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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Food Obsession <11> Napoleon 2:  Champagne, Chambertin & Cognac

나폴레옹: 샴페인, 샹베르탱 와인, 그리고 꼬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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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Louis David, Napoleon Crossing the Alps(detail), 1805

 

*위대한 음식 열정 <10> 나폴레옹 #1 세인트 헬레나 커피

 

 

#나폴레옹과 모에 샹동 샴페인  Moët & Chandon

 

"어서 오라, 나는 별을 마시고 있다!(Come quickly, I am tasting the stars!)"   "

-돔 페리뇽(Dom Pérignon, 1638-1715)-

 

"샴페인! 승리한 자는 마실 자격이 있고, 패배한 자에게는 필요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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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에페르네(Épernay)의 모에 샹동 하우스 앞마당에 돔 페르뇽 동상이 서 있다.

 

태양왕(Le Roi Soleil, The Sun King) 루이 14세 시대 베네딕트 수도사 돔 페리뇽이 1531년 샴페인을 개발했다면, 나폴레옹 황제는 샴페인의 인기를 치솟게한 인물이다. 

 

나폴레옹은 1782년 브리앙 르 샤토 군대 아카데미에서 장-레미 모에(Jean-Rémy Moët, 1758–1841)를 처음 만나  평생 우정을 지속했다. 장-레미의 할아버지 클로드 모에(Claude Moët, 1683-1760)는 1743년 모에 샹동(Moët et Chandon)을 창립해 루이 15세에 샴페인을 납품했던 인물이다. 

 

기록에 의하면, 나폴레옹은 1801년부터 모에&샹동 샴페인을 운송받았다. 그리고, 모에&샹동 하우스가 있는 에페르네이를 종종 방문해 직접 와인을 몇 케이스로 가져갔다. 모에&샹동 셀러 입구에는 '1807년 7월 26일 프랑스의 위대한 황제가 장 레미 모에의 안내로 셀러를 투어했습니다."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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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1807년 7월 26일 친히 모에 샹동의 카브(지하 와인 저장고)를 구경했다.  

 

나폴레옹은 군사 작전 중에도 늘 샴페인(샹파뉴) 지방의 에페르네이에 자리한 모에 샹동에 들러 샴페인을 픽업해갔다. 단 한번 자신이 샴페인에 못간 때는 워털루(벨기에, 1815) 전투에서 웰링턴 장군과 싸울 때였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나폴레옹이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모에는 자신의 부지에 베르사이유 궁전의 별궁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을 복제한 대리석 건축물을 지어 나폴레옹과 조세핀 부부가 머물 수 있도록 배려했다.나폴레옹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에도 모에 샹동 샴페인으로 축하했다. 1814년엔 장-레미 모에에게 와인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공으로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1869년엔 나폴레옹 탄생 100주년을 맞아 '모에 샹동 브뤼 임페리얼(Moët Chandon Brut Impérial)'을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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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샴페인 따는 의식 사브라쥬(Sabrage)

 

나폴레옹 군대는 항상 모에 샹동 영지에서 샴페인을 픽업해 출두했다. 나폴레옹 시절 기병대가 유럽 정복을 축하하기 위해 군도(휘어진 칼, sabre)로 샴페인의 병목을 쳐서 따는 전통이 시작됐다. 철사를 제거하고, 코크를 돌려서 오픈하는 것이 아니라 칼로 샴페인 병의 목을 쳐내는 이른 바 '사브라쥬(Sabrage)' 방식이다. 나폴레옹이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사브라쥬를 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막상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의 웰링턴 공작과 대면했을 때는 샴페인이 떨어졌다. 패배했기 때문에 샴페인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웰링턴은 나폴레옹 덕분에 샴페인 애호가가 되었다고 한다.  

