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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허병렬: 배터리 충전의 계절
은총의 교실 (26) 여름 예찬
배터리 충전의 계절
Mohonk Mountain, NY
배터리가 없던 시절에는 전기 벽시계에 긴 전깃줄이 볼썽사납게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시계의 장점은 전혀 충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요즈음 벽시계에는 전깃줄이 달리지 않는다. 대신 가끔 배터리를 바꿔줘야 한다.
텔레비전이 꺼졌다. 리모트 컨트롤의 배터리를 갈았더니 영상과 음향이 되살아났다. 화재 경보 장치가 배터리 힘이 약해졌다고 듣기 싫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손목시계 바늘이 멈췄다. 배터리를 바꿔달라는 신호이다. 그런데 전기 기구에만 배터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도 제각기 배터리를 소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일상의 생활력이 고르지 않은 것을 느낀다. 한동안 신나게 일을 하다가도 얼마 동안은 일에 능률을 올릴 수 없다. 이런 생활의 리듬이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Mohonk Mountain, NY
그렇다면 새로운 활력은 어디서 얻게 되는 것일까. 그게 바로 새로운 배터리 역할을 할 것인데. 우리는 제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저마다 가지고 있는 배터리도 가지각색일 것이다.
혹자는 가족이나 친지와의 대화로, 독서로, 여행이나 산책으로, 음악 감상으로, 그림 그리기로, 글쓰기로, 멍하게 하늘 쳐다보기로, 휴식으로 … 배터리의 재충전을 할 것이다. 그러니까 배터리 색깔이나 모양이 다양한 것이다.
여름은 덥다. 그러나, 자연의 왕성한 생명력은 사람들에게 활력소를 불어넣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는 것도 대개 이 시기가 된다. 아마도 이 시기가 각자의 배터리에 재충전을 하는 좋은 때인 것 같다. 어떤 분의 이야기다. 남들이 쉴 때 일하려고 굳게 결심하고 휴가 없이 여름을 보냈더니, 그 영향이 일년 내내 남더라고. 쉴 때는 모든 것 뒤로하고 쉬는 편이 도리어 능률을 올린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생들에게도 이런 현상이 있다고 본다. 여름 내내 교과서 공부만 한다면 그들은 언제 인성을 키우며, 체험을 쌓으며, 사랑을 느끼며, 사회봉사 정신을 키우며, 취미 생활을 하겠는가.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지만 교과서에 있는 이론만으로 인성을 키우기는 어렵다. 넓은 범위의 책을 찾아 읽는 것은 긴 방학동안 할 일이다. 친구들과 캠프 생활을 하는 것도 이 시기가 좋지 않겠는가.
Central Park
휴가의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마음과 몸이 푹 쉬었나, 얼마나 일상생활과 달랐나, 얼마나 즐겼나, 얼마나 내 자신을 찾았나가 키포인트다. 모든 잡동사니를 잊는 시간을 가지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노력해서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자리에 새로운 전류가 흐르는 새 배터리가 자리잡을 수 있다.
그 작업을 하는 것이 바로 여름이다. 여름은 충전의 계절이다. 당분간 멀어졌던 내 생활을 되찾는 계절이다. 오래도록 멀리 두어 달아나려던 내 자신과 만나는 계절, 내 가족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고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흩어졌던 친구들의 목소리와 맞닿는 계절이다. 그리고 너그러운 자연의 품에 마음 편히 안기는 계절이다. 그래서 두 팔을 벌리고 여름 찬가를 부른다.
배터리는 간편하게 전기 기구에 새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종류의 배터리를 가지고 있다. 이 배터리를 점검하고, 새 배터리로 바꾸는 일을 언제 할까. 여름이 적기인 줄 안다. 여름의 왕성한 자연이 뿜어내는 활력소가 그 일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다시 여름 찬가를 부른다.
Central Park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