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겨울 숲은 환하다/ The Winter Forest is Bright, 사진 by 진영미
Youngmi Jin, After the Snow, Planting Fields Arboretum State Historic Park, NY, Feb. 2. 2021
겨울 숲은 환하다
박노해
눈 내리는 겨울 숲에서
우리 겨울 나무로 만나자
아무도 이 눈보라를 멈출 수 없고
누구도 이 추위를 막을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그대 곁에 겨울 나무로 서서
이 눈보라를 함께 맞으리
그리하여 얼어붙은 땅속에서
따뜻한 뿌리로 손과 손을 꼭 쥐고
가난한 체온을 함께 나누리
외로운 마음이 외로운 자의 친구가 될 수 있고
가난한 마음이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될 수 있어
우리들 벌거벗은 나무처럼 정직한 모습으로
겨울 사랑을 이야기하리니
봄의 희망을 이야기하리니
어느샌가 다가선 겨울 나무들
흰 산에 가득한
겨울 숲은 환하다
Youngmi Jin, Winter Trees, Alley Pond Park, NY, Jan. 30, 2021
The Winter Forest is Bright
Park Nohae
Snow falls in the winter forest
Let's meet as winter trees
If no one can stop this blizzard,
If no one can stop this cold,
I'd rather stand next to you as a winter tree
Together we will face the blizzard
So in the frozen ground
Share our poor body temperature
By holding hands and hands tightly with warm roots
A lonely heart can be a friend of the lonely
A poor heart can be a friend of the poor
As honest as the naked trees
We will talk about winter love
We will talk about the hope of spring
Already the winter trees are appraching
Full of white mountains
The winter forest is bright
Youngmi Jin, After the Snow, Planting Fields Arboretum State Historic Park, NY, Feb. 2. 2021
박노해(본명 박기평, 1957- )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주 선린상고 야간학교에 다녔다. 1984년 출간한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이 100만부 가까이 판매되면서 1천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 1991년 체포되어 사형까지 구형됐다. 옥중에서 시집 '참된 시작'(1993), '사람만이 희망이다'(1997)를 출간했으며, 1998년 석방됐다. 이후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 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으며, 2003년 이라크전에 참전하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지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2010년 사진작가로서 첫 개인전 '라 광야 (Ra Wilderness)'를 열었다. 사진집 필명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뜻한다.
진영미 Youngmi Jin/사진작가
경상북도 김천 출생. 2014 NYCB Photo Contest 대상 수상. 2018 멜린다 카츠 퀸즈 보로장 표창장 수상. 2018 뉴욕 뱅크오브호프 그룹전 'Along the Inner Path'.
"겨울 숲은 환하다"도 읽고나면 내면이 축축해짐을 느낌니다. 밖은 요 며칠 동안 내린 눈으로 흰색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발걸음 없는 숲은 눈으로 덮혀서 환하게 반사하고 있겠지요. 여름 숲이 녹음이 우거진다면 겨울 숲은 눈덮힌 하얀 숲이기 때문에 환합니다. 문득 이 눈덮힌 하얀 숲에 사육신의 한분이신 성삼문 충신의 마지막 시가 떠오릅니다.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까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있어
흰눈 세상에 가득 찰 때 홀로 푸르리라".
'겨울 숲은 환하다'가 성삼문 선생님의 시와 절친이 되는 것 같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