아파서 축 늘어진 나를 옆에 앉혀 놓고 영어가 서툰 중국 한의사와 한문을 써가며 손짓 발짓 신이나 해대더니.
남편은 어릴 때 배운 한자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동기인 남편과 똑같이 배운 나는 잊었는데. 남편 말로는 차이나타운에 살면서 옛 기억이 되살아났다나. 특히 구한말 역사에서 일어난 중요 사건도 연도별로 줄줄 꿰고 있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다.
내가 뭐 역사, 한문 그리고 정치, 사회 돌아가는 건 몰라도 나도 잘 아는 분야가 있다고요. 돈 돌아가는 경제는 남편보다 내가 더 잘 안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어떤 모임에서 한 선배가 나보고 ‘투자의 귀재라며’ 우스갯 소리를 해서 얼굴이 발개진 기억이 있다. 물론 부풀린 소리지만. 아무튼, 학생 론(loan)을 제때에 갚지 않은 남편의 뭉겨진 크레딧을 살려 놓은 것이 이 무식한 아줌마라고.
“예쁘고, 아이비리그고 간에 결혼하기 전에 꼭 학자금 융자 얼마 있는지는 알아봐라. 부모 학자금 융자 끝나기도 전에 자식 융자 시작하는 미국가정들 많다더라. 네 아빠 융자 갚느라고….” “엄마~ 밀리언 타임도 더했어요.” 아이들이 사귀는 여자가 예쁘다, 스마트하다고 자랑하면 으레 따라 나오는 내 넋두리다.
한문이나 역사 그리고 정치는 한낮 공리공담의 연속이고 그런 것 없이도 하루하루 잘 살 수 있다. 그러나 크레딧 카드빚이 밀리면 삶이 어찌 힘들어지는 줄도 모르면서 무식은 누가 무식하다고 배부른 소리를. 돈 걱정 없이 살게 해주는 이 무식한 아줌마를 존경해야지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허구한 날 지껄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