 

워털루 전투에서의 패배 나흘 후 나폴레옹은 폐위됐고, 연합군이 파리에 입성했다. 나폴레옹은 엘바섬으로 떠나기 직전에도 모에를 방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크 호텔 사브라쥬의 비극

약 15년 전쯤 친구와 어퍼이스트사이드의 마크 호텔(The Mark Hotel)에서 열린 샴페인 시음회에 갔다. 소믈리에가 멋지게 사브라쥬를 시연하다가 그만 병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튀었다. 가까이에 있던 한 남성이 파편을 맞아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는 좀 떨어져 있었다. 나중에 그 소믈리에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로 옮겨갔다. 마크 호텔은 오래 전 영화배우 조니 뎁이 난동을 피웠던 부티크 호텔이다. 사브라쥬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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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Louis David, Coronation of Napoleon, 1807

 

나폴레옹이 퇴위한 후 샴페인 지역은 프러시아군이 점령했다. 샴페인 주민들은 막대한 벌금을 내야했으며, 대부분의 샴페인 창고들은 약탈당했다. 이들은 특히 모에 샹동 부지를 점령해 60만여병을 마셔버렸다. 모에는 친구들에게 "이들이 오늘 나를 망칠지언정, 내일 내게 돈을 벌게해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만큼 마시게 해주련다. 그들은 평생 샴페인이 매료되어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서는 나의 최고의 세일즈맨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 레미 모에의 예언은 맞았다. 나폴레옹의 적이었던 웰링턴 공작을 비롯,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윌리엄 3세, 네덜란드의 윌리엄 2세, 러시아의 짜르 알렉산더와 신성 로마 황제 프란시스코 2세까지 모에 & 샹동 샴페인을 찾았다. 

 

 

#나폴레옹과 제브레 샹베르탱 Gevrey Chambertin 

 

"샹베르탱 한잔을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미래를 장미빛으로 만드는 것은 없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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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부르고뉴) 지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샴페인(스파클링 와인)과 함께 레드 와인 제브레 샹베르탱(Gevrey- Chambertin)을 즐긴 것으로 전해진다. 아니, 그가 황제 시절 마신 유일한 와인으로 전해진다. 그가 보르도(Bordeaux)가 아닌 부르고뉴(Bourgogne/ 버건디-Burgundy)를 즐긴 이유는 전해지지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와인에 항상 물을 타서 마셨다고 한다. 

 

부르고뉴 지방의 피노 누아(pinot noir) 100%로 양조한  제브레 샹베르탱을 전투에도 가져갔다. 군대용 식량 마차와 함께 샹베르탱이 담긴 오크통을 실은 마차를 대동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이유가 전날 샹베르탱을 마시지 못해 전략을 제대로 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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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브레 샹베르탱은 부르고뉴에서도 일급 와인(그랑 크뤼) 와이너리 9개를 보유한 명당 코트 드 누이(Côte de Nuits)에 자리해 있다. 대륙성 기후에 철분이 풍부한 붉은 토양과 석회암 층에서 묵직한 구조감에 강렬한 컬러, 아로마와 풍미의 와인을 빚어낸다. '부르고뉴 와인의 왕'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망명한 후 나폴레옹은 유일하게 커피만을 예찬했다. 그가 섬에서 즐겨 마신 와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생산된 디저트 와인 뱅 드 콩스탕스(Vin de Constance)로 알려졌다. 나폴레옹은 죽어가면서 음식과 다른 음료는 모두 거부했으며, 뱅 드 콩스탕스 한잔을 마셨다. 그가 망명 시절 마신 이 디저트 와인은 총 300갤런으로 전해진다. 

 

뱅 드 콩스탕스는 제인 오스틴, 샤를르 보들리에르가 언급했으며, 프레데릭 황제, 조지 4세, 비스마르크도 애호가였다.  

