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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88)이 8월 5일 세상을 떠났다. 토니 모리슨은 1993년 흑인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토니 모리슨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Toni Morrison: The Pieces I Am'이 뉴욕에서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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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토니 모리슨은 흑인 여성 최초,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8년엔 '비러브드(Beloved)'로 퓰리처상(Pulitzer Prize)을 받았다. '가장 푸른 눈' 이후 '술라(Sula, 1973), '솔로몬의 노래(Song of Solomon, 1977), ' 타르 베이비(Tar Baby, 1981)' 그리고 '비러브드(1987'까지 20년 가까이 토니 모리슨은 백인 중심 문학계에서 아웃사이더였다. 흑인이었고, 여성이었으며, 흑인 이야기를 썼기에 비평가들은 혹평을 쏟아부었다. 


이에 1988년 1월 흑인 작가 48인이 토니 모리슨이 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와 퓰리처상에서 무시당해왔다며 업계를 비판했다. 그해 토니 모리슨은 결국 퓰리처상을 수상했지만, 권위있는 미도서상 대신 14인에게 주어진 아메리칸도서상(American Book Award) 수상에 그쳤다. 그로부터 5년 후 노벨상을 받으며 토니 모리슨은 세계 최고의 작가로 공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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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의 대표작. '가장 파란 눈' '술라' '솔로몬의 노래' '비러브드'.


티모시 그린필드-샌더스(Timothy Greenfield-Sanders) 감독의 다큐멘터리 '토니 모리슨: 나를 만든 조각들(Toni Morrison: The Pieces I Am)'은 글(소설)이 아니라 말(인터뷰)을 통해, 허구(픽션)가 아닌 사실(넌픽션)의 접근 방식으로 우리 시대 위대한 소설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정신 세계를 탐구하는 영화다. 인물 사진작가 출신 그린필드-샌더스 감독은 영화를 토니 모리슨의 콜라쥬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초상 사진 조각들과 꽃 등을 맞추어 토니 모리슨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감독은 토니 모리슨 자신의 이야기를 들여주면서 그녀의 측근들인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인권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 작가 프란 르보비츠(Fran Lebowitz), 시인 소냐 산체스(Sonia Sanchez), 편집자 로버트 고트립(Robert Gottlieb) 등은 카메라를 향해, 관객을 향해 토니 모리슨에 관한 생각을 들려준다. 한편, 토니 모리슨이 카메라를 향해 들려주는 회상은 재즈 리듬처럼 나직하며, 그녀의 흐드러진 웃음은 모든 경계를 허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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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i Morrison and Timothy Greenfield-Sanders


토니 모리슨의 본명은 클로이 워포드(Chloe Wofford)였지만, 주변에서 발음을 제대로 못하자 이름을 토니(Toni)로 바꾸었다. 12살 때 세례를 받아 성 안토니의 이름을 딴 별명 토니와 남편의 성을 따르며,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이 된다. 그린필드-샌더스의 다큐멘터리는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작가의 본명 클로이 워포드의 삶을 콜라쥬로 맞추어 나간다. 


1931년 오하이오주의 철강산업 타운 로레인에서 태어난 토니 모리슨과 가족은 고작 4달러 렌트가 밀려 쫓겨나곤 했다. 가난했지만, 할아버지는 성경을 5번이나 읽었다. 흑인이 배우는 것이 불법이었던 시절이다. 세살 때 언니가 CAT, DOG ,I HATE YOU 같은 글을 가르쳐주었고, 어느날 동네 길바닥에 FU를 쓰다가 엄마로부터 혼줄나게 된다. 그때 어린 토니 모리슨은 글의 힘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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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ffiti of Toni Morrison in Vitoria-Gasteiz, Spain  Photo: Zarateman/Wikipedia 


고교시절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를 읽었고, 워싱턴 DC의 흑인 전용 하워드대학교(Howard University)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전공은 백인들의 시각에서 쓴 작품을 연구했다. DC에서 흑백 격리 문화에 부딪히게 된다. 코넬대에서 버지니아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하워드대에서 가르치다가 자메리카 출신 건축가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고 이혼했다. 


시라큐스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하다가 랜덤하우스에 팔리면서 1967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토니 모리슨은 랜덤하우스 소설부 최초의 흑인 여성 편집자였다. 무하마드 알리의 자서전 편집 후 함께 투어했으며, 26세 안젤라 데이비스의 자서전을 기획했다. 편집자로 일하며 두 아들을 키우면서 토니 모리슨은 매일 새벽 해뜨기 전에 일어나 글을 썼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쓰고 싶었다는 것. 


그 첫 소설이 '가장 파란 눈'(1970)이었다. 데뷔작에서 주인공 피콜라의 영감은 어린시절 친구에게서 왔다. 신의 존재 유무에 관한 논쟁 중 친구는 신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유는 2년간 파란 눈동자를 갖게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신은 들어주지 않았다. 친구는 아름다운 소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간절하게 블루 아이를 원했던 것이다. 우리도 어릴 적 금발 인형을 갖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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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 1981 주간 '뉴스위크' 커버(왼쪽)/ 2010 주간 '타임' 커버


토니 모리슨은 "백인 남자가 어깨 뒤에서 감시하고 있는 느낌이 싫었다. 백인 남자의 시각을 제거해버리면, 자유를 얻었다. 기존 백인작가들의 소설에서 흑인은 소도구, 농담거리일 뿐,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3년 '술라' 발표 후 뉴욕타임스 등 비평가들은 "백인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며 혹평했다. 하지만, 토니 모리슨은 자신이 흑인이라는 점에 대해 불안해하지않는 당당한 작가다. 1970년대 블랙 파워가 떴고, 페미니즘이 부상했지만, 흑인 여성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토니 모리슨은 흑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소설 안으로 초대했다. 

    

1993년 토니 모리슨이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은 것은 프린스턴대에서 가르칠 때였다. 모리슨은 스웨덴에서 전화를 받은 후 믿기지 않아서 팩스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소설 '비러브드'는 흑인 여성노예가 대물림을 피하게 위해 딸을 살해하는 잔혹한 비극이다. 토크쇼를 진행하던 오프라 윈프리가 토니 모리슨을 북 클럽에 초대하기 위해 뉴욕 소방국에 연락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윈프리는 모리슨의 소설이 위안을 주고, 달래주며, 깊은 고통을 순화시켜준다고 전한다. 윈프리는 결국 '비러브드'(감독 조나단 드미)를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했고, 자신이 주인공 노예 세더로 출연했다. 


*다큐멘터리 리뷰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document_srl=3821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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