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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이수임: 꿈 속의 자유부인
창가의 선인장 (60) 방황의 끝은 결혼
꿈 속의 자유부인
결혼 이래, 가장 여유롭고 찬란한 9월이었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밥도, 청소도, 빨래도 할 필요 없을뿐더러 도시락 싸야 할 아침엔 산책하고, 저녁때는 발길 닿는 데로 이리저리 쏘다녔다.
이렇게 혼자 있길 좋아하는 나는 왜 결혼했을까? 영주권 받으려고? 나이 든 부모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내 삶을 혼자 짊어지고 가기 버거워서? 더는 짝을 찾아 방황하기 싫어서?
그까짓 것은 받지 않아도 현실에 적응 잘하는 나는 어디선가 그럭저럭 잘살고 있을 게다. 아버지는 결혼하지 않아도 좋고 오히려 무자식이 상팔자라며 나이 먹어가는 딸을 달래려는지, 아니면 진심에서 그러는지 마음대로 훨훨 날면서 살라고 했다. 내 인생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은 오히려 가난한 화가와 결혼하고 아이 낳은 후 더욱 무거워졌다. 그러면, 더는 짝을 찾아 방황하기 싫어서 결혼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꿈 속에서 나는 항상 ‘결혼을 하긴 했던 것 같은데 왜 혼자일까?’를 곰곰이 생각하는 싱글로 허전하긴 하지만, 자유로운 미혼으로 등장한다. 현실에선 지랄같은 남편 비위 맞추다 지친 기혼이지만.
침묵으로 일관하는 하루하루를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잤다. 장도 보지 않고 냉장고를 탈탈 털어 비우며 아무 것이나 배가 고프면 먹었다. 내가 하고 싶은 나만을 위한 일만 했다. 남편 눈치 볼 필요도 없고 함께 뭘 하자고 건의하다 퇴짜 맞을 일도 없다. 어두운 숲 속을 지나다 갑자기 쏟아지는 햇볕 아래 웃음 지며 ‘좋다, 좋아!’를 혼자 주절대는 관객 없는 무대에 선 판토마임 주인공 같았으니!
아이 둘 제 밥벌이 잘하고 남편도 작업에 전념하며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밥 때가 되면 밥해야 하고 남편이 지나간 자리를 치워야 하니 작업하다가는 돌아오고를 반복하는 삶에 지쳤다고나 할까?
아무튼, 결론은 자유부인의 삶을 위해 낸 아이디어가 작품에 전념하고 싶은 남편과 통했으니. 하하하.
세 끼 도시락을 싸주면 1박, 다섯 끼 도시락을 준비하면 2박, 일곱 끼 도시락을 들고 스튜디오에 가면 3박 후에 집에 오는 남편,
"이 여사, 이제 식량이 다 동났는디 집에 가도 될까?"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한다.
어쩌 끄나. 배때기 고파서 글제. 구월 중순 아직 쨍한 더운 날에 고생했제. 긍께 마누라 있을 적에 잘하는 것을 어째서 몰랐으까 이. 서방님, 기왕이면 언능 집에 오시오. 눈치 볼 것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