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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9/17-10/11) <2> Lovers Rock ★★★★☆ 
1980년 런던의 자메이카판 '토요일밤의 열기' 
'12년 노예'의 스티브 맥퀸 감독...칸영화제 본선 진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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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Rock(2020) by Steve McQueen. NYFF58


1963년부터 매년 가을 앨리스털리홀에서 열려온 뉴욕 영화제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뉴욕필하모닉의 홈 공연장 데이빗게펜홀(구 에버리피셔홀), 뉴욕시티발레의 데이빗코크시어터 새 시즌 공연 개막과 함께 9월 링컨센터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2020년 가을 링컨센터는 고요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3월 중순부터 모든 공연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올해로 제 58회를 맞은 2020 뉴욕영화제(9/17-10/11)는 온라인과 드라이브 인 시어터 상영회로 펼쳐진다. 여성 참정권 부여 100주년인 2020년 미국은 코로나 팬데믹라는 육체적 전염병과 함께 인종차별이라는 정신적 전염병에 경각심을 촉구한 #BlackLivesMatter 운동으로 소용돌이 친 역사적인 해이기도 하다. 5월 25일 메모리얼데이 백인 경찰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질식시키는 생생한 모습을 지켜본 미국인들은 마스크를 쓰고, 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미 대륙을 발견한 영웅이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을 비롯, 인종차별주의자 동상과 미남부연합기 등이 쓰러지거나 폐기됐다. #BlackLivesMatter는 유럽까지 퍼지며, 영국과 벨기에에서도 인종차별주의자 동상들이 도미노로 파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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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러버스 록' Zoom 기자회견. 스티브 맥퀸 감독, 배우 아마라-재 세인트 오빈, 마이클 워드 NYFF 데니스 림 디렉터. 


 2020 뉴욕영화제가 17일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50) 감독의 '러버스 록(Lovers Rock)'을 개막작으로 상영하는 것은 이 사회적인 흐름에 조응하기 위한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타워링' '빠삐용'의 할리우드 스타(1930-1980)과 같은 이름의 스티브 맥퀸 감독은 영국 출신으로 1999년 권위있는 미술상 터너상(Turner Prize)를 수상한 비디오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스티브 맥퀸은 2014년 '12년 노예'(12 Yearsa Slave)로 아카데미상 최초로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흑인감독이 됐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처럼 오스카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12년 노예'는 그해 영국 아카데미상(BAFTA), 골든글로브 작품상에 뉴욕비평가협회 감독상까지 휩쓸었다. 그리고, 맥퀸은 2014년 타임(TIME)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으며, 2020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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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Rock(2020) by Steve McQueen. NYFF58


스티브 맥퀸의 신작 '러버스 록'은 영국 BBC 스튜디오와 미국의 아마존(Amazon)이 합작한 TV용 미니 시리즈 '스몰 액스(Small Axe)'를 위해 만든 드라마다. 스티브 맥퀸이 연출한 5개의 에피소드 중 '러버스 록(Lovers Rock)' '맨그로브(Mangrove)' '빨강, 하양, 파랑(Red, White and Blue)' 3편이 뉴욕영화제 본 프로그램에서 상영된다. '러버스 록'과 '맨그로브'는 올 칸영화제 경쟁작품으로 선정됐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상은 생략했다. 최초의 흑인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됐던 스파이크 리와 함께 칸의 새로운 역사를 쓸 기회가 달아나버렸다.     


'12년 노예'가 미국 흑인의 노예 역사를 극화했다면, '스몰 액스' 시리즈는 런던의 카리브해 웨스트인디 출신, 특히 자메이카 흑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맥퀸의 부모는 카리브해 그레나다와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이다. 맥퀸 역시 영국에서 흑인소년으로 자라면서 조직적인 인종차별도 겪었다. 청소년기 교사들은 그를 노동자, 배관공 등을 가르치는 교실에 집어 넣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맥퀸은 소년기에 축구선수로도 활동했지만, 그의 관심은 미술이었다. 첼시대학에서 아트와 디자인을 전공한 후 골드스미스대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영화에 매료됐다. 졸업 후 뉴욕대학원에서 수학한 맥퀸은 2020 뉴욕영화제를 개막하는 거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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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Rock(2020) by Steve McQueen. NYFF58


'스몰 액스' 시리즈는 3부작으로 1960년대부터 80년대로 돌아가 이야기하는 빈티지 런던 스토리다. 1980년대 초 런던의 가난한 웨스트인디계 이민자(*카리브해의 영어권 섬나라들) 마을, 남자들은 가구를 옮기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음식 만들기에 분주하다. 그날 토요일밤의 댄스 파티를 위해서다. 그 시절 런던 주류사회에 흑인 이민자들을 위한 댄스 클럽이 있을리가 만무하다. 이들이 그들만의 하우스 파티를 여는 것이다. 


