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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은총의 교실
2018.04.19 14:11

(336) 허병렬: 백지도와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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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교실 (38) 교육 항해


백지도와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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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lviati World Map, 1525 


“거기까지 가는 길은…” “그건 걱정할 게 없지. 버튼만 누르면 되니까.” 목적지까지 갈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려던 사람이 머쓱해진다. 상대방 차에 네비게이션이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대화가 이루어진다. 네비게이션은 이만큼 신통한 재주가 있다. 가는 길을 지도로 알려주니까.


한국내 관광버스가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 네비게이션에 의지하고 있었다. 전에는 목적지에 갈때까지 몇차례 그곳의 담당자와 전화를 하더니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하던 사람의 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운전중차를 세우고 지도를 들여다보던 일을 하지 않게 되어서 그 시간도 단축되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모든 차에 붙는 기본적인 장치는 아니다. 여기에 따르는 비용이 있게 마련이어서 차주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이런 장치가 없는 차에서는 종전대로 지도에 의지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휴대전화에 필요한 전화번호가 입력되지 않았다면, 기억력을 활용하거나 수첩에 기입하는 방법이 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우리들은 고전적인 방법과 근대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일을 처리하고 있다.


이것은 여러방면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자녀 교육에 초점을 맞춰 본다. 교육 내비게이션에도 눈에 보이는 기계가 있고 그 대신 마음에 새겨두는 보이지 않는 지도가 있다. 누구나 자녀 교육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고 그 목표를 향해 항해하고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목표를 자녀에게 알려주면서 협력할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부모들의 내비게이션이다.


그러나 교육의 내비게이션은 목표가 어느 한 지점일 수 없다. 어떤 방향을 결정하는 일조차 복잡한 부수 조건이 따른다. 그래도 목표로 하는 방향을 분명히 정하면 발걸음에 힘이 생기고 강력한 실천력이 따른다. 그렇다고 목표가 너무 세분되면 생활의 폭이 좁아질까 봐 염려되고 또 마음의 유연성을 잃을까봐 조심스럽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녀가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부모가 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녀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이고 싶어요. 나는 부모의 꿈을 이루기 위한 존재가 아니에요’라고 부르짖는 학생을 보면서 감동한다. 그렇다면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 부모는 미성숙한 자녀들이 마음과 몸이 건강하게 자라서 사회의 좋은 일꾼이 되도록 격려하고 보살피는 보호자인 것이다. 말하자면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라고 할 수 있다.


차에 부착된 네비게이션에는 목적지에 가는 길을 알기 쉽게 붉은 색으로 표시된다. 가는 길이 몇가지 있겠지만 가장 조건이 좋은 길을 표시했을 줄 안다. 교육 네비게이션에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길이 소개되길 바란다. 꽃길·자갈밭길·개울옆길·험한 산길·오솔길·모래밭길·숲속길… 어떤 길을 걷든 자녀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상책이다. 어느 길에나 특색이 있고 삶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지도 중에 백(白)지도가 있다. 지도에 대륙·섬·나라 등의 윤곽만 그린 지도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을 기입하면서 용도에 맞는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나날, 자녀와 부모는 백 지도를 교육 지도로 그려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사·탐방·여행·견학·면담·제작… 등을 그려 넣으며 실천하면 자녀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


이와 같이 완성된 기성의 지도를 참고로 하되 자녀에 맞는 맞춤지도를 만드는 의미는 크다. 첫째, 개성적이다. 둘째, 창조적이다. 셋째, 기쁨이 있다. 넷째, 미래지향적이다. 다섯째, 가족애를 느낀다 등 긍정적인 수확을 얻게 된다. 자녀 교육을 할때 내 자신의 가치 판단 없이, 시류를 따르거나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는 일은 현명한 것이 아니다. 개성적인 내 자녀에게 기성복을 입히려는 안이한 생각이다. 내 자녀를 바르게 이해한다면 취할 수 없는 태도이다. 우리 가정의 교육지도는 백 지도여야 한다.



허병렬100.jpg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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