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 '클레어의 카메라(Claire's Camera)' 링컨센터 개봉 ★★★★
클레어의 카메라 Claire's Camera ★★★★
순수와 위선의 알레고리
Claire's Camera by Hong Sang-soo
지난해 10월 뉴욕영화제에선 홍상수(Hong Sang-soo) 감독의 '그 후(The Day After)'와 '밤의 해변에서 혼자(On the Beach at Night Alone)' 두편이 초청상영되었고, 11월엔 '밤의 해변...'이 링컨센터에서 개봉됐다. 그리고, 올 3월엔 '클레어의 카메라(Claire's Camera)'가 링컨센터에서 개봉됐다. 2017년 홍상수 감독이 연출한 3편 모두 그의 뮤즈 김민희(Kim Min-hee)가 출연하고 있다.
2016년 5월 칸영화제에 초대됐던 김민희와 이사벨 위페르를 캐스팅해 영화제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에서 촬영한 작품이 '클레어의 카메라'다. 당시 김민희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The Handmaiden)'로, 이사벨 위페르는 폴 버호벤 감독의 '엘르(Elle)'로 칸의 레드 카펫을 밟았다. 홍상수 감독의 20번째 장편(69분) '클레어의 카메라'는 다분히 그가 영향을 많이 받은 프랑스 에릭 로메르(Éric Rohmer) 감독의 '클레르의 무릎(Claire's Knee, 1970)'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인체인 '무릎'은 감성적이지만, 기계인 '카메라'는 이성적이다.
Claire's Camera by Hong Sang-soo
칸영화제로 출장간 영화사 직원 만희(김민희 분)은 보스 양혜(장미희 분)으로부터 갑자기 해고 통지를 받는다. '순수하지만, 정직하지 않다'는 이유다. 마음이 착잡한 만희는 떠돌다가 파리에서 휴가온 교사 클레어(이자벨 위페르 분)를 만난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클레어는 칸영화제에 초청된 소감독(정진영 분), 양혜, 만희를 만나 사진을 찍고 어울리면서 이들의 관계에 대해 알게 된다.
스마트폰 시대에 굳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클레어는 한국 영화인들(만희, 양혜, 소감독) 서클에선 아웃사이더다. 그녀는 우연히 이들을 만나 이들의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물이다. 클레어는 마치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 1987)'에 등장하는 천사들처럼, 고뇌하는 3인의 주변을 맴돈다. 천사의 날개 대신 카메라를 들고서. 클레어는 "내가 당신 사진을 찍으면, 당신은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예요"라고 말한다. 사진은 순간의 진실일뿐이다. 또한, 카메라 앞에서 인간은 최선의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한다. 냉동정지된 시간 속의 자아는 찰나의 진실만 담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진적 진실 하나로 그 인물 전체를 평가하고, 재단한다. 또한, 대중은 그것은 진실로 받아들인다. 후에 수면 위로 드러난 홍상수-김민희 스캔달을 예고하는 듯하다.
클레어는 특히 사진을 찍은 후 사람들의 변화를 주시한다고 말한다. 일단 카메라의 객체가 되었던 인물은 찍은 사람과의 관계를 바꾸어버린다. 사람은 환경에 의해 변화무쌍하게 반응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뿐만 아니라 촬영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클레어와 관계의 변화이기도 하다.
Claire's Camera by Hong Sang-soo
클레어와 만희는 처음 만났을 때 서로 '예술가(artist)'같다고 부추긴다. 클레어가 칸영화제에 처음 와본다고 말할 때 관객은 실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다. 이사벨 위페르야말로 칸영화제의 단골이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에서 영화는 코믹한 상황이 된다. 김민희 역시 현실에선 '아가씨'의 히로인으로 칸경쟁부문에 초청됐지만, 홍상수 영화 속에서는 칸에서 어이없이 해고당한 영화사 직원으로 전락한다.
