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그 위대한 이름: 윤수천, 이소영, 장만영
할머니, 그 위대한 이름
이정향 감독, 김을분, 유승호 주연 '집으로...(The Way Home..., 2002)' 중에서.(*흑백 이미지 전환)
할머니는 바늘구멍으로
윤수천/아동문학가
할머니가 들여다보는
바늘구멍 저 너머의 세상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잖는데
할머니 눈에는 다 보이나 보다.
어둠 속에서도
실끝을 곧게 세우고는
바늘에 소리를 다는
할머니 손
밤에 보는 할머니의 손은 희다.
낮보다도 밝다.
할머니가 듣고 있는
바늘구멍 저 너머의 세상 소문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잖는데
할머니 귀에는 다 들리나 보다.
이정향 감독, 김을분, 유승호 주연 '집으로...(The Way Home..., 2002)' 중에서.(*흑백 이미지 전환)
할머니
이소영/아동문학가
우리 할머니는
척척 박사시다.
학교 마당에도
못 가 본 노인이지만
당근 값
계산할 때는
바로바로 박사다.
우리 할머니는
마음이 장사시다.
대장인 큰 아빠도
할머니
흰소리 앞에
꼼짝도 못하신다.
그래도 할머니는
나하곤 친구시다.
친구와 다툰 날도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
알사탕
아무도 몰래
감추었다 주신다.
이정향 감독, 김을분, 유승호 주연 '집으로...(The Way Home..., 2002)' 중에서.(*흑백 이미지 전환)
감자
장만영/시인
할머니가 보내셨구나
이 많은 감자를.
야, 참 알이 굵기도 하다.
아버지 주먹만이나 하구나.
올 같은 가물에
어쩌면 이런 감자가 됐을까?
할머니는 무슨 재주일까?
화롯불에 감자를 구우면
할머니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이 저녁 할머니는 무엇을 하고 계실까!
머리가 허연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보내 주신 감자는,
구워도 먹고 쪄도 먹고
간장에 조려
두고두고 밥반찬으로 하기로 했다.
나는 친할머니를 본적이 없다. 내가 세상에 나오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하면 외할머니만 안다. 우리 엄마가 외딸인데다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매일 우리집에 오셔서 살림을 봐 주셨다. 음식 솜씨가 좋으셔서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상을 가득 차리셨다. 오죽하면 며느리인 외숙모님이 딸이 먹여살린다냐고 하시면서 불평을 하시곤 했다. 외손주들도 참 예뻐하셨다. 우리 형제 중에 누가 아프면 요를 펴서 아랫목에 누이고 한손으로 배를 살살 맛사지하시면서 내손은 약손이다 쎄쎄쎄를 수없이 뇌이셨다. 왠만큼 아픈 것은 할머니의 약손이 다으면 신기하게 나았다.
정말 할머니손은 약손일까? 여러번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할머니손은 약손이라고 어느 요리선생님이 말씀을 해주셨다. 할머니 손끝에는 아미노산이 있어서 그분이 손끝으로 만드는 음식은 맛이 좋고 그손으로 아픈배를 주물러주면 약손이 된다고 했다. 나는 이 사실을 믿는다.
바늘귀에 실을 꽤시는 모습, 알사탕(할머니는 알사탕이라고 않고 눈깔사탕이라고 하셨다)을 주시던 모습, 화롯불에 감자를 묻었다가 호호 불면서 주시던 모습이 눈에 환하게 떠오룬다. 돌아가신지가 반세기가 넘었지만 내손은 약손이다고 하면서 손주들인 우리를 따뜻하게 감싸셨던 모습이 내 앞으로 다가온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