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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홍영혜: M5 버스 타고 맨해튼 구경하기
빨간 등대 <5> 당신은 왜 버스를 타시죠?
M5 버스 타고 $2.75로 맨해튼 구경하기
뉴욕 지하철의 머리와 꼬리의 몇번째 칸을 타야지 정확히 제일 가까운 출구로 나갈수 있는지 알 만하게 되니까 점점 지하철이 싫어진다. 공기도 안좋고, 낡고,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또 가끔가다 쥐도 보이고…
급할 때나, 멀리 볼 일 보러 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타지만, 집에 돌아 오는 길에는 여유가 있으면 M5 버스를 종종 탄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가는 길은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에 두시간 안에 버스를 타면 환승으로 처리되어, 왕복 교통비가 $2.75에 해결된다. 버스 탈 때 요금이 부과가 안되고 'transfer' 글씨가 나오면 그렇게 뿌듯하고 기분좋을 수가 없다.^^
M5 버스는 정거장 사이의 거리도 길고, 가는 길에 경치도 좋고 볼거리가 많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선이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조그만 보온병에서 따끈한 차를 따라 천천히 마시면서 바깥 경치구경을 하면 릴랙스가 된다. 동서로 맨해튼을 가로 지를 때 타는 버스 노선들은 차라리 걷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답답한 느낌이 드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옆에 앉은 낯선이와 "당신은 왜 버스를 타시죠?"부터 시작해서 이야기가 계속되면 벌써 집 근처 정거장에 도착해 허겁지겁 내리기도 한다.
뉴욕의 아름다운 경치 구경
M5 는 북쪽으로는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는 버스 터미날 앞(178가와 브로드웨이)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는 한인타운(K-town)이 있는 31가와 6애브뉴가 종점이다. 135가에서 72가까지는 리버사이드 드라이브를 달리면서 허드슨강과 리버사이드 파크의 시원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그랜트장군 메모리얼, 리버사이드 교회, 엘리노아 루즈벨트 동상을 지나가게 된다. 지금 만개한 벚꽃이 96가 근처에서 먼 발치로 보인다.
72가부터 59가까지 브로드웨이를 지나가면서는 링컨센터가 길 건너로 보이는데, 작년에 설치되었던 히포 발레리나 자리에 지금은 아주 예쁜 나무 발레리나 조각을 버스에서 볼 수가 있다.
59가 컬럼버스 서클을 돌아 마차들이 쭉 서있는 센트랄 파크의 남쪽을 지나고, 5번가를 타고 내려오면서 록펠러 센터가 보이고 이어지는 명품점들의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일부러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 즈음에 M5 버스를 타고가다 버스에 높이 앉아 록펠러 센터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화려한 윈도우들을 인파에 치대지 않고, 편안히 앉아서 서서히 감상할 수 있었다.
낯선 뉴요커들과 대화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면서 뉴요커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다음 버스가 언제 오는지 아는 방법도 다양하다. 나는 'City mapper' 앱을 이용하는데, 어떤 사람은 M5를 구글하면 버스가 지금 어는 정류장에 있다고 알려준다고 한다. 어떤 이는 버스 정류장마다 번호가 있는데 그 번호를 Text하면 몇시에 버스가 도착하는지 알려준다며 복잡한 방법으로 버스시간을 안다.
오래 산 뉴요커들만이 아는 그들의 비밀을 전해 듣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밤 10시 이후에는 버스 정거장이 아니어도, 요청하면 차를 중간에 세워준다. 사실을 확인해보려 운전수에게 이야기했더니 우리 집 바로 앞에 세워주었다. M5 버스를 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이드신 분, 장애자, 그리고 학교시간에 애들과 함께 타는 부모나 내니, 그리고 뉴욕서 일을 하고 조지 워싱턴 다리 버스 터미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거리 구경하다 심심해지면, 사람들이 읽고 있는 책제목을 구글해 도대체 무슨 책을 읽고 있나 찾아 보기도 하고, 옆에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지하철보다는 이어폰이나 셀폰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버스에는 더 많은 것 같다.
모니크라는 백화점 점원은 미드타운부터 인우드까지 버스로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짧은 거리도 아니고 또 걷기 힘든 노인도 아닌데… 하루종일 실내에서 일을 하니까 햇볕도 쪼이고 싶고 거리구경도 하고 바깥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셀마는 150가 근처에 사는데 장을 보려고 컬럼버스 서클까지 버스를 탄다. 그 근처에도 페어웨이라는 큰 마켓이 있는데 왜 멀리 여기까지 장을 보냐고 하니까 거기는 가까워도 버스에 내려 언덕을 오르내려야 하는데 멀어도 짐들고 걷기 편한 쪽으로 온다고 한다.
제리는 내 안경이 멋있다고 먼저 말을 걸어주었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관심사나 동네가 비슷해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함께 산책도 했다. 한 젊은 여성은 지하철에서 거의 한시간 넘게 갇힌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 다음부터는 절대 지하철을 안탄다고 한다.
나도 그들처럼
며칠 전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셀폰을 열심히 보다가 문득 옆에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양손에 그로서리백을 들고 있어서 얼른 여기 앉겠냐고 물어보았다. 갑자기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왜 나보고 앉으라고 하느냐?” “너랑 나랑 뭐가 다르다고 생각하느냐?” 라고 해서 어이가 없고 머리를 꽝치는 느낌이었다. 그 할머니를 자세히 보니 팔에는 근육이 있었고, 머리도 길게 구블부블하여, 몸짱 제인 폰다 느낌이 약간 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로서리 백도 땅에 놓지 않고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미안하다. 짐을 들고 있어 무거워보여서 그랬다”고 사과를 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는데 집에 오니 슬슬 기분이 나빠지면서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 나도 어느덧 할머니의 모습인데 그 분이 나이가 훨씬 많다 하더라도 바꿔 생각하면 기분 나쁠 수 있겠다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젠 자리에서 양보할 나이가 아니고,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나도 그들의 일부구나하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