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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3242 댓글 2

이루워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냉전과 열정 사이 '콜드 워(Cold War/ Zimna Wojna)' ★★★★


오스카 감독, 촬영, 외국어 영화상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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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 WAR/Zimna Wojna, film by Pawel Pawlikovski


*'콜드 워' 예고편


'폴란드 영화'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Blue' 'Red' 'White'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같은 고요한 영화들이다. 안제이 바이다의 리얼리즘 영화, 로만 폴란스키의 암울한 드라마, 소피 마르소의 남편이었던 안제이 줄랍스키의 광란의 로맨스들도 무언가 인간 심리의 심연을 심오하게 포착하는 시네마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홀로코스트 영화는 폴란드에서도, 할리우드에서도 한 장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무진장 쏟아져 나왔다. 영화 관객으로서는 '폴란드=홀로코스트'의 등식에서 좀 해방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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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 WAR/Zimna Wojna, film by Pawel Pawlikovski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파벨 폴리코브스키(Paweł Pawlikowski)의 '콜드 워(Cold War)'는 '냉전'이라는 제목에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을 배경으로 했지만, 홀로코스트에서 빗겨간 로맨스 영화다. 폴란드 역대 감독(바이다, 폴란스키, 줄랍스키, 키에슬로프스키)들의 장점을 모두 집약했으면서도 시적인(poetic) 흑백영화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이념에 의해 헤어졌다가 운명으로 재회한 후 다시 결별하지만, 또 다시 만난다. EU로 통합되기 이전 이데올로기와 전쟁으로 국경마다 철의 장막이 쳐졌던 시대의 러브 스토리다. 재즈가 깔리는 할리우드 영화 '라라 랜드(La La Land, 2016)'가 사카린을 듬뿍 첨가한 솜사탕처럼 여겨지는 담백한 폴란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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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 WAR/Zimna Wojna, film by Pawel Pawlikovski


폴란드 민속음악 연구가이며 작곡가인 빅터(토마스 콧 분)는 1949년 국립예술학교 오디션에서 계부 살해미수범 여학생 줄라(요한나 쿨리그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민속 공연은 소련 체제에서 스탈린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줄라는 빅터를 감시하는 역할도 맡는다. 자유주의자 빅터는 베를린 투어 공연에서 파리 망명을 선택하고, 공연단의 스타가 된 줄라는 폴란드에 남는다. 파리  재즈 클럽의 피아스트로 살아가는 빅터는 '일생의 여인' 줄라를 잊지 못해 그녀의 유럽 투어 공연에 찾아가고 극적으로 재회하지만, 운명은 이들을 다시 갈라 놓는데...

   

요한나 쿨리그는 계부의 성폭력을 살인으로 응징할 정도의 당돌함과 재능을 겸비한 금발의 줄라로 분해 그녀의 냉혹함 속의 뜨거운 열정을 온몸으로 연기한다. 특히 파리의 록클럽에서 광란의 춤을 추며 민속의상 속에, 스탈린 체제 하에서 억눌린 감성을 폭발시키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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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 WAR/Zimna Wojna, film by Pawel Pawlikovski


파벨 폴리코브스키 감독은 컬러 대신 흑백으로 인스태그램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 비율 4:3(1.33:1, Academy format)으로 심플하게 빅터와 줄라의 15년(1949-1964)에 걸친 로맨스를 담아낸다. 이로써 루카스 잘(Lukasz Zal)의 카메라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배제하고, 콤팩트하게 두 연인과 시대상황에만 집중한다. 흑백화면은 사진작가 로베르 브레쏭의 카메라처럼 포에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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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사랑은 폴란드 민속음악 마조프셰(Mazowsze)로 발아되어, 쇼팽을 거쳐 파리에선 조지 거쉰의 재즈로 이어지며, 호러영화 음악 녹음에서 비밥과 록큰롤 시대를 거쳐,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가 살았던 멕시코 밴드의 음악에서 바흐의 골드버그 베리에이션까지 사회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행 음악의 변천사를 복선으로 깐다. 특히 빅토가 쇼팽의 '즉흥 환상곡'을 연주하면서 여성들의 재봉공장 소음에서 창가의 빗소리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숭고하다.   


빅터와 줄라는 열렬히 사랑하지만, 함께 살 수도 없고, 떨어져서도 살 수 없는 아이러니한 관계의 커플이기도 하다. 파벨 폴리코프스키 감독은 자신의 부모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콜드 워'의 시나리오를 썼다. "결코 끝나지 않는 재난의 관계"라고 표현한 그의 부모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직전에 별세했다. 영화는 "나의 부모에게 헌사"하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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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 WAR/Zimna Wojna, film by Pawel Pawlikovski


폴리코프스키 감독은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의관, 엄마는 발레리나였으며, 친할머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망한 유대인이었다. 14살 때 엄마와 런던으로 망명한 후 독일을 거쳐 영국에 정착, 옥스포드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전향했으며, '최후의 휴식처(Last Resort, 2000)'와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수상작 '이다(Ida, 2013)'를 연출했다. '콜드 워'는 칸영화제 감독상 외에도 유럽영화제 최우수 영화, 외국어영화, 감독, 주연여우상 등 5개 부문상을 석권했으며, 아카데미상 감독, 촬영,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88분.



Cold_War_(2018_film).jpg *'콜드 워' 뉴욕 상영관 



miss Korea B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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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h77 2019.01.25 19:02
    제목만 들을 때는 끌리지 않았는데 Sukie님의 영화평을 읽고는 영화관가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흑백이고 담백하고 또 나오는 영화음악들도 끌리구요. 그리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비율로 어떤 느낌을 주나 궁금하네요.
  • sukie 2019.01.25 20:17
    '콜드 워'는 사실 뜨거운 러브 스토리랍니다. 화면 사이즈가 마치 요즘의 인스태그램 비율처럼 보이던데요. 70밀리 시네마스코프(2.76:1)나 파나비전(옆으로 긴 화면)과 달리 배경에 시선을 분산하지 않고, 주인공들의 심리에 집중할 수 있지요. 흑백인 점도 배경 대신 캐릭터도 밀도 있구요.

    개인 취향이지만, 저는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Roma'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Shoplifters'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로마'는 같은 흑백이지만, 65밀리 알렉사 카메라로 찍어 시네마스코프에 가깝지요. 70년대 감독의 어린시절 멕시코 원주민 내니가 주인공인데, 노스탈지어에 빠진듯 스토리와 캐릭터가 밋밋합니다. 'Shoplifters'는 절도 가족이 길가의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며 도둑질을 가르치며 가족의 의미를 묻는데요, 저는 거부감이 드는 내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