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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만리 (40) 웅녀에서 해녀까지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11 한국여성 속의 여신들 Goddesses in Every Korean Wo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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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Monet, Woman with a Parasol,1886. Musée d'Orsay, Paris/ Elizabeth Keith, 함흥의 아낙네(A Hamheung Housewife), 1921/ 박수근, 절구질 하는 여인, 1954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가부장제(家父長制)이며, 여성의 인권은 낮지만, 한국 여인들은 강인하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여성 롤 모델들이 있었기 때문일까? 

 

고대 이집트의 하트셉수트 여왕과 클레오파트라처럼 신라엔 선덕, 진덕, 진성여왕이 통치했다. 프랑스엔 잔 다르크, 한국엔 유관순이 존재했다. 기생이었지만, 임진왜란 때 왜장과 투신한 열녀 논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 황진이도 돋보인다. 또한, 제주의 해녀들은 세계의 페미니스트들을 매혹시켜왔다. 

 

조선의 위대한 학자 이율곡은 현모양처이자 화가였던 어머니 신사임당, 명필 한석봉은 어둠 속 떡썰기와 서예 대결을 벌였던 어머니 백인당의 가르침을 받았다. 신사임당은 2007년 5만원권 지폐의 얼굴로 등장했지만, 미국엔 아직 지폐에 여성의 얼굴이 없다. 비록, 촛불혁명으로 수감 중이지만, 한국에선 여성 대통령도 나왔다. 계로 지혜를 쌓은 한국의 복부인들은 투자의 귀재들이었으며, 치맛바람은 한국의 교육열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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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시노다 볼린의 원서와 또 하나의 문화에서 번역 출간한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미국의 정신의학자 진 시노다 볼린(Jean Shinoda Bolen)은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Goddesses in Everywoman, 1984)'에서 여성 내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원형으로 아르테미스(사냥), 아테나(지혜), 헤스티아(화로), 헤라(결혼), 데미테르(어머니), 페르세포네(처녀), 아프로디테(사랑) 등 그리스 여신 7인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들의 DNA에는 웅녀(끈기), 선덕여왕(리더쉽), 신사임당(현모양처), 백인당(교육열), 논개(절개), 유관순(저항의식), 제주해녀(강인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이다.  

 

 

#자가격리의 원조, 웅녀의 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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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발행된 건국신화 기념 우표. 환웅이 풍백(바람의 신), 우사(비의 신), 운사(구름의 신)를 거느리고 구름을 타고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오는 장면/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는 모습/ 환웅과 웅녀가 아기 단군왕검을 안고 있는 모습/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을 담았다. 

 

그녀는 우리 민족의 어머니였고, 최초로 자가격리(self-quarantine)를 한 채식주의자였다. 고조선의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의 어머니, 인간이 된 곰, 웅녀(熊女) 이야기다. 

 

어느 나라나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건국 신화가 있기 마련이다. 옛날옛적 하늘의 신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熊)은 땅으로 내려가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싶어했다. 환웅은 아버지의 허락으로 비, 바람, 구름 신과 3천명의 무리를 데리고 태백산(현 묘향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새 도시를 세웠다. 이때 동녘 땅에 살던 곰과 호랑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 환웅을 찾아갔다. 환웅은 쑥 한줌과 마늘 스무개를 주며 동굴 속에서 100일간 햇빛을 보지 않고 버티면 사람이 된다고 말해주었다.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도망갔지만, 곰은 삼칠일(21일) 수행 후 여자가 되었으니, 그녀가 웅녀다. 웅녀는 신단수 아래서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신한 환웅과 혼인해 단군(壇君)을 낳았다. 단군왕검은 BC 2333년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리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이념으로 조선(朝鮮)을 세우고, 1천500년 동안 통치했다. 

 

대부분의 건국신화는 영웅담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은 자식을 삼키고, 전쟁을 일삼으며, 부인을 여럿 두고 살았다. 하지만, 우리의 단군신화에서는 환웅이 땅으로 내려오고, 곰이 은근과 끈기로 여자가 되고, 환웅과의 결합해 단군을 낳는다. 이로써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만나는 수직적인 교류, 즉 천지인(天地人) 사상과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수평적인 평화적인 이념이 뿌리 내렸다. 한민족은 시작부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만일, 곰 대신 호랑이가 자가격리에 성공한 호녀(虎女)였다면? 한국인들은 호전적인 민족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문학자 조윤제 선생은 "'은근(慇懃)'이 한국의 미요, 끈기가 한국의 힘"이라고 말했다.   

