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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김희자: 메피스토펠레스의 후예
바람의 메시지 (29) 야망의 타이틀 매치
메피스토펠레스의 후예
Wheiza Kim, The too long silence, 1998, 22"x25"x2", Acrylic on plywood with mirror
모든 도시들은 인간 욕망의 흥망성쇠를 끓이는 용광로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깊게 용암이 끓듯한 용광로가 맨해튼일꺼라 생각된다.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가 사랑하는, 세상에 내노라할 연금술사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기록들을 갱신해내는 끝나지 않을 야망의 타이틀 매치 링이라해야할 곳이다. 도시인이라면 모두 탐낼 물질로 된 모든 것들을 욕망의 거푸집에 부어 만족을 캐스팅해낸다. 쇼핑몰과 쇼윈도 속에선 휘황찬란한 탐욕의 교감이 오가고, 길 거리엔 언제나 자동차와 사람들이 마치 범람하는 붉은 강물 처럼 흘러 넘친다. 꿈을 품는 것은 인간의 존엄함이며, 무한 경쟁은 문명을 발전의 원동력이기에, 용기있는 자들이 몰려드는 보이지 않는 전쟁터가 바로 이 도시다. 내가 갖는 느낌은 전설일 뿐이라는 드라큐라의 흡혈 체인의 법칙인, 운명적으로 당한 약자가 복수를 하다가 결국은 흡혈을 향유하는자 로 변하게되는 보이지 않는 룰이 끊임없이 작동되는 곳이 아닌가 한다. 흔히 접하는 스토리 속에 순진한 젊은이가 꿈을 품고 도시에 와서 소매치기를 당하여 거렁뱅이가되고, 굶다못해 결국은 도둑의 보스가 되지 않던가. 어디 그 뿐인가, 예술계나 디자이너간의 아이디어 훔치기 전쟁 또한 만만치가 않다.
작가로서도 루저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 발동되어 화랑가나 아트페어에 짬짬이 나들이라도 해 보지 않으면 불안한 게 작업하는 사람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나 역시 그런지라 해마다 열리는 아모리쇼엘 가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니 놀랍게도 같은 기간에 대여섯개의 아트 페어가 뜨니 당황스러웠다. 왜들 동시에 페어를 여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이익추구에 효율이 있어서려니 하며 생각을 접어버렸다. 몸이 하나 뿐이니 해마다 가던 아모리 쇼에만 가기로 했다. 다른 아트 페어들을 인터넷으로만 대강 훑어 보아도 21세기의 첨단 감각을 추구하는 절대자유 세대의 축제장인 것 같다. 나는 이미 그러한 천방지축인듯한 감각의 대열에는 낄 수도 없고 공감도 되지가 않지만 감동받고 이해하려 노력은 한다. 어쨋거나 현재를 사는 작가들은 그러한 미술시장 속에서 자극을 받고, 몇세기 동안의 같은 주제나 사물들이 다른 시각으로 전개되는 신선한 젊은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그곳에서 무슨 천지개벽할 일이 일어나도 전혀 개의할 것도 없는 아웃사이더이다. 고립된 화실에 갖혀 지내다가 언뜻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세태의 바람 따라 일어나는 문화의 파도를 구경이나 할까 하고 털고 일어난다. 미술 장터에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나서는 방관자의 태도로 참여할 뿐이다. 그곳에서 마치 적지를 탐색하는 군인들 같은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안면있는 많은 작가들을 만나게 된다. 인사를 나누며 말하지 않아도 아는 숨은 의도들을 미소로 주고 받는다.
항상 수많은 전시회들을 보고나면 어김없이 내 앞을 가로막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작가들은 언젠가는 쓰레기가 될 작품들을 끊임없이 만들고, 화랑들은 왜 새 전시를 늘상 할까라는 의문이다. 전자는 자존과 명예를 위해서이고, 후자는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단정짓기엔 보이지 않는 문화적 시스템이 시계톱니같이 정밀하게 작동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메피스토의 스마일이 깃든 이 도시엔 150개국에서 한번 겨뤄보겠다며 몰려와 길에 걸리고 밟히는자들이 모두 예술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그들은 작업을 하지 않고는 살아있는 느낌을 갖지 못하기에 열정을 불태우며 공허할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것일까?.
