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딜러, 이삿짐 일꾼과 일확천금의 꿈
수다만리 (26) 윌렘 드 쿠닝과 로버트 마더웰 그림의 행방
아트딜러, 이삿짐 일꾼과 일확천금의 꿈
2011년 MoMA에서 열린 윌렘 드 쿠닝 회고전에서 '여인(Women)' 시리즈.
미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부른다. 뉴욕은 기회주의자가 아닌 보통사람에게도 순간 일확천금이 쏟아질 수 있는 도시일 것이다. 그것은 메가밀리언이나 파워볼이 아니다. 미술품이다. 뉴욕 미술계에서는 작품과 돈을 둘러싼 드라마가 펼쳐진다. 미술계 창고와 이삿짐 센터에서 뉴욕학파였던 추상표현주의 화가 윌렘 드 쿠닝과 로버트 마더웰의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진 뉴욕 스토리, 버려진 창고에 내건 도박으로 백만장자가 된 첼시 아트딜러와 일확천금을 기대했던 이삿짐 회사 직원 아들의 이야기.
# 창고를 열었더니 윌렘 드 쿠닝 회화 6점이
첼시 아트딜러 순간에 백만장자로...
David Killen
첼시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데이빗 킬렌(David Killen, 59)씨는 잭팟을 터트렸다.
지난해 1만5천달러를 주고 사들인 뉴저지 창고의 한 로커에서 추상표현주의 거장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의 회화 6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벌써 한 경매사는 이 그림들을 거래하겠다고 점 찍어놓았다.
데이빗 킬렌씨는 지난해 뉴저지 호호쿠스의 버려진 미술창고를 사들였다. 200여점 중 몇점은 자신이 격월로 열고 있는 경매에서 팔 수 있지 것이라는 기대로 건 도박이었다. 한점당 75달러꼴이다. 그는 트럭에 쓰레기들에 가까운 그림들을 싣던 중 'de Kooning'이라고 써있는 큰 박스를 발견한다. 그 안에 무려 6점의 드 쿠닝 회화가 있었다. 또한, 파울 클레(Paul Klee)의 것으로 보이는 그림 한점도 창고에서 건졌다.
2016년 크리스티 뉴욕에서 6630만 달러에 팔린 드 쿠닝 회화 'Untitled 25'(1977)
잭슨 폴락(Jackson Pollock)과 함께 전후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이끌어간 윌렘 드 쿠닝의 회화는 적게는 3만달러에서 수천만 달러까지 호가한다. 201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무제 25'(1977)가 6630만 달러에 팔려나갔다. 파울 클레의 작품 하나는 2011년 680만 달러에 팔렸다.
이 그림들은 한때 구겐하임뮤지엄의 복원부서에서 일하며, 자신의 복원회사를 운영하던 오린 라일리(Orrin Riley)씨의 맨해튼 작업실에 보관됐었다. 라일리씨는 1986년 사망했고, 애인이었던 수잔 슈니처씨가 사업을 인수했다. 그런데, 2009년 슈니처씨는 쓰레기 트럭에 치어 숨진다.
슈니처씨의 유산 관리자들은 남겨진 미술품들을 처분하면서 주인들에게 돌려주었으며, 주인을 못찾은 미술품 수백점은 남아있었다. 관리자들은 드 쿠닝의 판화 정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창고 렌트에 부담을 느낀 이들은 미술품이 보관된 로커 자체를 팔아넘기기로 하고, 구매자를 찾아 경매사로 연락했다.
당초 킬렌씨는 드 쿠닝의 사인이 없어서 진품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라일리씨와 드 쿠닝의 조수로 일했던 전문가 로렌스 카스타냐씨에게 문의했다. 그 결과 "1970년대 이스트햄턴에서 그린 것으로 생각되며, 드 쿠닝의 작품임이 확실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1970년대 드 쿠닝은 거장 축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윌렘드쿠닝재단 측에서는 작품 진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1978년 롱아일랜드 이스트햄턴에서 윌렘 드 쿠닝. 잭슨 폴락의 애인 루스 클리그만과 3각 관계에 빠지기도.
