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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s’ Corner
2017.08.13 21:52

(290) 류원혜: 무지개 빛깔 7주간의 기록

조회 수 1699 댓글 1

컬빗 인턴 뉴욕 스토리 <2> 류원혜

7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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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처음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물론 학교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완전한 혼자는 아니였지만, 25살이 된 시점에서 마치 아기새가 어미새의 보살핌을 받다가 둥지를 떠나 날개짓을 하는 것처럼 나도 서서히 부모님 품을 벗어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7주간의 뉴욕생활이 시작됐다.


뉴욕에서의 나의 첫 주는 뜨거운 빨간색 같았다. 열정으로 가득차서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뉴욕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치워나갔다. 아직 어느 레스토랑이 맛집인지, 어느 거리가 숨겨진 명소인지도 모른 채 관광책자에 나와있는 곳들만 찾아다녔다. 그와 동시에 훗날 언론사에서 나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원하는 신문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기 위해 면접준비도 열심히 했다. 중간중간 학교 대표로서 자그마한 심부름도 도맡아했지만 그조차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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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 주는 원하던 신문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하게 되어 기뻤지만, 그만큼 부담과 걱정도 함께 나를 짓눌러서 탁한 주황빛을 띄는 것 같았다. 처음 해보는 회사생활에 재미를 느꼈지만, 보수적인 분위기의 회사에서 항상 긴장하고 일하다보니 금세 피곤함을 느꼈고, 개인적인 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바쁜 와중에 인턴인 나를 챙겨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여서 힘들어도 좋았고, 앞으로의 시간들이 기대됐었다. 


하지만, 일주일도 채 일하지 못한 상태에서 문제가 생겨 더 이상 근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쁜 어른들과 좋은 어른들을 구분할 수 있는 시야가 생겨났다. 나름 교사이신 부모님과 그동안 가르쳐주신 선생님, 교수님, 사회의 어른들의 관심에 힘입어 바르고 정직하고 살아왔다고 자신하는 나였다. 


또한, 이 시대의 젊은이로서 기성세대와 사회에 맞추어 순응하고 순종하는 태도는 옳지 않으며, 나에 대한 믿음으로 해야할 말은 당당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왔다. 그저 일을 배우고 사회를 경험하며 좋은 어른들의 가르침으로 인생관을 넓히고, 나아가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 여러차례 부딪쳐보고 의견을 말해봤지만, 돌아오는 답변에서 나는 상당한 실망감을 느꼈고 심신이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포기하게 되었다. 비록 큰 상처는 안게 되었지만 분명 내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밑바탕이 되어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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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 오자마자 힘든 일을 겪으면서 단기간에 몸과 마음이 급격하게 상한 것을 스스로 느낄 정도로 우울감에 빠졌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밝은 노란빛이 찾아왔다. 뉴욕컬처비트에서 하나의 부속품이 아닌 한명의 인턴기자로서 다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사무실에서 일할 때 나는 직접 발로 뛰며 이곳저곳을 취재하러 다녔다. 한국에서는 혼자 어딘가로 훌쩍 떠나본 적이 없었던 내가 뉴욕에서는 나홀로 배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며 취재를 다니게 된 것이다.


청난 도전이자 놀라운 변화였다. 사람을 좋아해서 늘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한 나였기에 혼자 취재다니게 되면 무섭고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고, 자연 속에서 사색에 빠져도 보니 뉴욕에서의 매일매일이 상큼하고 싱그러운 푸르른 빛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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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얼마만큼 행복하고 행운 있는 사람인지도 깨달았다. 늘 내 곁에서 날 응원해주신 부모님과 항상 내 편에서 든든하게 날 지원해준 친구들과 남자친구의 소중함도 절실하게 느꼈다. 그렇게 나는 맨해튼, 브롱스, 퀸즈, 브루클린, 스태튼 아일랜드 등 뉴욕시 5개 보로와 뉴저지까지 각 지역에 어울리는 분위기에 맞춰 곳곳에 스며들어갔다. 


'T he Big Apple'이라는 뉴욕의 별명답게 커다란 사과를 조금씩 베어먹는 기분으로 구석구석 맛보기 시작했다. 새콤하거나 달콤하거나 떫거나 벌레먹었거나. 한입씩 먹을 때마다 맛이 제각각이였다. 사무실에 앉아 근무를 했더라면 가보거나 겪어볼 수 없었을 일들을 취재라는 명목하에 경험하게 되면서 나는 계속해서 성장했다. 초반에는 물가 높은 서울에 살다왔음에도 살인적으로 느껴지는 뉴욕의 물가와 쥐와 바퀴벌레가 다니는 지저분한 지하철역과 호텔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점차 그것들에 익숙해질 무렵 뉴욕의 숨겨진 보석들을 하나씩 발굴해가면서 내 마음 속에는 조금씩 뉴욕을 향한 핑크빛 사랑이 싹텄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야하고 그만큼 책임을 짊어져야했지만 하나도 무겁지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뉴욕에 대한 핑크빛 사랑이 바래고 바래서 그 빛을 잃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고 싶지만 그럴수 없기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다. 뉴욕에서의 좋든 싫든 그 어떠한 경험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매 순간이 찬란하게 빛이 났다. 그리고 그 나날들은 앞으로의 나를 더욱 당차고 용기있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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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튼 중심부는 빽빽히 들어차있는 빌딩숲에 발걸음이 빠른 뉴요커들로 가득차있다면, 그곳에서 조금만 벗어난 뉴욕은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자유로운 도시였다.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도 이상하지 않은 도시, 화장이나 옷을 어떻게 하든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도시, 다채로운 빛깔의 무지개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함께 빛을 발하는 도시. 바로 이 곳, 뉴욕이었다.


지난 7주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마음 맞는 친구들도 생겼다. 비록 이 글에 모두 다 담을 수는 없지만 내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차분하고도 오묘한 보랏빛의 아쉬움과 함께 한국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지만, 덕분에 더 강해지고 현명해질 수 있었고 삶의 교훈을 얻었다. 뉴욕에서 나는 가능성과 동시에 한계도 느꼈고, 꿈꿔왔던 이상과 막상 마주한 현실과의 괴리감도 느꼈다.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뉴욕에서의 특별한 추억들은 남은 내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찬란한 20대의 귀중한 경험들은 차곡차곡 쌓여 나의 삶에 무게감을 더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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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뉴욕에서 색다른 경험으로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부모님과 뉴욕 곳곳을 오감을 총동원해 느낄 수 있게끔 관심을 쏟아주신 박숙희 기자님, 낯설었던 이곳에서 언제든 편하게 찾아가서 의지할 수 있었던 나의 고모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류원혜150.jpg 류원혜/뉴욕컬처비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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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om 2017.08.15 05:34
    7주간의 기록 잘봤습니다
    앞으로 남은 일주일 좋은추억만드세요
    안전하게 한국오세요 한국돌아오면 좋은모습으로봐요 목이빠지게 기달리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