예술가는 생의 본질을 잊지않고, 시인의 영혼으로 현상을 보고, 사유하며 승화시키는 과정으로 작품 행위를 하는 자다. 그러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세상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나는 살아왔다. 그러나, 요즈음의 세태는 오로지 순발력있는 즉흥성과 더 강하게 감성을 자극을 하기위해 칼날같은 표현이, 말하려는 메세지보다 더 우선인 것 같다. 누구의 테크닉이 더 기발하며,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눈을 사로잡아 혼미하게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데, 작품에 무슨 인간적 진정성이 깃들 곳이 있겠는지. 수많은 야망을 가진 예술가들은 성공을 향한 열망으로 메피스토의 강림을 찾아 헤매이는 시간이 작품에 대한 진실한 사유시간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다. 도덕적 양심이나, 인생과 예술에 대한 철학같은 것은 폐기됨이 당연한듯 하다.
메피스토펠리스는 파우스트를 유혹하여 욕망을 위해 영혼을 팔도록 만든 소설 속의 악마다. 그러나, 지금에 그 악마는 책에서 탈출하여, 수많은 야망을 가진자들이 자신에게 그 악령이 강림하기를 기다리는 성공의 신으로 숭배되어, 열망을지배하고 군림한다. 인류 문화사 속의 악령들은 종교적인 사탄으로부터 낭만주의 시대에는 냉소하는 은유적 존재로 미화되어 문학, 음악, 미술 속에서 대중적 지위를 획득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지금엔 돈과 물질, 과학적 증명만이 진실인 현대인의 욕망을 지배하는 파워로써, 악마라 불리우거나 악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선의 하위에 있지 않다.
Wheiza Kim, The remains in the sand-wind, 1998, 26"x25"x3", Acrylic on plywood with mirror
지금 시대는 메피스토적인 악의를 수계받지 못하면, 성공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기에 선의 상위를 획득함도 모자라 초월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선악의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지극히 개인적일 뿐이며, 예술도 개인의 감성 기준이다. 그야말로 현대엔 얼마나 열광적인가 하는데 그 잣대가 작동되기에 모던 예술은 더욱더 SNS와 결탁되고 상업적 이벤트성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맨해튼의 상가 길들을 걷노라면 메피스토의 부름을 얻은 후예로의 천재들이 마술을 부린듯한 황홀한 명품들, 더 이상은 상품이라 부르지 말라는 예술품으로 넘치는 쇼 윈도우들에 경이감이 우러난다. 인스톨레이션 아트라는 명칭과 함께 예술 장르를 획득한지 오래이고, 패션이 예술이냐고 구겐하임 전시(*조지오 아르마니전, 2001) 때 크게 시비논란되던 때도 이미 옛날 얘기다. 인간의 창조물은 다 예술이 될 수 있다라고 선언된지 오래이지 않은가. 길거리 쇼윈도 전시장이 어쩌면 미술 작품 전시장보다 하이센스로 상혼을 자극하고 연출하여, 생각이라는 납추를 배제하고, 즉발적인 충동을 선호하는 도시인의 미적 욕구를 잘 포착하여 더한 감흥을 준다. 정말 판매행위도 구매욕구도 모두 환상적 매칭이 되어 속말 그대로 예술이다.
내가 몇년 전 런던에 여행 갔을때 많은 명품 가게 쇼윈도를보며 순수 미술에 대한 모욕같은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기존 미술사 속의 작가는 물론이며 현재 명품이라는 상품들 과 유명세를 누리는 고금의 작가작품들이 상업예술의 마술성과 믹스되어 시각예술의 첨단을 연출하고 있었다. 선입견을 부셔버리기를 고유권한으로 아는 젊은 시각들이 클래식 아트에 상혼의 무지개 날개를 접착한 거다. 드디어 문화유산으로 취급되어지던 지고의 미술품들은 미술관에서 거리로 나와 대중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죽은 작가들은 말이 없으니 치욕스럽다고 말할 리도 없을 테고, 블루칩 작가들은 댓가만 지불된다면 아마도 그러한 쇼윈도에 걸리지 못해 안달을 할 터이지 싶다. 이제 맨해튼 5번가 전체가 과장하지 않고 뮤지움 스트리트임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할 것 같다.
