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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8.09.12 18:39

(367) 이영주: 몬태나 일기 (4) 루이스앤클라크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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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50) 몬태나 일기 4

루이스 앤 클라크 동굴


글, 사진: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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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시는 셰프 마이클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나의 몬태나 베스트 프렌드입니다. 작년 내 생일에 커다란 꽃다발을 보내줘서 놀라게 하더니 지난 3월, 내가 수술 받고 퇴원하자마자 멋진 꽃바구니를 또 보내주었습니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좋은 사람은 괜히 마음이 끌립니다. 벳시가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마음이 끌린데다가 인품 좋은 Happy Person이며, 생각하는 코드 궁합이 서로 맞습니다. 물론 막내의 베프기도 해서 막내는 저녁하기 싫으면 벳시네 집에 불쑥 가서 저녁을 함께 먹는 편한 친구입니다.


하루는 벳시가 루이스 앤 클라크 동굴(*Lewis and Clark Caverns State Park)로 안내를 했습니다. 그저 동굴 가는 것인가 보다 하고, 동굴 속에서 추울지 모르니 자켓이나 스웨터 준비하라기에 그것만 준비해서 가볍게 따라 나섰습니다.


보즈맨에서 뷰트 가는 고속도로로 31마일 가다가 왼쪽으로 16마일 더 갑니다. 16마일 가는 길은 몬태나 답게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고, 제퍼슨 강과 메디슨 강줄기도 드문드문 물줄기가 이어지고, 저 멀리 둘러싼 산들로 하여 그리고 펼쳐진 들판처럼 커다란 하늘, 360도로 열려진 빅 스카이가 가슴을 하늘처럼 그렇게 광활하게 마음껏 터뜨려주는 정서적이고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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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안내소에서 차로 꼬불꼬불 많이 올라가서 두 번째 안내소가 있었습니다. 가서 보니 동굴은 단체로 몇 명씩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것이었고, 우리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샀는데, 의외로 샌드위치가 신선하고 맛있었습니다.


동굴 입구는 거기서 반 마일 산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기 전에 심장병 환자나 계단 600개를 걸을 수 없는 사람은 참가할 수 없다며 겁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래도 산악인 출신이니 걷는 건 문제가 없지만 계단 600개를 오른다? 그건 도저히 불가해서 벳시에게 나는 못 가겠다고 선언했더니 벳시가 웃으면서 오르는 계단이 아니라 내려가는 가는 계단이라고 했습니다. 휴웃! 살았다! 안심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만세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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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로 올라가는 길 4분의 3마일은 계속 오르막 길이었습니다. 3월에 폐를 잘라내는 수술을 한 내게 오르막은 숨도 차고 잘라낸 왼쪽 폐 가슴에 통증도 느껴졌습니다. 거기다 더위에 유난히 약한 내가 7월 한낮 오후 2시. 가장 태양이 뜨거운 산길에 그늘 하나 없으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덥고 갈증이 나서 계속 물을 마시지만 하도 숨을 헐떡이니까 벳시가 걱정이 돼서 괜찮으냐고 자주 물었습니다. 미안해서 괜찮다고 대답은 했지만, 나중엔 견딜 수 없어서 두 번이나 땅바닥에 주저 앉았습니다. 27명 중 꼴찌로 동굴 입구에 도착하자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민망하고 체통을 잃어서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일행들과 가이드에게 함박 웃음을 발사했습니다.


주립공원인 루이스 앤 클라크 동굴은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북서부에서 가장 큰 동굴의 하나입니다. 굴 안의 온도가 1년 365일 49도라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합니다. 겨울엔 밖의 온도가 영하 18도를 오르내리니 동굴 밖으로 김이 나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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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동굴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한 후 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군데군데 이름 지어진 광장(?)에서 가이드는 그 부분의 매력 포인트나 특징들, 생성된 경위 등을 상세히 설명해줬으나 잘 들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내 짧은 영어 실력으론 드문드문 귀에 들어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동굴 속 트레일은 좁고, 경사가 심하고, 여간 꼬불꼬불하지 않았습니다. 1마일이나 되는 트레일을 다른 방향으로 휘어진 좁은 계단들로 휘돌아 내려가거나, 걸을 수 없는 곳에선 앉아서 그냥 미끄럼 타면서 내려가거나, 할 수 있는 만큼 몸을 접거나, 머리를 108배 하듯 있는 대로 조아리거나 해야 통과하는 등, 완전 탐험가 체험의 시간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물줄기가 흘러 그리스 여신의 우아한 주름치마 자락처럼, 베이컨처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돌의 주름들은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기묘하고, 다양하고, 신비했습니다. 마치 거대한 조각 전시장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연인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자유의 여신상, 성모 마리아님, 야구 방망이, 게, 무엇보다 부처님 상이 유독 눈에 많이 띄였습니다. 그냥 인종 전시장처럼 수많은 얼굴들, 수많은 동물들의 형형색색 조각품들이 끊임없이 전시되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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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험준한 좁은 동굴 속에 어떻게 그렇게 계단을 축조하고 트레일을 만들었는지 새삼 인간의 무한한 능력이 경이롭기만 합니다. 조명도 적당해서 동굴 안에서는 셔터만 누르면 후래쉬 없이도 사진이 잘 나왔습니다.


몬태나 올 때마다 옐로우스톤 파크 몇 번 간 것 말고는 하이킹 다닌 게 전부라 친구들에게 늘 “몬태나 오면 할 게 없어. 하이킹 하거나 말 타거나 낚시, 스키 밖에는...” 했는데, 주변에 이렇게 놀라운 볼거리가 있었다니, 막내가 옆에 있으면 쥐어박을 뻔 했습니다.


벳시 덕에 참으로 귀한 곳을 다녀왔습니다. 피곤해서 집에 오면 쓰러질 줄 알았는데, 뒷마당 담벼락의 무성한 나무 가지들을 모두 쳐냈습니다. 면도 깨끗이 한 핸섬보이처럼 넓은 마당이 눈에 시원해졌습니다. 텃밭에 물까지 흠뻑 주고 나니 오히려 몸에서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자연의 선물은 이렇게 신비합니다. 


*루이스 & 클라크 탐험(Lewis and Clark Expedition)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명령으로 메리웨더 루이스(Meriwether Lewis) 대위와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 소위가 1804년부터 1806년 사이 세인트 루이스에서 출발, 몬태나를 거쳐 서부를 횡단해 태평양 해안까지 이르렀다. 석회암 동굴로 유명한 루이스 & 클락 동굴 주립공원(Lewis and Clark Caverns State Park)은 몬태나주 제퍼슨 카운티에 자리해 있다. https://www.visitmt.com/listings/general/state-park/lewis-clark-caverns-state-park.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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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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