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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이수임: 천국이 따로 없네
창가의 선인장 (57) Hotel Tonight
천국이 따로 없네
“언니 여기가 천국이야. 언니가 그토록 가려고 하는.”
“그래, 네 말이 맞다.”
허드슨강가 리버사이드 파크의 바람이 살살 부는 나무 그늘 밑에 누워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엄청 기독교 신자인 언니도 지체하지 않고 내 말에 호응할 정도였으니.
뉴욕에서 조지아주 사바나까지 구글 지도에서 14시간 정도 걸린 다길레 ‘그 정도야 까짓것’ 하며 지난 연휴에 사바나로 달렸다. 차에 타자마자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머물고 싶은 데서 머무는 남편에게 말했다.
“약속해. 하루에 5시간 이상은 운전하지 않고 오후 3시 전에는 숙소를 찾아 들어가겠다고”
“알겠심더. 사모님”
버지니아 비치에서 하룻밤 머무르며 바닷가를 거닐었다. 끝없이 펼쳐진 해변 그리고 고운 모래밭, 그야말로 천연의 비치라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너무 플라스틱 간판으로 도배 된 상업적인 것이 눈에 거슬려 발만 담그고는 떠났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에서 하룻밤 묵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으로 달렸다. 남북전쟁의 첫 총성이 울렸던 프렌치 쿼터로 예쁜 프랑스 파리 근교의 한 동네를 옮겨 놓은 듯했다. 남북전쟁 이전으로 돌아가 시간이 정지된 듯한 모습에 숨이 탁 멈출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었다. 고색창연한 교회 뒤뜰 공동묘지 비문을 유심히 살피며 ‘찰스턴을 다시 찾으리라’를 되뇌지 않고는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사바나에 도착했을 때는 금요일 연휴라 숙소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돌아다니다 구글에 나온 가격의 두 배를 주고 간신히 하룻밤 묵었다. 문제는 토요일, 아팔래치아 산맥 기슭 애쉬빌에서였다. 오후 1시부터 이 숙소 저 숙소를 기웃거려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아예 한 호텔에서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까운지 부근 호텔 전화번호 리스트를 줬다.
항상 머릿속에 별로 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품었던 고속도로변에 흔히 있는 모텔 6에 마지막으로 전화 걸었다. 흡연방 하나가 남았단다. 가격은 100불. 가격에 끌리기는 했지만, 도저히 흡연방에서는 잘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알았다고 해 놓었다. 그리고, 고민했다. 여행객들이 월마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머무를 수 있다는 기억이 나서 “어떻게 할래? 주위에 월마트를 찾아볼까? 아니면 모텔 6에 가서 보고 결정할까?”
건물은 낡았지만, 유니폼 입은 직원들이 쓸고 닦고 관리해서인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안전하고 밝고 수영장도 있고 아무것도 없는 실내가 마음에 들었다. 쓸데없는 마이크로 오븐과 냉장고, 질도 좋지 않은 샴푸 등등으로 채워진 숙소보다는 깨끗한 시트에 타월이면 족한 그리고 콕 쏘는 듯한 핫소스 같은 담배 냄새도 피곤함에 묻혔는지 별로 느끼지 못했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니 조바심이 사라지며 천국이 따로 없었다. 고속도로변에 잡초 마냥 널려있던 모텔 6을 우습게 알았는데 완전 대박! “내일 버지니아 윈체스터에서도 모텔 6에서 잘까?” 까다로운 남편은 맥주만 들이켜며 말이 없다. 남편과 나의 천국 수준은 다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