나는 아직 메피스토펠리스의 유혹의 손길은 커녕 눈길도 느껴본 일 없는, 괴테의 순수한 학자 파우스트에 불과하다. 그 사실은 결코 다행이랄 수 없는, 이 시대의 루저임을 인정해야할 꺼라 여긴다. '신은 죽었다'가 선언되고 사람들이 인정한 이후로는 누구나가 자신이 신이 되어 스스로에게 선악에 대한 판단 기준이 있다고 규명된지 오래다. 시대는 바야흐로 이긴 자가 진이며, 선이다. 그렇다고 진자가 악인 것은 아니다. 단지 패배자이며 소리없이 쓰레기 처분을 당하여도 할말이 없는 거다. 존재되어야할 이유가 없어져 가랑잎처럼 날리다 사라질 뿐이다. 성공의 창조주 메피스토펠레스가 유혹을 함직한 인간은 영혼을 팔고라도, 시대의 최상위를 차지하기 위해 악마의 위력을 갈구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뉴스를 통해 혜성을 보듯 바라본다.
꽤 오래전 이지만, 나는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을 미술 잡지에서 처음 보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떨리고 철렁했는지 모른다. 드디어 예술은 메피스토펠리스의 전리품이 되고 말았구나 하는 올 것이 왔구나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었다. 그 작품의 가격이 육백억 달러라고 모든 신문과 잡지에 대서특필되고 모두가 찬사를 넘어 숭앙함이 얼마나 내 작가적 양심에 치욕스러웠던지.
인간이 정신을 가진 존재이기에 그 영혼의 희노애락을 해학적으로 표현함으로 공감할 수 있기에 예술을 숭고한 장르로 우러러 보지 않았던가. 그의 많은 작품이 혐오스러운 세상 현실을 조롱하기를 가슴이 섬뜩하게 했을 때 많은 이들은 어리둥절함으로 통쾌해하기도 했다. 그후로 무수한 추종자들이 나와서 악령의 목소리를 고조시키는 쇼에 불쾌감이 난무하게 되고 기만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물질과 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숭배의 아이콘이 될 다이아몬드 해골의 등장과 그 두눈 속에 앉아 낄낄대고있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시니컬한 웃음을 접하게 됐었다. 세상은 그렇게 한 미친 창조자가 나타나서 그 전 시대의 정과 반에서 이루어진 합조차도 엎어버리고, 시간이 흐르며 그 경악을 즐기는 자들이 주류가 되고 일상으로 정착되어 진다.
Wheiza Kim, Rising from dark perception, 2001, 30"x30"x3", Acrylic on plywood with mirror
뉴욕에 와서 몇년을 작가로 지내며 딱히 어떤 성과도 없이 참으로 막막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홀로 작업만 하며 가끔은 전시를 하시던 대학교 때 교수이던 분의 친구를 만나게되었다. 뉴욕에서의 작가 살이에 대한 충고를 듣고 싶어서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그 당시까지도 트라이베카 지역의 작가 스튜디오는 대부분 그랬듯이, 오래된 옛날 건물에 금방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되는 엘리베이트를 타고 올랐다. 그의 작업실 겸 거주하는 어두컴컴한 공간이 열리고, 로프트의 천장은 매우 높았지만 그림들이 다닥다닥 붙은 벽을 쳐다보며 그리 좁지는 않음에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는 태극도 교습을 부업으로 하며 생활비를 번다 하시며 겸연쩍어 했다. 그의 작품은 기운생동이 컨셉이라고 하며 붉고 검은 붓획의 강한 작품들을 설명을 해주었다. 어쨋거나 수십년을 소호 화랑가에서 한국 작가들과 교류하며 산 경험을 통해 뉴욕 바닥에서 작가가 어떻게 살아가야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지를 여쭈었다.
