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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 스테파니 S. 리: 컴퓨터 금지 카페에서
흔들리며 피는 꽃 (38) "No Laptop" Policy
컴퓨터 금지 카페에서
Hydrangea, Stephanie S. Lee, 2013, Color & gold pigment, ink on Korean mulberry paper, 7 ½˝ (H) x 15 ½˝ (W) x 2 ¾˝ (D) each
그룹전시에 참여하게 되어 작품을 브루클린까지 반입하고 맨하탄 수업에 가기 까지 네시간이나 비어서 여유있게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꽤 남아 숙제나 하자 싶어서 전에 이 동네에 왔을때 마음에 들어서 기억해 두었던 카페 '메종 메이'(Maison May, 270 Vanderbilt Ave. Brooklyn)를 찾아갔다.
주중 낮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고 조용하기에 잘됐다 싶어 아울렛 옆으로 자리를 잡고 주문한 뒤 얼른 랩탑을 꺼내 꽂았다. 그런데 왠걸, 종업원이 하는 말이 이 카페에는 ‘노 랩탑’ 규정이 있다고 한다. 주인이 카페 안의 기운을 중시 하기 때문에 카페 안에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나?
아니 카페에서 컴퓨터를 못쓴다니 이게 뭔소리야. 맘먹고 일부러 여기까지 열심히 걸어왔는데 점집도 아니고 카페에서 뭔 에너지 타령인가. 요즘같은 세상에 카페에서 컴퓨터를 못하게 하면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건지… 음료는 이미 시켰고, 아직 수업까지는 두시간이 넘게 남았는데 컴퓨터를 못하면 뭘 하고 있으란 말인가 싶어 짜증이 확 났다.
그럼 전화기 쓰는건 되는거냐고 물어보니 그건 또 괜찮단다. 아니 전화기로 인터넷을 보는거랑 컴퓨터로 보는게 무슨 차이라고 못쓰게 하는거냐 했더니 그래도 그게 주인이 지키라고 한 룰이라 자기도 어쩔수 없다며 정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다.
Maison May, Brooklyn
처음에는 황당해서 저 종업원이 일하기 싫어서 나를 빨리 쫒아내려는 건가? 아니면 동양인이라고 차별하는건가싶은 생각까지 들며 기분이 상했다. 근데 딱히 근처에 마땅한 카페도 없고, 이까지 걸어왔는데 다시 걸어가자니 멀고, 일단 시켜놓은건 마시고 가야지 싶어서 더 따지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그래도 다소 미안해하며 이야기 하는걸 보니 아주 거짓말을 하는건 아닌것 같기도 해서 일단 창가로 자리를 옮겨앉고 전화기로라도 숙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화면에 불편하게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하고있자니 이러나 저러나 똑같은 타이핑인데 뭐가 그리 차이가 난다고 컴퓨터를 못쓰게 해서이렇게 나를 힘들게 만드나 싶어 또 슬그머니 열이 올랐다.
Yelp에 1스타 리뷰를 남겨버릴까 보다하며 식식거리고 있는데 하나 둘 손님이 들어온다. 그런데 왠걸, 정말로 랩탑을 꺼내드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다들 책을 들고 와서 읽는다. 이동네 단골 손님들인지 이미 노 랩탑 룰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각자 공책에 뭔가를 적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며 여유로워 보였다. 심지어 전화기를 쳐다 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앉아 있으니 이집 인심 참 야박하기도 하다 하며 열냈던 마음이 조금 수그러 들며 어느정도 주인의 룰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모두가 쉴짬없이 바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억지로라도 사색의 시간을 만들어 주는 공간. 주인이 원했던 건 그것이 아니었을까? 뭐 그리 많은 일을 하겠다고 차 마시는 시간 까지 쉬지 못하고 컴퓨터를 꺼내 들었던 걸까 슬그머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Maison May, Brooklyn
컴퓨터가 없는 카페 안의 ‘에너지’는 정말 뭔가 달랐다. 아, 주인이 신경쓴다는 카페 안의 기운이 이런거였나보다 하며 아까는 황당했던 ‘기운 이론’이 와닿았다.
창가에 자리 잡고 앉은 나도 전화기안에 타이핑 하기를 멈추고 잠시나마 아무 생각없이 햇볕을 쬐며 창밖을 바라보다 무언가를 끄적이다 마음껏 시간을 즐겼다. 문득 집고양이의 삶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종일 꼼짝않고 이렇게 하염없이 창밖만 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나마 이런 여유를 선물해준 카페의 No Laptop rule에 감사하며 카페를 떠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잠시의 고요함이 아침일찍부터 떠나와 밤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다시 돌아온 하루를 버티게 해 주었다.
카페 하면 으례 컴퓨터 꺼내들고 공부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당연한 요즘, 저 집의 룰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음번에 왔을때도 종업원이 나를 말려줬으면 좋겠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억지로라도 필요한거다.
Stephanie S. Lee (김소연)/화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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