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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스테파니 S. 리: 험한 세상에 튼튼한 다리 되어
흔들리며 피는 꽃 (24) 그때 그 사람
험한 세상에 튼튼한 다리 되어
Daughter, My Future | 13” W x 18” H | 2016 | Stephanie S. Lee | Natural mineral pigment on linen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갓 뉴욕에 왔을 때 동네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우스스트릿씨포트(South Street Seaport)를 구경하려고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를 걸어서 넘어간 적이 있다. 건너와서 한참놀다 어둑해진 하늘 아래서 불이 켜진 다리를 감탄하며 올려다보고 있는데 뜬금없이 나더러 "I want you to be as strong as the Brooklyn Bridge"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다. 남자로서의 매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어서 연인으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말이나 인격은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존경할만한 것들이 꽤 많이 있다.
이처럼 시간이 많이 지나면 어떤 사람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주 사소한 물건 하나, 혹은 말 한마디로 기억 되어 오래 남기도 한다. 시간에는 이렇게 쌀뜨물이 가라앉듯, 마르고 날아가 뼈대만 정갈하게 남듯 이런저런 부수적인 꾸밈을 생략시켜 본질만 또렷이 남아 보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교양있던 사람도 남자가 되면 옹졸해 지는건지 사귀는 사이는 싫다고 못박으니, 며칠전 자기가 줬던 꽃병을 다시 되돌려달라며 돌변해서 놀랬다. 며칠 후에 금방 체면을 되찾고 자기가 속좁게 굴었다고 사과를 하긴했지만 '좋은 사람'이랑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던 시절, 왠일인지 그때는 용기가 나 거절을 했었던 게 정말 다행이다 싶었더랬다.
‘사람이 좋은것’과 ‘좋아하는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면 인생이 괴로워진다는걸 늦게서야 깨달았다. 하긴 사람의 호의에 적절하게 보답하는 세련된 방법을 익히기엔 한평생으로도 모자랄지 모르겠다. 지금도 늘 이런저런 큰 도움과 호의에 턱없이 부족한 대응법으로 쩔쩔매며 헛웃음으로 떼우곤 하니까.
어쨌든 20년이 지난 지금 내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문득 그때 들은 "I want you to be as strong as the Brooklyn Bridge" 라는 말이 선명히 떠오른다. 그 당시엔 맥락없이 들리던 그 말이 이제와 내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깊게 와닿는다. 물론 그 사람이 나를 보며 생각했던 것은 내가 내 딸아이를 보며 생각하는 것과는 다소 달랐겠지만 말이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백년넘게 우뚝 선 다리처럼 강한 여성으로 컸으면 싶은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마다 등교길 계단을 타박타박 올라가는 아이의 뒷모습은 늘 짠하다. 자기도 늦었는데 다른 애들이 뛰어들어가는 걸 비켜주고 기다려주다 나중에서야 올라간다. 내 아이에게 선한 마음이 있어서 다행이구나 싶다가도 이 험한 세상, 저러고 나약해서 어찌 살아나갈까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나같으면 어떻게든 헤집고서 요리조리 빠져나갔을텐데 그런건 어찌 날 안닮았는지... 혹시 나도 어릴 적엔 저랬던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참 신기한 경험이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우리를 둘러싼 여러 다른 인간관계와 사회현상들을 또 다른 시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아이의 나이 일때는 어땠었나 더듬어 보게 되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이전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법한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여튼 지금도 여전히 브루클린 다리는 뉴욕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다리이자 앞으로도 계속 굳건히 서 있어줬으면 하는 다리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의 말처럼 그때의 나보다 많이 튼튼해진 것 같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딸아이도 당차고 강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때쯤 나는 또 누군가의 기억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