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729)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2)
- 홍영혜/빨간 등대(70)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497) 이수임: 미니멀리스트의 KO패
창가의 선인장 (96) 코로나 날벼락
미니멀리스트의 KO패
나는 사다 쟁여 놓고 필요없다고 버리느라 애쓰기보다 아예 사재끼지 않는 미니멀 스타일이다. 그러나, 이런 습관이 코로나 사태로 완전히 참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냉장고에 남은 것 다 먹어 치우고 여행갔다 와서 신선한 것 사다 먹어야지 했던 내 여행 계획이 불행히도 이번 사태와 맞물렸다. 그래도, 아무리 ‘설마’하다가 화들짝 놀랐을 때는 이미 슈퍼마켓 선반은 약탈당한듯 널브러져 있었다.
L.A.에 사는 친구는 배추 4박스를 사다 김치 담그고 쌀 10포대나 쟁여놓았단다. 뒤뜰, 레몬 나무 그늘에서 삼겹살 바비큐를 즐기고 노천 온돌방에 누워 하늘의 별을 센단다.
“너 지금 나 약 올리냐?”
“그러게 평상시에 좀 쟁여 놓지. 너의 취미생활인 근검절약, 미니멀 라이프 어쩌고저쩌고하다가 웬일이니? 너희 집 주소 줘. 내가 일용할 양식 보내줄게.”
“제발 내비도! 물건 보낸다고 우체국에 드나들다 바이러스 걸리면 난 좌불안석, 그 음식이 제대로 삭히겠냐. 밖에 나가지 말고 건강해야 너희 가족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지.”
아침 일찍 장 보러 갔다. 홀푸드에 도착하기도 전 멀리서도 늘어선 줄이 보였다. 트레이더 조는 말하면 뭘 하랴. 물론 페이퍼 타월도 휴지도 별로 없다. 뭐 세정제야 더 말할 필요 없이 아예 없다. 그래도 난 다 대체하며 살 수 있다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집안을 정리하며 쓸어내기 시작했다. 오래된 홑이불 껍데기를 걸레로 사용하려고 가로세로 10인치 크기로 잘랐다. 찬장 안을 청소하며 먹을 것을 죄다 꺼냈다. 사 놓고 먹지 않은 깡통, 밀가루, 콩 종류, 스파게티, 감자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놨다. 그렇게 사지 않았는데도 많다. 아쉽게도 쌀이 조금 밖에 없다. 냉장고 청소도 했다. 깻잎 장아찌가 꽤 많다. 팔짱을 끼고 식탁 위에 늘어선 먹고 싶지 않은 음식들을 째려본다.
코로나 사태가 올 줄 어찌 알았을까? 아들 친구가 3년 전에 디자인 마스크를 만들어 팔았다. 그 당시에는 팔리지 않던 것이 지금은 불티나게 팔린단다. 바쁜 와중에 우리 부부에게 2개씩이나 줬다. 신통방통한 녀석이다.
비록 깡통 음식으로 연명하는 내 입이지만 마스크만은 명품으로 가렸다. 살다 살다 이런 묘한 세상을 맞이할 줄이야. 어쩌겠는가! 디자인 마스크라도 쓰고 위로받으며 나름대로 즐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