 

"명백히 와인이 주는 즐거움은 일시적이다. 하지만, 발레나 음악 공연도 마찬가지다. 와인은 영감을 주며, 삶의 기쁨을 크게 더해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나폴레옹과 꼬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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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냑 지도/ 프랑스산 코냑 

 

나폴레옹은 엘바섬과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갈 때 코냑(Cognac)을 수백병 가져간 것으로 전해진다. 

 

코냑은 프랑스 남서부의 코냑 지방에서 생산하는 브랜디(Brandy, 포도 증류주)다. 샴페인(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만이 샴페인으로 불리우는 것처럼 코냑도 코냑 지방 생산 브랜디에만 붙여질 수 있다. 

 

명품 레드와인 산지인 보르도(Bordeaux) 지방 인근에 자리한 코냑은 우그니 블랑, 폴리 블라쉬, 콜롱바르 등 청포도로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지만, 산도가 높아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에 코냑에선 이 화이트 와인을 증류(*distilling: 액체를 가열해 생긴 기체를 냉각해 다시 액체로 만들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액체가 얻어진다)한 후 오크통에 넣어 2년 이상 숙성시켜 블렌딩해 내놓은 것이 코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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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부아시에 코냑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던 코냑은 쿠르부아시에 코냑(Courvoisier Cognac)이었다. 나폴레옹은 전쟁 중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코냑으로 선심을 썼다. 1790년 엠마누엘 쿠르부아시에(Emmanuel Courvoisier)가 창립한 쿠르부아시에는 황제, 귀족들에게 인기를 얻어왔다. 쿠르부아시에는 나폴레옹과의 우정을 기념해 입상을 심볼로 했다. 2014년 일본의 빔 산토리 그룹(Beam Suntory Group)에 인수됐다. 

 

하지만, 오늘날 코냑에서 '나폴레옹'은 숙성기간이 6년 이상인 코냑에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V.S.(Very Special)은 2년 이상, V.S.O.P.(Very Superior Old Pale/ Reserve)는 4년 이상, XO(Extra Old)는 10년 이상 XXO(Extra Extra Old)는 14년 이상 숙성된 코냑에 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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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추리 소설가 에드가 알란 포우(Edagr Allan Poe, 1809-1849)도 코냑 애호가였다. 발티모어에 있는 그의 무덤에는 1949년부터 2009년까지 포우의 생일날(1월 19일) 검은 옷에 큰 챙의 모자, 흰 스카프를 맨 인물이 새벽 코냑 을 들고 나타나 잔에 따라 포우에게 건배한 후 남은 코냑 병과 장미 세송이를 남기고 가는 의식(Poe Toaster)을 행한 인물이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샹파뉴의 시골마을 르메닐쉬로제(Le Mesnil sur Oger)에서 하룻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샴페인 태탕제(Taittinger) 셀러 투어

*랭스 노트르담 대성당: 천사의 미소를 만나다

*프랑스 샤토 드 쿠르셀레에서의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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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3.25 19:04
    나폴레옹의 와인과 코냑 얘기를 잘 읽었습니다. 이런 강의를 집에 앉아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컬쳐에 감사드립니다.
    나폴레옹은 독서광뿐만아니라 커피광에 와인과 코냑광임을 알았습니다. 삼관왕이 되기가 쉽지 않을 터에 자연스레 이들을 즐기고 광적으로 이것들을 사랑한 것을 보면 정렬이 온몸에서 용솟음 쳤다고 보겠습니다. 여색에 빠지지않고 독서와 와인 코냑과 더불어 사색을 하면서 생을 산 그가 영웅칭호를 받는다는 게 당연하다고 사려됩니다. 가끔 룸메이트와 와인 한잔과 코냑을 마신 적이 있어서 이번 주말에 마셔볼까해서 찬장을 뒤졌드니 BERINGER RED MOSCATO Argentina산이 있고 MARTELL COGNAC France산이 있어서 위대한 음식 열정<11>나폴레옹을 다시 읽으면서 주말을 보낼까합나다. 취해보고도 싶지만 체질이 약해서 안될 것 같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