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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홍영혜: 플라밍고처럼 먹거리 찾기
빨간 등대 <16> 새 동네의 첫번째 미션
플라밍고처럼 먹거리 찾기
Whole Foods 2층 식당코너에서 본 유니온 스퀘어, 전면 유리에서 시원하게 광장을 보며 간단한 요기를 하고 쉬어가기 좋다.
컬럼비아대 인근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에서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로 이사오면서 박스에 담아 옮겨진 화초들을 며칠 잊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열어 보았다. 단단했던 산세베리아(Sansevieria) 잎사귀가 반쯤 꺾여 있었고 나머지 잎사귀들도 흔들리는 이빨마냥 건들건들하다. 딸아이가 사주며 '에코'라고 이름 붙어준 에어 플랜트조차 잎이 잔뜩 말라 있어 부랴부랴 물에 담구고 널어 놓았다. 새들새들한 화초들을 보니 나도 지금 이렇겠구나 싶어서 박스 풀던 것을 일단 멈추고, 새 동네 먹거리 탐험에 나섰다.
이 동네는 걸으나, 차를 타나, 지하철을 타나 구글 맵을 해보면 별반 시간의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 웬만하면 걸어 다닌다. 자전거가 제일 빠른 교통수단이라 시티바이크도 곳곳에 많이 있고 자전거 전용 차선도 잘 되어 있다. 이 동네에선 걷다가 제일 조심할 것이 자전거다. 자전거는 일방통행을 안지키고 어느 방향에서 치고 들어올지 모른다.
걸어서 20분 반경 안에 첼시, 소호, 이스트 빌리지, 차이나 타운, 리틀 이태리 등이 있으니, 근처에 먹을 곳이 지천이다. 이사통에 밖에서 많이 사먹었더니,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간단한 집밥이 그리워서 빌리지의 북쪽 경계선 14가에 위치한 유니온 스퀘어 그린마켓으로 향했다. (여기 로칼들은 그리니치 빌리지를 빌리지라고 부르고, 남쪽 소호와 경계되는 휴스턴(Houston) 길을 하우스턴이라 발음한다.) 이 곳은 뉴욕시에서 제일 큰 그린마켓인데, 전에는 멀어서 한두번 들렀던 곳이다. 토요일에는 부스도 많지만 그만큼 사람들도 많아 정신이 없없다. 과일과 야채, 생선, 치즈, 빵, 잼, 포테이토 칩, 피클, 화초, 와인, 사이더, 메이플 시럽, 라벤더, 김치등 다양한 종류를 판매하고 있다.
유니온스퀘어 그린 마켓. 월, 수, 금, 토요일에 장이 선다.
벤더들이 너무 많아 어디서 무얼 사면 좋을지 몰라 우선 달걀과 야채를 샀다. 그린마켓의 좋은 점은 직접 농부나 생산자와 이야기하며 궁금한 점과 농장의 정보를 물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달 된 송아지 사진을 자기 손주 사진인양 크게 걸어 놓은 농부가 이틀 전에 낳은 달걀이라고 먹어보면 맛이 다를 것이라고 한다. 반 다즌 샀는데 수퍼에서 산 달걀은 삶으면 어떤 때는 흰자가 푸석한데, 이 달걀들은 식감이 탱탱하였다. 푸릇푸릇한 봄나물이 많이 나와 있었다. "새싹 하나가 커다란 브로콜리 한 줄기 영양가가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샀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싱싱한 채로 있었다. 아버지 생각이 문득 났다. "작은 멸치 하나에 생선 한마리의 영양가가 고스란히 들어 있단다"하시며 아침마다 멸치볶음을 거르지 않고 드시곤 하셨다.
비트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가게 앞에 여러 종류를 잘라 놓고 진열해 놓았는데, 한 엄마가 한국말로 유치원 또래의 딸을 데리고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You are what you eat."에서 한 걸음 더나아가 "You are what your grandparents ate."라는 연구발표도 있듯이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우리 자신뿐이 아니라 우리 손주대까지 영향을 준다는 걸 생각해볼 때, 무엇보다 소중한, 건강한 음식을 선택할 줄 아는 식습관을 어려서부터 체험시켜주는 엄마가 참 현명하다 느껴진다. 그 가게에서 산 조그만 무와 비트는 집에 와서 깎아보니 신선하지 않았다. 그린 마켓이라고 다 신선하지는 않고 잘 골라야 하는 것 같다.