카세트 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 스피커와 턴테이블이 차려지고, 지금은 사라진 도너스 싱글판이 빼곡하게 보인다. 자메이카 출신 젊은 여성 마사(아마라-재 세인트 오빈/ Amarah-Jae St. Aubyn)가 자메이카 출신 남자 프랭크(마이클 워드/ Michael Ward)를 만나는 Boy Meets Girl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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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Rock(2020) by Steve McQueen. NYFF58

*Janet Kay "Silly Games"(1979) 


'러버스 록'은 기승전결의 드라마라기보다는 68분간의 긴 뮤직 비디오로 보아도 좋을 만큼 대사는 절제되고, 춤과 음악이 화면을 지배한다. 아마도 스티브 맥퀸 감독이 소설가 출신이 아니라 비디오 아티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홍콩 감독 왕가위(Wong Kar-wai) 역시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으로 스토리텔링보다는 수려한 영상이 장기다. 


맥퀸은 레게(reggae) 음악의 전설 밥 말리(Bob Marley, 1945-1981)가 영국에서 활동하며 인기의 절정을 누리던 1980년을 배경으로 흑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토요일 밤, 청춘남녀들이 곱게 단장하고 하우스 파티로 간다. 라이브 DJ는 목에 전구를 걸고, 레게풍의 레코드를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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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Rock(2020) by Steve McQueen. NYFF58

*Carl Douglas "Kung Fu Fighting"


댄스 파티에서 제인 케이(Janet Kay)의 히트곡 '어리석은 게임(Silly Games)'이 흐르자 젊은이들은 슬로우 댄스를 춘다. 이 중독성있는 노래가 끝나도, 춤꾼들은 반주 없이 '아카펠라' 합창을 하면서 레게는 가스펠처럼 변화한다. '러버스 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촬영감독 샤비에 커쉬너(Shabier Kirchner)의 카메라는 춤꾼들 사이에서 춤추듯이 밀착해서 이들의 격정을 육감적으로 포착한다. 


이어 '쿵후 화이팅(Kung Fu Fighting)이 흐르면, 모두들 격투하듯 춤을 춘다. 그리고, 리듬이 바뀌면 체 게바라를 연상시키는 저항의 노래와 제스추어로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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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Rock(2020) by Steve McQueen. NYFF58


토요일 밤의 열기는 끝나고, 마사와 프랭크는 다음 데이트를 약속한다. 런던 거리의 빨간 더블데크 버스와 공중전화 박스가 운치있는 배경이다. 거리에 커다란 십자가를 들고 가는 노인이 영화 속에서 두번 스쳐간다. 맥퀸 감독은 하나님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가까이에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침 일찍 집으로 숨어 들어가 침대에 누운 마사에게 '교회 가야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영화는 페이드아웃된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러버스 록'을 총감각적인 뮤지컬로 만든다. 부엌에서 염소 카레, 빈즈앤라이스 등 자메이카 요리를 만들며 'Silly Games'를 노래하는 여인들, 젊은이들의 육감적인 춤은 흑인에 의한 흑인들의 이야기이기에 편견없이 그려질 수 있었다. 기존의 인종적 스테레오타입과 해피 엔딩의 공식을 준수하는 할리우드 뮤지컬에서 탈피한 유니크한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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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Rock(2020) by Steve McQueen. NYFF58


맥퀸은 '러버스 록'에서 특별히 왕가위 감독에게 오마쥬를 표한듯 하다. 하우스 파티의 슬로우 댄스 장면은 장만옥과 양조위의 금지된 로맨스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 2000)'의 수려한 촬영과 빈티지 음악을 연상시킨다. '화양연화'의 첫 시퀀스엔 홍콩 좁은 아파트에서 이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러버스 록'에서는 댄스 클럽을 마련하기 위해 가구를 옮긴다. 


마침 '화양연화'는 올 뉴욕영화제에서 4K 복원판으로 리바이벌 상영된다. 또한, 마사와 프랭크가 버스 정류장에서 작별하는 장면은 왕가위 감독의 '열혈남아(As Tears Go By, 1988)에서 장만옥과 유덕화의 버스 이별 씬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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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Rock(2020) by Steve McQueen. NYFF58


그리고, 주인공 마사와 친구 패티가 레인코트를 입고 놀이터에서 만나는 장면의 노란색 테마는 프랑스 자크 드미 감독의 뮤지컬 '셸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 1964)'에 대한 오마쥬같다. '러버스 록'은 스티브 맥퀸이 담고 싶었던 런던 자메이카 청춘의 '화양연화'(인생에서 꽃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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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Rock(2020) by Steve McQueen. NYFF58


지난해 뉴욕영화제 개막작은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치라는 호화 캐스트의 3시간 30분짜리 대작 '아이리쉬맨(The Irishman)'이 장식했다. 올 뉴욕영화제 오프닝은 68분짜리 작은 영화지만, 커다란 울림을 남기는 큰 영화다. 러닝타임 68분.


Lovers Rock

Thursday, September 17 at 8:00PM - Queens Drive-In - World Premiere Screening

Thursday, September 17 at 9:00PM - Brooklyn Drive-In - Public Screening

Wednesday, September 23 at 8:00PM - Bronx Drive-In - Public Screening

https://www.filmlinc.org/nyff2020/films/lovers-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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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09.24 13:50
    '러버스 록'이란 영화를 컬빗님께서 두번이나 보셨다니, 저도 꼭 봐야겠습니다. 수첩에 적어놓았습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이 똑 같은 이름의 배우인 고인이 된 덜 세련됐지만 매력적이었던 배우 맥퀸을 떠올리게 하네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