 

 

#'여왕의 시대' 신라: 선덕, 진덕, 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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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뮤지엄 소장 하트셉수트 여왕 스핑크스 Sphinx of Hatshepsut, ca. 1479–1458 B.C.(왼쪽부터) /이요원 주연 MBC-TV 62부작 드라마 '선덕여왕'(2009) 포스터/ 당나라 측천무후/ 영국 최초의 여왕 메리 1세.

 

'고대 이집트의 여왕' 하면 클레오파트라가 떠오른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사이의 '치명적인 요녀(Femme Fatal)'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클레오파트라는 7세이며,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여왕이었다. 사실 위대한 이집트 여왕은 따로 있다. 클레오파트라보다 1천400여년 앞서 살았던 신왕국 제 8왕조의 5대 파라오 하트셉수트(Hatshepsut, 1507-1458 BC)였다. 여성임을 감추기 위해 가짜 수염에 남자 옷을 입었던 하트셉수트 여왕은 21년간 이집트를 통치하며 경제적, 문화적 번영국으로 만들었다. 

 

하트셉수트는 홍해 인근에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범선 5척을 만들어 이웃나라 누비아, 레반트 등과 교역을 시작했다. 또한 룩소르의 데이르 알-바하리(Deir el-Bahri)에 대칭미가 압권인 장제전을 건축했으며, 카르낙 신전 입구에는 세계 최고 높이의 오벨리스크(Obelisk) 한쌍을 세웠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는 하트셉수트의 스핑크스를 모은 갤러리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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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하트셉수트 여왕 재임기에 건축된 오벨리스크와 룩소르 데이르 알-바하리의 장제전. 사진: 진영미

 

영국 최초의 여왕은 헨리 8세의 외동딸로 '블러디 메리(Bloody Mary' 칵테일로 유명한 메리 1세(Mary I, 재위기간 1553-1558)다. 중국 최초의 여왕은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 Wu Zetian, 재위 690-705)다. 한국에선 영국보다도, 중국보다도 앞서 여왕이 탄생했다. 신라 제 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2-647)은 중국 최초이자 마지막 여제였던 측천무후에 반세기 이상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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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재임기에 건축됐던 첨성대(왼쪽)와 1238년 고려 고종 때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된 경북도가 제작한 황룡사와  9층 목탑 등 주요 건물 복원 조감도(2014).  

 

진평왕의 딸이었던 선덕여왕은 재위 3년 아버지의 국상기간이 끝나자 연호롤 인평(仁平)으로 바꾸며 자신의 독자적인 시대를 개척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위협 속에서 김유신과 김춘추를 거느리고 삼한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선덕여왕은 호국 의지를 담아 높이 80미터의 황룡사(皇龍寺) 9층 목탑을 세웠으니 '신라의 오벨리스크'인 셈이다. 또한, 호국불교를 장려하기 위해 분황사(芬皇寺)와 영묘사(靈廟寺)등 25개 사찰을 창건했다. 

 

그런가하면, 천문관측으로 자연재해를 예방할 목적으로 아시아 최초의 첨성대(瞻星臺, 국보 제 31호)를 건축했다. 당나라에 유학생들을 파견해 인재를 키웠으며, 추석 즈음엔 부녀자들의 길쌈놀이 대회를 열어 부녀자들의 기능을 계발하고, 놀이를 장려했다. 선덕여왕의 대를 이은 사촌 여동생 진덕여왕(眞德女王, 재위 647-654), 통일신라의 진성여왕(眞聖女王, 887-897)까지 신라에선 3인의 여왕이 통치했다. 

 

 

#3천 궁녀, 논개와 유관순의 절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논개, 수주 변영로-

 

꽃잎술 입에 물고 바람으로 달려가/ 작은 손 고이접어 기도하며 울었네

큰 별이 저리 높은 아름다운 논개의/ 뜨거운 그 입술에 넘쳐나던 절개여

샛별처럼 반짝이던 아름다운 눈동자/ 눈에 선한 아름다움 잊을 수가 없어라

몸바쳐서 몸바쳐서 떠내려간 그 푸른 물결 위에/ 몸바쳐서 몸바쳐서 빌어간

그 사랑 그 사랑 영원하리

*논개(1982), 작사/작곡: 이건우, 노래: 이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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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장수군의 논개 생가가 있는 전북 장수군 주촌마을의 논개 동상.

