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적 추상화전' 여성작가들 (2) 루이스 네벨슨(Louise Nevelson)
Epic Abstraction: Pollock to Herrera
서사적 추상화전 : 폴락에서 헤레라까지
추상표현주의 여성작가들 <2> 루이스 네벨슨 Louis Nevelson (우크라이나)
December 17, 2018–ongoing
Metropolitan Museum of Art, Galleries 917–925, Floor 2
Louise Nevelson, Mrs. N's Palace, 1964-77, Painted wood, mirror. from "Epic Abstraction: Pollock to Herrera", Metropolitan Museum of Art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서사적 추상화전: 폴락에서 헤레라까지'는 뮤지엄이 소장한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대거 소개하고 있다. 전시 타이틀엔 잭슨 폴락과 카르멘 헤레라가 마치 동급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전시에서는 폴락의 작품이 10여점인 반면, 헤레라의 전시작은 단 1점이다.
이 전시에서 주목해야할 여성 화가들을 외국 태생과 미국 태생 작가로 나누어 작품과 삶을 조명해본다.
<1> 잭슨 폴락 갤러리 <2> 마크 로스코 갤러리에 이어지는 시리즈.
Epic Abstraction: Pollock to Herrera@Metropolitan Museum of Art
<2> Louise Nevelson (1899, Ukraine -1988, New York City)
뚝심의 카멜리온 아티스트
"나는 결코 나이를 느끼지 않는다... 당신에게 창조적인 작업이 있는 한, 나이도 시간도 없다."
-루이스 네벨슨(1899-1988)-
# 1899년 러시아(현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리아 벨리오스키(Leah Berliawsky), 다섯살 때 미 메인주 로클랜드로 이주했다.
# 아버지는 벌목꾼으로 일하다가 고물상회를 열었다. 이후 야적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다가 부동산중개업자가 됐다. 이것이 훗날 루이스 네벨슨의 작품에 영향으로 주게 된다.
# 어머니는 메인주의 소수계 유대인으로서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어머니는 진한 화장과 화려하게 차려입기를 즐겼다. 네벨슨이 패셔니스타가 된 것도 어머니 영향일 것이다.
Louise Nevelson, Big Black, 1963, Painted wood, MoMA
# 아티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9살 때 공립도서관에서 잔다르크의 석고모형을 본 후였다. 그후 고등학교에서 드로잉 수업을 들으며, 농구부 주장을 맡았다.
# 네벨슨은 메인주의 뿌리깊은 인종차별과 집에서는 히브리어, 밖에서는 영어를 쓰는 이중언어 생활에서 탈피하기 위해 뉴욕을 꿈꾸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동네 법률사무소에서 속기사로 일하던 중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찰스 버나드를 만나 보스턴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르고,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다.
1961 포칸티코힐에서 루이스 네벨슨
# 뉴욕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남편의 집안 반대에 부딪힌다. 1924년 업스테이트 마운트버논으로 이사간 후 부부 사이는 갈라지고, 이혼에 이른다. 하지만, 남편의 재정적인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 먹고살기 힘든 시절 네벨슨은 아들 마이크와 거리의 나무를 주어다가 장작개비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 장작개비는 네벨슨의 모티프가 된다. 네벨슨은 자신을 "오리지널 리사이클하는 이"로 부르곤 했다.
# 1931년 작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아들을 전 남편에게 보낸 후 자신은 전남편에게서 받았던 다이아몬드 팔찌를 팔아 유럽으로 갔다. 뮌헨에서는 한스 호프만을 사사한 후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여행했다. 그리고 뉴욕으로 돌아와 뉴욕아트스튜던트리그에 강사로 온 한스 호프만에게 배웠다.
Louis Nevelson, Atmosphere and Environment X, Princeton University
# 1933년부터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 조수로 일하면서 리베라와 열애에 빠진다. 이 때문에 자신이 찬미했던 프리다 칼로를 분노시키기도 했다. 1937년 WPA(Works Progress Administration) 프로젝트 하에서 미술 강사로 일했다.
# 첫 개인전을 연 것은 1941년. 하지만, 주목받은 것은 1943년 동네 구두닦이의 상자를 가져다 MoMA에 전시해 언론에 소개되면서부터였다.
# 1959년 MoMA의 '미국 미술가 16인전(16 Americans)'에 로버트 라우셴버그, 재스퍼 존스, 엘스워스 켈리 등과 함께 소개됐다.
MoMA의 16인 미국미술가 전에서 네벨슨의 작품
#1962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에 작품을 소개했고, 베니스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를 만난다.
#1967년 휘트니뮤지엄에서 첫 회고전, 1980년 다시 휘트니에서 두번째 회고전 'Atmospheres and Environments'을 열었다.
#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육중한 조각 작품으로 터부를 깨면서 1970년대 여성운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 주디 시카고, 조안 스나이더 등이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네벨슨 예배당
# 네벨슨은 유대교도였지만, 1975년 맨해튼 미드타운의 세인트 피터스 루터란교회의 예배당(Chapel of the Good Shepherd at Saint Peter's Church, 619 Lexington Ave.)을 설계하면서 교파를 초월하는 용단으로 주목받았다.
# 미술 외에도 다양한 예술 교육을 받았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코치로부터 성악 수업을 받았으며, 연극을 공부했고, 무용도 20년 가까이 공부했다. 또한, 패셔니스타로 1977년엔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됐다.
Cor-Ten steel, steel machine parts, black paint - Louise Nevelson Plaza(bet. Maiden Lane & Liberty St.)
# 평생 22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1978년 78세의 네벨슨은 로어맨해튼 월스트릿 인근 메이든 레인에 공공미술을 위임받아 7점의 조각 'Shadows and Flags'를 설치했으며, 'Louise Nevelson Plaza'로 명명됐다. 같은 해 뉴욕과 뉴저지 포트오스리티의 위임으로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에 '하늘 문(Sky Gate)'를 설치했으나, 2001년 9/11으로 파괴됐다.
# 유럽 여행으로 시각을 키웠다. 1932년 이탈리아와 프랑스, 1948년엔 영국, 다시, 프랑스와 이탈리아, 1950년엔 멕시코와 구아테말라 등지를 여행하며 원시 콜롬비아 미술을 감상했다.
# 네벨슨은 명예박사 학위도 무수히 받았다. 뉴욕대(1976), 컬럼비아대(77), 보스턴대(78), 하버드대(85) 등이 대표적이다.
왼쪽부터 루이스 네벨슨, 알 허쉬필드의 네벨슨으로 분한 앤 밴크로프트 일러스트레이션, 앤 밴크로프트.
# 희곡작가이자 친구인 에드워드 앨비가 네벨슨은 모델로 한 희곡 '점령자(Occupants)'를 썼고, 2002년 앤 밴크로프트 주연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 사진작가들도 네벨슨의 극적인 얼굴과 스타일을 사랑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리처드 아베돈, 한스 나무스 등이 그녀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2000년엔 우정국에서 그녀가 담긴 우표를 발행했다.
네벨슨 우표
# 1988년 사망 당시 자산은 1억 달러에 이르렀다. 친구이자 25년간 조수였던 다이아나 맥권과 아들 마이크 네벨슨의 재산 분쟁이 벌어졌다. 2005년 손녀 마리아 네벨슨이 비영리재단 루이스네벨슨 파운데이션을 설립했다. http://www.louisenevelsonfoundation.org
Metropolitan Museum of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