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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박숙희: 카라 워커의 첫 뉴욕, 2002
수다만리 (23) 카라 워커의 첫 뉴욕, 2002
9/11 후유증 속, 새 챕터를 시작하다
My First New York
카라 워커 Kara Walker, 2002
Kara Walker, A Subtlety, or the Marvelous Sugar Baby, an Homage to the unpaid and overworked Artisans who have refined our Sweet tastes from the cane fields to the Kitchens of the New World on the Occasion of the demolition of the Domino Sugar Refining Plant, 2014. Creative Time, Brooklyn, NY. Photo: Creative Time
나의 딸 옥타비아와 나는 남편 클라우스와 살았던 메인주에서 뉴욕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클라우스는 메인미술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그곳 생활은 느렸고, 고달펐다. 떠나던 날엔 눈보라가 몰아쳤다. 포트 오소리티 그레이하운드 버스에서 어린 아이와 함께 내리는 것이 다른 시대의 여성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택시 정류장을 찾아봤다.
나라시 택시 운전수가 탑승을 제안했지만, 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옐로 캡이 늘어서 있는 곳을 보여주었을 때야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 남자는 운전수가 아니라 돈 없이 택시를 얻어타고 싶었던 것이다. 옥타비아는 그를 의심쩍어했고, 두려워했다. 나는 '안돼요'라고 말할줄 몰랐다. 그래서 우리 모두 택시에 올라탔다. 그 남자는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난 택시 안에서 옥타비아가 "이 남자가 도대체 누구야?"라고 묻지 않기만 바랬다.
Kara Walker, Gone: An Historical Romance of a Civil War as It Occurred b’tween the Dusky Thighs of One Young Negress and Her Heart. 1994. Paper, overall: 13 x 50′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New Heritage: Contemporary Art from the Collection(March 8, 2015–March 31, 2016)
2002년, 그해 겨울 나는 슬픈 아내이자, 성공한 화가, 그리고 괴상한 엄마가 뒤범벅된 채 뉴욕에 도착했다. 내 나이 서른 두살이었다. 나는 컬럼비아대 교수 하우징 덕택에 116스트릿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에 허드슨강이 약간 보이는 2베드룸 아파트를 구했다. 에어 매트리스 하나가 있었다.
뉴욕에 왔을 때 '뉴욕을 사랑해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당시 난 무척 두려웠었다. 난 보호된 삶에서 벗어나 9/11 이후의 불안정 속에 혼합된 심리 상태였다. 나의 첫 뉴욕, 1월의 아침은 상쾌했다. 아름다웠지만, 꽁꽁 얼은 날, 허드슨 강을 가로지르는 경적 소리는 공습 사이렌 소리 같았다. 나 자신을 추스린 후 "오케이, 이게 뉴욕인가?"하고 말했다. 30분간 기다렸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후에 일어나서 일을 처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 옥타비아는 뉴욕에서 나와 2주를 지낸 후, 메인주로 돌아가 아빠와 2주를 보냈다. 그해 3월엔 더위가 계속됐다. 옥타비아를 메인주로 데려가는데, 그곳엔 아직도 고드름이 있었다. 그 대조는 극단적이었다.
Kara Walker, The Rich Soil Down Here, 2002 Museum of Fine Arts, Boston
그해 봄 옥타비아와 나는 놀이터로 갔다. 철제 난간에 앉아서 그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테러 공격이라고도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뭔 일이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경찰관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한 남자가 당황해서 자기 애를 잡고 달아났다.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커지길래 나는 옥타비아를 바닥에 던진 후 애 위로 점프했다. 그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 남자는 주차 위반 딱지를 받았던 것이다.
2002년 내내 나 자신을 이런 껍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척 이상한 방법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난 일주일에 며칠씩 강의를 했다. 가르치는 것은 처음이었고, 난 자격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아주 어렵게 시작하고 있던 나 자신에 화나 있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나는 정말 좋은 호랑이, 늑대들의 친구가 된 어린 양처럼 느껴졌다. 동료들은 내게 친절했고, 도와 주었지만, 난 항상 모서리에서 내가 어떻게 갚을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날 나는 우리 마무리되지 않은 아파트에 동료와 학생들을 초대해서 음료수를 대접했다. 파티가 무르익으면서 내가 좋아하지 않게될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난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다. 난 나에 대해서 질투하며, 의심하는 사람들을 알아봤다. 한때 겸임교수였던 한 여성은 내가 초콜릿을 자르는 것을 쳐다보더니 "당신은 항상 그렇게 하나요?"하고 물었다.
그해 8월 클라우스가 이사왔다. 내가 난생 처음 산 가구였던 소파는 엘리베이터에 맞지 않아 버려야 했다. 그 쿠션 소파는 잠들기에 무척 좋은 것이었는데. 우린 베개들만 구조할 수 있었다. 그거야 말로 진짜 뉴욕의 순간이었다. 반쪽짜리로 남겨진 소파를 보았을 때의 욕구불만과 거세의 분출이라고나 할까.
Kara Walker (American, b. 1969). African Boy Attendant Curio with Molasses and Brown Sugar, from "The Marvelous Sugar Baby" Installation at the old Domino Sugar Factory Warehouse (Bananas), 2014. Cast pigmented polyester resin with polyurethane coating with molasses and brown sugar, 59½ x 20 x 19 in. (151.1 x 50.8 x 48.3 cm). Edition of 5.
여름에 우리는 새로운 가족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했다. 뉴욕은 아름다웠다. 공원들은 한창 녹음이 무성했고, 모든 놀이터에 자그마한 분수대들이 있었다. 집 안에서 말할 수 없는 긴장감 중의 하나는 뉴욕에 사는 것이 나의 프로젝트였기에 난 살아나가야 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뮤지엄, 거리 시장, 섬머 스테이지 콘서트 등 뉴욕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즐기며 다녔다. 혹은 내 스튜디오로 가서 미술 작업을 하거나 최소한 내가 증오했지만, 내가 돈을 버는 책임감있는 가장으로 보였다.
내 인생의 색깔은 나의 고독감을 해소하려 노력하면서 변화했다. 다음 해 가을 나 자신이 한 아티스트로서, 한 엄마로서 독립적으로 새출발하면서, 또한 내 삶의 가장 불안정한 부분이 결혼이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부터 확실해졌다.
뉴욕은, 그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그 잠재성은 클라우스의 눈에 사랑을 갈구하는 경쟁자였다. 그리고, 그는 그 파티에 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내가 들어가고 싶었던 서클 안으로 그와 함께던 아니던 들어갈 수 있었다.
Kara by Chuck Close, 2012
Kara Elizabeth Walker(1969- )
캘리포니아주 스탁턴에서 태어나 아틀란타로 이주해서 성장했다. 교수이자 화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 아틀란타 미술대 졸업 후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빅토리안풍의 검은색종이 실루엣(그림자) 작품으로 인종, 성, 폭력,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가. 28세에 맥아더 펠로우에 선정됐으며, 2002년 사웅파울로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로 전시했다. 2007년 주간 타임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1996년 독일계 쥬얼리 디자이너 겸 교수 클라우스 부르겔과 결혼, 2010년 이혼했다. 브루클린 포트그린에 살며 컬럼비아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네덜란드 출신 사진작가 아리 마르코풀로스와 연인 관계로 알려져 있다.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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