윌렘 드 쿠닝은 190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1926 뉴저지로 이주했다. 이후 맨해튼에 정착해 상업화가 겸 페인트공으로 일하다가 1950년대부터 '여성(Women)' 시리즈을 시작하며, 추상표현주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1943년 13세 연하 화가 엘레인 드 쿠닝과 결혼했다. 1963년 롱아일랜드 이스트햄턴으로 이주했으며, 말년에 치매를 앓다가 1997년 92세로 눈을 감았다. 드 쿠닝은 잭슨 폴락, 프란츠 클라인, 바넷 뉴만, 마크 로스코 등 전후 추상표현주의-미니멀리즘 화가군과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된다.
데이빗 킬렌씨는 어릴 적부터 벼룩시장에서 보물찾기를 즐겼던 인물이다. 킬렌씨는 24일 자신의 갤러리에서 드 쿠닝 회화를 공개한 후 가을에 팔 예정이다. 킬렌씨는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인생은 특이한 발견으로 가득하다. 나는 지불했고, 백만장자 클럽 회원이 될 준비가 되어있다"고 밝혔다.
# 창고에서 사라졌다 돌아온 로버트 마더웰 회화
아버지가 훔친 그림, 40년 후 아들이 팔려다가...
40년만에 돌아온 로버트 마더웰의 회화 'Untitled'(1967)
1978년 맨해튼의 한 창고에서 추상표현주의 거장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1915-1991)의 작품 수십점이 사라졌다. 마더웰이 창고를 이전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40년이 지나서야 대작 한점이 돌아왔다. 이 작품의 가치는 100만 달러에 달한다.
미 연방검사 제프리 버만은 최근 맨해튼에서 FBI 간부들이 참가한 기자회견에서 1967년 작 '무제(Untitled)'를 공개했다. 사이즈 69x92인치의 회화는 1978년 도난당했던 그림으로 지난해 업스테이트 뉴욕의 한 창고에서 찾아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어머니를 도와서 창고를 정리하던 한 남자가 주황, 자주, 청색, 흑색의 그림이 그려진 회화 뒷면에서 이름 'Robert Motherwell'을 발견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그리고, 마더웰이 1981년현대미술 교육을 위해 창립한 데달러스 재단(Dedalus Foundation)으로 연락했다. 제보 남성은 당초 그림을 팔 의도였다.
재단은 FBI에 보고했다. FBI는 수사 결과 제보한 남자의 아버지가 도난 당시 이삿짐 회사에서 일한 것을 밝혀냈다. 제보자의 아버지는 1990년대 사망했고, 아들은 아버지가 훔친 그림인 줄 몰랐던 것. FBI는 제보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데덜러스 재단의 회장 잭 플램씨는 이 그림은 비닐에 싸여 세워져서 보관되어 상태가 좋다고 밝혔다. 1991년 마더웰 사망 후 2500만 달러의 유산과 작품 1천여점이 데덜러스 재단에 귀속됐다. 하지만, 아직도 당시 사라진 회화 수십점의 행방은 묘연하다. 로버트 마더웰의 위작도 유통되고 있는 상황이다.
마더웰의 작품은 경매에서 30여점 이상이 100만 달러 이상에 거래됐으며, 'At Five In the Afternoon'(1971)은 지난 5월 필립스 경매에서 1270만 달러에 팔렸다.
1960년 스튜디오에서 로버트 마더웰.
로버트 마더웰은 1915년 워싱턴주 애버딘에서 웰스파고은행장 가정에서 태어났다. 20세에 가족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영국, 스코틀란드를 여행했다. 스탠포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에서 철학, 컬럼비아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잭슨 폴락, 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마크 로스코와 뉴욕학파로 활동했으며, 추상표현주의 화가 헬렌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는 세번째 부인이었다.
*MoMA 전후 여성작가들 <4> 거장 남편 그늘 아래서: 리 크래스너 Vs. 엘레인 드 쿠닝
*천재 화가와 두 여인 <1> 잭슨 폴락, 리 크래스너, 루스 클리그만, 그리고 윌렘 드 쿠닝
*로버트 마더웰: 초기 콜라쥬@구겐하임뮤지엄, 2014
*MoMA 전후 여성작가들 <2> 마초 추상표현주의와 여성 쌍두마차: 조안 미첼 Vs. 헬렌 프랭켄탈러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