 

조선시대 선조 때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대첩에서 패배한 왜군은 1593년 12만여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왔다. 제 2차 진주성 싸움에서 7만여명이 항쟁하다가 진주성이 함락됐다. 이에 진주의 관기였던 논개는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촉석루 절벽 아래 의암 바위로 유혹해 그를 껴안고 강물에 투신했다. 그녀 나이 20세였다. 

 

기생의 몸으로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순국열사 논개(朱論介, 1574-1593)의 충성심에 감동한 유몽인이 '어우야담(於于野談)'에 기록했다. 순국선열 논개을 주제로 한 노래도 이미자의 '논개'와 이동기의 '논개'부터 우판용의 '달빛 어린 진양성', 김재시의 '남강을 살아있다', 이재호의 '남강을 말이 없네', 남성봉/이미자의 '쌍가락지' 등 여러 곡이 나왔다.  

 

논개는 낙화암(落花巖)의 궁녀들의 전설을 알고 있었을까? 660년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정사는 돌보지 않고, 날마다 궁녀들과 가무주연을 탐닉했다. 백제의 침략을 무수히 받았던 신라는 무열왕과 김유신이 합심해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를 수륙 양면에서 쳐들어갔다. 백제 수도 사비성(현 부여)이 함락될 때 궁녀들은 슬피 울면서 흉악한 적군에게 죽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기로 결심하고, 높은 바위에서 치마를 뒤집어 쓰고 백마강을 향해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다. 궁녀의 수가 3천여명이었고, 바위의 이름은 낙화암이라 불리우게 된다.  

 

 

샤를 7세의 대관식의 잔 다르크와 옥중 유관순.jpg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샤를 7세의 대관식의 잔 다르크, 1854/ 죄수복을 입고 복역중 유관순 ⓒ독립기념관

 

프랑스에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라는 영웅 소녀가 있었다면, 조선에서는 유관순(柳寬順,1902-1920)이 나왔다. 

 

유관순은 충남 천안의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이화학당에 다녔다. 이화학당에서는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매일 오후 3시엔 수업을 중단하고, 조국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회와 시국 토론회를 열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서거하자 학생들은 상복을 입고, 휴교에 들어갔다. 이에 유관순은 파고다 공원에서 벌어진 3.1 만세 운동에 참가한다. 곧 서명학, 김복순, 김희자, 국현숙과 함께 5인의 결사대를 결성, 소복을 입고 기숙사를 빠져나와 대한문에서 망곡을 한 후 남대문으로 향하는 시위행렬에 합류했다. 

 

이어 고향 천안으로 돌아가 숨겨온 독립선언서를 내놓고,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독립만세를 주도했다. 이 시위 현장에서 유관순의 부모가 순국했으며, 자신은 주도자로 체포되어 3년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1920년 3.1 운동 1주년 때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그해 9월 28일 유관순은 고문과 영양실조로 숨을 거두게 된다. 그녀 나이 18세였다. 1974년 이화여고에 유관순 기념관이 준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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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 우표, 2012(왼쪽), 유관순 우표(1982)

 

2005년 프랑스 오를레앙시 잔다르크연구소의 올리비에 부지 박사는 천안의 유관순 열사사당을 방문해 "잔다르크에 버금가는 세계적 애국 처녀는 한국의 유관순뿐"이라고 밝혔다. 올리비에 부지 박사는 유관순 열사가 잔다르크의 전기를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부언했다. 한국에선 1907년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의 장지연 (張志淵)이 잔 다르크의 생애를 소설로 엮은 '애국부인전'이 출간된 바 있다. 

 

항일 독립운동가로는 김구 선생, 윤동주 시인,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도산 안창호를 떠올리지만,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 외에도 무궁무진했다. 김마리아, 곽낙원, 남자현, 권귀옥, 박자혜, 박차정, 조마리아, 양제현, 윤희순, 최은희, 최용신, 하란사, 한성선...  2018년 2월 한국의 국가보훈처에서 유관순 열사를 비롯 299인을 여성독립운동가로 인정하여 서훈을 했다.

