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의 부인, 브람스의 뮤즈...작곡가 클라라 슈만의 딜레마
조이스 양과 알렉산더 스트링 쿼텟 콘서트
Musical Love Triangle: Brahms and the Schumanns
슈만의 부인, 브람스의 뮤즈...클라라의 딜레마
조이스 양과 알렉산더 스트링 쿼텟이 25일 버룩PAC에서 슈만의 피아노 퀸텟 Op.44 연주 후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낭만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부인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지만, 남편 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피아노 신동 클라라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자 로베르트 슈만과 결혼한다.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 –1897)가 짝사랑했던 클라라는 슈만이 46세로 요절한 후 7명의 자식들을 키웠다.
클라라 슈만이 살던 19세기는 여성 작곡가도 드물었다. 신동과 딸, 아내와 어머니, 피아노와 작곡, 그리고 작곡가 남편, 남편 제자의 뮤즈라는 딜레마와 때로는 조율하고, 때로는 분투해야했던 클라라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드라마틱한 인물이었다.
요하네스 브람스(왼쪽부터), 그의 뮤즈 클라라 슈만, 그녀의 남편 로베르트 슈만.
최근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Joyce Yang, 양희원)이 버룩칼리지 퍼포밍아트센터(Baruch Performing Art Center)에서 알렉산더 스트링 쿼텟(Alexander String Quartet)과 체임버 콘서트 시리즈를 열었다. '브람스와 슈만 부부의 음악적 삼각관계(Musical Love Triangle: Brahms and the Schumanns)'를 타이틀로 한 시리즈의 첫 콘서트(4/25)는 슈만 부부의 곡으로 꾸며졌다. 로베르트 슈만의 '현악 4중주 A단조 Op.41, 제1번'으로 시작,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트리오 G단조 Op.17'를 연주한 후 로베르트 슈만의 걸작 '피아노 5중주 E플랫장조 Op.44'로 클라이맥스와 피날레를 장식했다.
콘서트는 27일 오후 7시 30분(로베르트 슈만 스트링 쿼텟 A장조, 브람스 스트링 쿼텟 A단조, C단조), 29일 오후 5시 콘서트(클라라 슈만 변주곡, 로망스, 가곡, 브람스 가곡과 퀸텟)로 이어진다. 29일 피날레 콘서트엔 조이스 양과 메조 소프라노 킨드라 샤리치(Kindra Scharich)가 협연한다.
알렉산더 스트링 쿼텟은 1981년 뉴욕에서 창단됐다. 1985년 런던국제현악4중주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버룩칼리지 총장메달을 수상했다. 구성원은 Zakarias Grafilo(violin 1), Frederick Lifsitz(violin 2), Paul Yarbrough(viola), Sandy Wilson(cello). http://www.asq4.com/about.htm
이 콘서트 시리즈는 낭만주의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그리고 브람스 사이의 삼각 로맨스를 상상하며, 클라라 슈만의 음악성을 재발견하는 시간이다. http://www.baruch.cuny.edu/bpac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에 관해 알아야할 것
클라라 슈만
-피아노 신동: 1819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클라라 조세핀 비크(Clara Josephine Wieck), 아버지 프레드리히 비크는 음악교사, 어머니는 성악가였다. 클라라가 네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가 키웠다. 9살에 첫 콘서트 데뷔 후 크랄라 비크는 해외에서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을 연주하며 '피아노 신동'으로 널리 알려진다.
-슈만과의 첫 만남: 클라라는 8살 때 정신병원장인 닥터 어네스트 카루스의 자택에서 콘서트를 하면서 남편이 될 로베르트 슈만을 처음 만났다. 슈만은 당시 17세로 9살 연상이었다.
-아버지 반대와 결혼: 청년 피아니스트 로베르트 슈만은 클라라 아버지 비크의 집에 하숙하면서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클라라는 18세, 슈만은 27세. 이들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하지만, 비크의 반대에 부딪힌다. 클라라와 슈만은 결혼하기 위해 법정투쟁까지 벌였고, 1840년 마침내 공식 부부가 된다.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좌). 슈만 부부의 자식들(우).
-커리어 좌절: 클라라 슈만은 저명한 피아니스트였지만, 계속되는 임신과 출산, 남편의 우울증 때문에 종종 콘서트를 취소해야 했다.
-천재 브람스의 방문: 1853년 9월 무명의 피아니스트 요하네스 브람스가 뒤셀도르프의 슈만의 집을 방문했다. 당시 클라라는 35세, 브람스는 21세. 슈만은 43세. 슈만과 클라라는 브람스의 천재적인 피아노 연주에 감동한다. 비평가로도 활동한 로베르트 슈만은 음악잡지에서 브람스를 극찬했다. 브람스는 14세 연상인 스승의 아내 클라라의 지성과 미모, 재능에 매료됐고, 짝사랑이 시작된다. 브람스가 연상의 클라라에 맞추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는 설이 있다.
-슈만의 자살 미수: 1853년 우울증에 시달리던 로베르트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한다. 이때 브람스는 슈만 곁으로 달려가 2개월간 살면서 클라라를 위로했고, 슈만을 간호했다. 슈만은 이듬해 3월 정신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때 브람스는 7명의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해 슈만의 집에 기거했다. 하지만, 플라토닉한 관계로 알려졌다. 이후 클라라와 브람스는 편지로 40년간 연정을 나누었다. 브람스는 '인생의 여인'에게 고백했지만, 클라라는 선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요하네스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브람스의 뮤즈 클라라: 클라라는 브람스의 곡을 대중 앞에서 연주한 첫 피아니스트였다. 브람스는 7번째 아이를 임신한 클라라를 위해 'Piano Trio No.1'을, 막내 아들 펠릭스가 태어나자 '슈만 주제에 의한 변주곡(Variations on a Theme by Robert Schumann)'을 작곡했다. 'Piano Sonata No.2'는 클라라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홀로 서기: 1956년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사망한다. 이후 클라라와 브람스는 대중의 시선을 피하고, 로베르트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떨어져 살게 된다. 클라라는 7명의 아이들을 기르면서 프랑크푸르트 음악학교에서 가르치며, 남편의 작품을 알리는데 열정을 쏟았다. 연주 활동을 재개하면서 '리스트에 비견되는 피아니스트'라는 평도 받았다.
-클라라의 최후: 클라라는 7명의 자식 중 네명을 앞서 잃었고, 남편과 아들 하나는 정신병동에서 숨을 거두었다. 클라라는 말년에 청각을 상실했고, 휠체어에 의존해 살다가 1896년 5월 20일 뇌졸중으로 삶을 마감한다. 76세의 클라라는 본(Bonn)의 남편 묘지 옆에 묻혔다.
독일 지폐의 클라라
-브람스의 탄식: 스승의 아내이자, 자신의 뮤즈였던 클라라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브람스는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 내가 진정 사랑했던 단 한명의 여인이 오늘 땅에 묻혔다”고 탄식했다. 브람스는 클라라를 위해 '네개의 엄숙한 노래(Four Serious Songs)'를 작곡하고, 이듬해 4월 3일 상심과 간암으로 사망한다. 브람스는 비엔나에 묻혔다.
-독일 지폐: 유로화로 통합되기 전 독일 100마르크 지폐에 클라라 슈만의 초상화가 실렸다.
-영화 속 클라라: 'Song of Love'(1947)에서 캐서린 헵번이 클라라 슈만 역을 맡았다. 독일 여성감독 헬마 샌더스-브람스(Helma Sanders-Brahms)가 '클라라(Geliebte Clara/Beloved Clara, 2014)'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