그는 내 질문에 대답하길, 그 당시 백남준이 기인인양 칭해지는 퍼포먼스 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던 시절이었었기에, 그처럼 남의 뒤통수를 긁고 칠 만큼의 이해불가의 짓거리에 철학을 씌우는 방법도 하나이다. 그래서라도 많은 구경꾼과 신문기자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를 하던가. 아니면 돈이 무지무지 많아서 자가 영업력을 동원시키던가. 둘중 하나 밖엔 유명해질 길이 없다라고 했다. 아니면 나처럼 이렇게 구차스레 살면서 스스로의 예술관이 내 무덤에 들어갈 관짝인줄 알고 사는 거구. 예술이란 다 각자마다의 취향일 뿐이지 어디에 절대적인 잣대가 있던가. 인간들이 만든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인데 그걸 절대기준으로 보려들면 진리와 멀어진다고 장자가 말했지. 그는 속박을 넘어 얻을 수 있는 장자의 진정한 자유에 대해 긴 강의를 해 주었지만, 나중에 다시 공부를 하고야 알게 됐지 그 당시엔 잘 알아 듣지 못했었다.
그리고, 자가 영업력에 대한 얘기는 지금도 비밀 아닌 비밀로 작동되어지고 있다. 첫째, 돈으로 유명미술 매거진에 광고 지면을 사고, 전시 후 기사가 나오도록 미리 섭외하여 큰돈을 쓰고, 그라운드 레벨이면 더욱 좋고, 비교적 평가가 좋은 번듯한 소호나 첼시의 전시장에 그들의 수만불 되는 한달 관리비 이상을 커버할 것을 약속할 수 있어야 한다. 전시중 작품이 팔려야하는 데, 한인 이민자들은 아무도 작품살 사람은 없다는걸 우린 잘 알지. 그러나, 화랑이 우리에게 바라는 게 있는데, 혹시 아시안 콜렉터를 확보할 챈스라도 얻을까 하는 기대를 하지만 눈 닦고 봐도 찾기 어렵지. 그러니 결국은 자기 자신의 작품을 남을 시켜서 최소 한달 운영비 이상을 자기 돈을 주어서 사들일 만큼의 억대 이상을 뿌릴 경제 능력은 되야해. 그렇게 몇번을 반복하고, 물론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색다른 작품이기만 하면, 다른 상업 화랑에서 눈길을 주기도 해.
콜렉터들이 한국작가 작품을 사들일 일이 없는 게 제일 문제이지만 가끔은 여기서 공부하여 연결이 있고, 오래된 작가들이 뮤지엄 큐레이터들과 연결이 닿아 미술관으로 작품이 들어가는 경우가 가뭄에 콩나듯 없지는 않아. 창조적이니 어쩌니하는 작품들 다 거기서 거기야.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엔 동양철학의 종이옷을 입히면 서양인들에겐 다 그럴싸해보이기 마련이거던. 그들이 동양철학에 대해 깊이 아는게 없으니 신비하지. 서로 그렇게 속고, 속이며 우선 머리를 들이 밀어야 만 작업을 지속할 이유라도 생겨서 살아낼 수가 있지. 누구누구의 이름을 대며 비아냥대던 그의 모습이 선하다. 어떤 점에 대해선 논박하고 싶었지만, 반세기를 뉴욕 화랑가에서의 한국작가들을 만나고, 보며 깨달은 한 작가로서의 한과 소감이었기에 침묵했다.
얼마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의 너무도 어둡고 적막한 스튜디오에 져내리던 붉은 햇살과 캔바스 위의 검고 굵은 붓 획은, 빛을 등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저항하며 스스로의 기운생동을 강화시키려 빛의 담지자인 루시퍼를 기다리는 춤이기라도 했을까. 가장 크고 깊은 도시 한가운데 아파트 동굴 속에서 마치 밀교를 수행하는 승려처럼 홀로 살다간 한 노작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어두운 데서 군중 속의 고립을 버티고 살았을까. 과연 예술은 그와 같이 생을 바쳐 이행할 만큼의 가치로운 것인지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 어떻게 해서던 정직한 영혼으로 작업하려는 루시퍼를 가슴에 깃들이며 작업하는 작가들을 더러 만난다. 그 모두가 언젠가 진정성 있는 예술의 본래 가치를 방기하지 않은 작업 속에서 자기 자신을 구제하고, 타인들과 하늘 냄새가 날 감동을 나누는 작가들로 거듭 태어나서 지복을 누리기를 빌어 본다.
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