칸영화제에 초청된 소 감독 역시 레드카펫과 기자회견과 포토세션, 카메라 플래쉬 세례와는 거리가 멀다. 비하인드에서 소감독은 만취한 채 만희와 하룻밤 정사로 양혜와 만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중년의 남자다. 그는 "자신의 실수 중 95%가 술취한 상태에서 일어났다"고 푸념한다. 그러면서도 술을 끊을 수 없는 루저다. 소감독은 홍감독의 자조적인 자화상일까? 영화 도입부에 만희가 일하는 사무실에 홍 감독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Yourself and Yours, 2016) 보인다. 이 영화가 홍감독 자신의 이야기임을 입증하는 장면이다.
소감독은 직업상 양혜(오랜 동반자)가 필요하지만, 마음은 만희(새 여인)에게 기울어져 있다. 소 감독은 만희의 미모에 대해 당당하라고 말하지만, 반바지 차림에 대해서는 '성적인 대상화'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카페 앞에 드러누운 늙은 개는 소 감독의 메타포처럼 보인다.
Claire's Camera by Hong Sang-soo
소감독을 사랑하고, 필요로하는 영화사 사장 양혜는 배신감과 질투심으로 일 잘하는 만희를 하루 아침에 해고해 버린다. 그녀는 자존심 때문에 '정사'가 아니라 '정직'이라는 이유를 붙인다. 또한, 만희의 영어 실력까지 폄하한다. 양혜는 위선적이다. 해고된 만희가 화장을 짙게한 채 클레어의 카메라에 포착된 것을 보고, 만희를 재단해 버린다. 양혜와 소감독은 속마음을 감춘 채 교언영색을 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해변가에서 만희 해고 이야기를 할때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이들의 뒷모습을 응큼할 정도로 롱테이크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순수한 만희는 자신이 소감독과 보낸 하룻밤에 대해서 연연해하지도 않는 쿨한 여성이다. 단지, 자신이 왜 갑자기 해고됐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그 의문은 클레어의 등장으로 풀리게 된다. 만희는 클레어와 만난 후 급속도로 친해지고, 그녀를 식사에 초대한다. 만희와 클레어는 친구 집 남자를 보고 '여자같은 얼굴'이라며 섣불리 판단해 버린다. 하지만, 만희와 클레어는 그 남자의 비만보다 그 얼굴에서 부드러움을 찾는 선한 사람들이다. 클레어와 만희는 정직하며, 순수하다.
만희: 당신은 왜 사진을 찍나요?
클레어: 왜냐하면 세상 일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만사를 다시 아주 천천히 보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만희와 클레어의 대화에서 선정적인 저널리즘과 속단해버리는 대중심리에 대한 감독의 반감이 느껴진다.
홍상수 감독은 같은 상황, 다른 이야기 속에 알레고리를 담아 낸다. 이제까지 20여편에 달하는 그의 영화들이 찌질한 중년 남성의 자화상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것 같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머리를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늘 내러티브 속에 메타포를, 화두를 남겨두기 때문이 아닐까? '클레어의 카메라'는 에릭 로메르의 '도덕 이야기(Moral Tale)' 시리즈에 등장하는 클레어의 무릎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덕성에 질문을 던진다. 즉, 홍상수 식의 술자리와 위페르의 카메라로 인간의 위선성을 폭로한다.
왜 남부 프랑스 해변가에서 비발디의 4계 중 '겨울'을 흐르게 했을까? 꽁꽁 얼어붙은 양혜와 소감독의 허위의식을 해동시켜주는 것이 만희의 순수한 마음과 클레어의 카메라였을까? 홍상수와 위성들은 같은 궤도를 맴돌며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작품마다 던져주는 별똥별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Claire’s Camera
4:30pm 6:00pm 7:30pm 9:00pm
https://www.filmlinc.org/films/claires-camera
*홍상수 영화는 왜 나를 슬프게 하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