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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이수임: 봄처녀의 절규
창가의 선인장 (52) 친구야, 제발!
봄 처녀의 절규
달빛 잠긴 섬뜩한 강물을 들여다보며 화가 뭉크의 작품 ‘절규’와 같은 모습으로 소리를 한껏 지르고 싶었다. ‘친구야, 제발~’
무거운 다리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건내는 버스를 타려고 계단을 터덜터덜 힘없이 내려갔다. 트레인을 갈아타고 집에 오는 내내 착잡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와인 한 잔을 들이켜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친구와의 대화가 생각날 때마다 컴퓨터 안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를 반복하며 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밤새워 뒤척이며 악몽에 시달렸다.
한동안 연락이 전혀 없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바람도 쐴 겸 뉴저지로 와서 드라이브나 하자’고 했다. 외출을 거의 하지않고 집에만 있는 나는 모처럼 나갈 일이 생기면 들뜨며 기대한다. 작은 꽃무늬 하늘하늘한 회색 원피스에 연두색 스웨터를 걸치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따스한 봄날이 오면 입으려고 준비한 옷을 입은 모습이 화사했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뉴저지 건너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번거로운 외출이지만 봄 처녀처럼 다소곳이 앉아 오랜만에 친구와의 만남을 기대했다. 운전하는 친구 옆에 앉아 창밖으로 내다보는 길가 나무에 돋아나는 새싹들이 나의 외출을 반기는듯 했다. 야외에서 먹는 꿀맛같은 김밥과 잔디에 누워 마시는 커피 향을 맡으며 느긋함에 젖었다.
어두움이 깔리기 시작하자 더욱 밝게 발하는 벚꽃을 두고 집으로 가야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급히 돈 쓸 일이 생겼는데 급전해 줄 수 없냐?"고 하지 않는가! 순수함에 들떠있다가 헤어짐을 아쉬워하던 맥박이 멈추고 머릿 속이 하얘지다 뜨거워졌다. 눈동자가 허공을 맴돌며 할 말을 잃었다.
하루만이라도 우정을 나누는 단순한 만남으로 끝날 수는 없는 것일까. 누군가 그러더라 ‘만나자고 할 때는 다 이유가 있어서 만나자고 한다’고. 그냥,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으로는 부족하단 말인가! “친구야 제발, 돈 이야기는 은행에 가서 하면 안 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