 

이윤옥 교수는 2018년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을 출간했으며, 2018년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내 모임 ‘벗:다’는 여성독립운동가 1900여명을 알리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벌이기도 했다.  2019년 3월 한국의 여성가족부는 고양의 국립여성사전시관에서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 특별전 ‘여성독립운동가, 미래를 여는 100년의 기억’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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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her brother on her back a war weary Korean girl tiredly trudges by a stalled M-26 tank, at Haengju, Korea., 1951.  Archives Library Information Center, USA

 

 

#현모양처 신사임당, 백인당의 교육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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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수묵포도, 비단에 수묵,  31.5×21.7cm,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시대 성리학자 이율곡(이이, 1536-1584)은 세살 때 글을 깨우친 신동이었으며, 어머니 신사임당(師任堂 申氏, 1504-1551)의 글과 그림을 흉내냈다. 신사임당은 당대의 르네상스 우먼이었다. 양반의 다섯 딸 중 둘째였던 사임당은 아버지로부터 천자문, 명심보감 등 사서육경을 배웠다. 사임당 신씨 역시 일곱살 때 화가 안견의 그림을 본떠서 그렸던 신동이었다. 성리학, 도학, 고전, 역사 등 해박한 지식에 그림, 서예, 시, 십자수와 옷감 제작에도 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임당은 어느날 잔치집에서 한 부인의 치마자락에 국이 엎어지며 얼룩이 생기자 즉석에서 포도 넝쿨을 그려주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로 2009년 5만원권 지폐의 얼굴이 됐다. 5만원권 앞면엔 신사임당이 비단 위에 포도를 그린 수묵화(墨葡萄圖)와 10첩 병풍화 초충도(草蟲圖) 중 가지 그림을 배경으로 신사임당의 초상이 담겼다. 아들 율곡 이이의 초상은 1972년 발행된 5천원권의 얼굴이며, 뒷면에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 중 맨드라미와 수박 2점이 들어가 있다. 강릉시 오죽헌 율곡기념관이 소장한 신사임당 초충도 병풍(申師任堂草蟲圖屛)엔 망우초와 개구리, 가지와 방아개비, 수박과 들쥐, 접시꽃과 개구리, 산차고기와 사마귀, 맨드라미와 쇠똥벌레, 양귀비와 도마뱀, 오이와 개구리가 묘사되어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11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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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의 신사임당, 아들 이율곡이 담긴 5천원권 뒷 그림도 신사임당 작품(왼쪽)/ 한석봉 천자문 글씨체.

 

조선시대 명필가 한석봉(한호/韓濩, 1543~1605, 1543-1605)은 개성의 양반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백인당은 남편이 사망한 후 개성의 학자 서경덕(徐敬德)으로부터 아들의 스승을 신희남을 추천받게 된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처럼, 백인당은 한석봉을 데리고 신희남이 사는 전남 영암으로 이주했고, 떡 장수로 생계를 이어갔다. 한석봉은 영암 월출산의 절에서 글씨 공부를 10년간 하기로 어머니와 약속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출가 후 3년만에 귀가했다. 이에 백인당은 호롱불을 끈 채 아들 석봉과 가래떡 썰기와 글씨 쓰기로 대결했다. 어머니는 석봉의 엉망인 글씨를 본 후 매를 들고 야단쳐 산으로 보냈다. 이에 석봉은 7년을 채우고 돌아왔고, 스물다섯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명필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석봉 천자문은 조선 천자문의 표준이 됐으며, 현재 컴퓨터 한자체는 한석봉체다. 이 전설의 떡썰기 결투는 19세기 이원명의 야담집 '동야휘집'(東野彙輯, 1869)에 기록됐으며, 1945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사랑의 매'를 정당화하게 된다.   

 

 

#제주 해녀들: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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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사진작가 김형선의 제주 해녀 전시회 'Haenyeo'.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이여싸나 이여싸나/요 넬 젓고 어딜 가리

진도나 바당 항구로 나게/요 네착을 심어사민

어신설움 절로나네/이여싸나 이여싸나

혼착 손엔 테왁 심엉/혼착 손엔 비창 심엉

혼질 두질 저승 길에/저승건 당 말리나 강산

-제주 해녀노래(이어도사나) 중에서-

 

호흡장비 없이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제주도의 해녀(잠녀)들은 세계의 페미니스트들을 매혹시켜왔다. 한국 유교문화와 대조적으로 모계사회의 여성 파워를 입증하는 여인네들, '아시아의 아마조네스'들이다. 최대 7시간 바다 속에서 전복과 성게 등을 찾아 물질하는 것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극한 상황이다. 

 

해녀들이 부르는 민요에도 "저승길 왔다 갔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해녀는 저승에서 돈을 벌어 이승에서 쓰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강인한 여성들이 주도하는 제주도에서는 남녀 구별 없이 손윗 사람들은 모두 '삼춘'이라 부른다. 해녀도 삼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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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들 (UNESCO)과 해녀들의 노래집 '이여 이여 이여도 사나'(해녀박물관 출간)

 

화산섬인 제주도는 토양이 비옥하지 않아 농사 짓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때문에 해녀들은 가족의 생계를 등에 짊어지고 바다로 나갔다. 해녀들은 마을 어촌계와 해녀회를 통해 공동체에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해왔다. 그들은 물질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분류되며, 물질 기량이 뛰어나고, 암초와 해산물 지식이 많은 상군이 해녀회를 이끈다. 