그리니치 빌리지 존스 스트릿의 정육점 플로렌스 프라임 미트 마켓.
이사하니 체력소모가 많아 그런지 평소에 좋아하지 않던 고기가 땡겨서 NY Culture Beat를 통해 알게 된 플로렌스 정육점(Florence Prime Meat Market)에서 필레미뇽을 두 조각 사가지고 왔다. 정성껏 기름을 두른 고기가 깨끗하고 먹음직스러웠다. 굽고 보니 너무 맛있어 입맛을 쩝쩝 다시며 한조각 더 사가지고 올껄 그랬다. 그 다음 들렀을 때는 가게 이름과 이름이 비슷한 부쳐(butcher), 플로렌시오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닭도 껍질과 기름을 깨끗하게 제거해주고 반으로 뼈째 잘라주어 포장해 주는 과정을 지켜보니 달인의 손놀림은 흔들림이 없고 감동을 준다. 집에서 닭과 실강이 하지 않아도 되니 너무 신이나서 닭 봉다리를 그야말로 빙그르르 돌리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왔다. 닭 반바리를 물에 첨벙 집어 넣고 양파만 하나 껍질 벗겨 푹 끓여서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먹으니, 나도 물 준 화초들 모양 살아나는 것 같았다.
유니온스퀘어 그린 마켓
'농장에서 식탁으로(Farm to Table)'를 고수하는 셰프 댄 바버(Dan Barber)가 Ted Talk에서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그가 먹었던 가장 맛있는 생선은 맛있게 요리한 생선이 아니라, 너무 익혔지만, 스페인 남부의 건강한 생태환경에서 자란 생선이었다고 한다. 이 곳에는 플라밍고들이 하루에 150마일을 되는 곳에서 매일 날아와 물고기를 먹고 간다고 한다.
새 동네에 와서 첫번째 나의 미션은 착한 가격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전에 그로서리 쇼핑은 미국 수퍼마켓과 한국 마켓 두군데 가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뉴욕에 와서는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를 찾으려고, 근처 농장과 직거래를 하는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CSA) 도 이용해 보고 여러 마켓들을 둘러 보았다. CSA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작년에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여인의 짐보따리를 보고 시작되었다. 그 여인의 얼굴 표정이 유독 행복하고 뿌듯해 보였다. 그 속에 무엇이 있을까, 그 농장 로고는 어딜까 궁금해졌다. 물어 보니 CSA Farm sharing을 해서 5월 부터 11월 까지 일주일에 한번 픽업 로케이션에서 야채, 과일, 고기를 찾아간다고 한다. 토마토를 하나 먹어보라고 건내 주었는데, 그 사람의 뿌듯한 얼굴 표정을 알것 같았다.
아직 새동네 정보도 많지 않고, 좌충우돌 중이다. 나의 미션은 시간 소모가 많고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데... 플라밍고는 새끼들에게 건강한 먹이를 먹이려고, 하루에 150마일 날라가는데 하는 마음으로 새동네 음식탐험을 하고 있다.
PS. 댄 바버의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 블루 힐(Blue Hill)이 빌리지에 있고, 맨하탄에서 차로 한시간 정도 떨어진 업스테이트 Rockefeller State Park 옆 타운 포칸티코힐 농장에 자리잡은 Blue Hill at Stone Barns은 많은 음식 애호가들이 한번쯤 경험하고 싶은 곳으로 꼽히고 있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한 식재료를 추구하고 소비자와 농부, 환경을 위한 비젼을 제시하여, 존경을 받고 있는 셰프 댄 바버도 유니온 스퀘어 그린 마켓에서 아침 일찍 장을 본다고 한다.
PS 2. 유니온 스퀘어의 남서쪽에 서있는 간디 동상. 워싱톤, 링컨, 라파엣 등 다른 동상도 있지만 웬지 이 광장에 제일 어울리는 것 같다. 간디가 이 곳에 있다는 것이 뉴욕이 좋은 이유 하나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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