 

해녀들은 '바다의 여신' 용왕 할머니에게 잠수굿을 지내며 바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토속민요 '서우젯소리'를 부른다. 그들은 거친 바다 속에서 물질하며, 고단한 시집살이 하면서 한숨 대신 기백이 담긴 노래를 불렀다. 해녀들의 노동요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 1호이며, 2010년 해녀들이 노래 150곡을 모은 노래집 '이여 이여 이여도 사나'(해녀박물관)가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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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에 빠진 이스라엘 여인 달리아 거스텐하버. *인터뷰

 

그동안 제주 해녀는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과 매그넘 포토(David Alan Harvey)의 흑백사진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다큐멘터리 영화도 무수히 제작됐다. 이스라엘 출신 어린이 영화 감독 달리아 거스텐하버(Dahlia Gerstenhaber)는 48세 생일날 남편에게서 잠수복을 선물로 받은 후 다이빙 잡지에서 70세 재주 해녀의 사진을 보고 매료됐다. 그리고, 1999년부터 세차례 제주도를 방문해 9개월간 해녀들과 동거동락하며 제주의 아마조네스들을 카메라에 담아 다큐멘터리 '해녀, 바다의 여인들(Hae-Nyo, Women of the Sea, 2009)'를 연출했다. 

 

 

홀로 계신 우리 엄마 내 모시고 사는 세상

이 몸이 여자라고 이 몸이 여자라고

남자 일을 못하나요

꼴망태 등에 메고 이랴 어서 가자

해 뜨는 저 벌판에 이랴 어서 가자

밭갈이 가자

-최정자, 처녀 농군,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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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장편, 단편 영화 포스터.

 

고희영 감독의 '물숨(Breathing Underwater, 2016), 바라라 해머(Barbara Hammer)의 '제주도의 해녀들(Diving Women of Jeju-do, 2007)', 프랑스 엘로이치 지메네스(Éloïc Gimenez)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해녀 바다의 여성들(Haenyo, The Woman of the Sea, 2013)',  알렉스 이지바쉬안(Alex Igidbashian), 정다예(Daye Jeong) 감독의 '해녀: 바다의 여인들(Haenyeo: Women of the Sea, 2013)' 그리고 강희진, 한아렴 감독의 만화영화 '할망바다(Grandma Ocean, 2013)'도 나왔다. 

 

제주도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지정(2002), 세계자연유산 등재(2007), 세계지질공원 인증(2010)의 3관왕이 되었으며, 제주 해녀문화는 2016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계속>

 

*UNESCO, Culture of Jeju Haenyeo (women divers) <YouTube>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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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h77 2020.05.06 13:31
    한국과 다른나라를 병렬하여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신 것이 흥미롭네요.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과 달리 이고 지고 일을 하는 한국의 여성들, 과거엔 한국의 악착같은 아줌마라 했지만, 용감하고, 강인한, 지혜로운 여신들이네요. 웅녀에서 해녀까지 멋진 한국의 role model을 상기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sukie 2020.05.06 15:58
    미국에서는 여성 롤모델을 조사했더니 로자 팍스, 해리엇 터브만(흑인 민권 운동가), 수잔 B. 안소니(여성 참정권), 엘리노어 루즈벨트, 미셸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영부인), 캐서린 헵번(배우), 오프라 윈프리(토크쇼 호스트) 등이 나오던데요. 미국의 역사가 짧고, 인종차별의 특수한 역사라서인지 롤모델 다양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이와 대조적으로 긴 한국 역사 속에서는 존경할만한 여성들이 다양했습니다. 그들을 그리스 여신의 아키타이프(원형)에 적용시키려니 한민족의 유니크한 특성이 있어서 우리 속의 여신들이 되네요:)

    스코틀랜드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책에 나온 객관적인 한국인들의 이미지에서 우리 민족의 뚝심과 자긍심, 그리고 지혜가 돋보였습니다. 그녀가 그린 식민치하 함흥 아낙네, 박수근 화백의 전후 아낙네 모습이 애처롭지만, 강인하지요. 그 모습에서 모네가 그린 낭만적인 파라솔 든 여인이 떠올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