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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 홍영혜: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로드 트립 (1) 커버드 브리지 이야기
빨간 등대 (42) Covered Bridges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느림보 여행 첫번째 이야기
<1> 매혹의 커버드 브리지
글/사진: 홍영혜, 그림: 수 조(Sue Cho)
Sue Cho, “River Valley Branch”, 2021, Digital Painting
“여보, 공항 가는데 한 시간, 기다리는 시간, 비행기 두 시간, 또 내려서 렌트카 찾고, 적어도 6시간은 걸릴텐데, 우리 마스크 쓰고 답답하게 가지 말고, 운전해서 갑시다. 짐도 마음대로 싣고, 하루에 6시간, 서로 나누어 3시간씩, 오전 오후 한시간 반씩 운전하고 이틀 반 잡고 천천히 갑시다. 쉬고 싶은 곳에서 하이킹도 하고.”
남편은 시카고까지 14시간 운전이 한시간 반이란 계산이 나오자 마침내 설득을 당해 출발 전날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나는 신이 났다. 유니온 마켓에 가서 에어룸(heirloom) 토마토 한 박스를 사가지고 왔다. 아침에 일어나 빨주노초 토마토 8개를 윤이 나게 씻었다. 여행길에 내 건강을 지켜줄 신줏단지처럼 아이스 팩에 소중히 모셨다. 차에 자리가 남아 내 조그만 이불과 베개, 그리고 족욕을 할 대야까지 끼워 넣고 흡족하게 미소를 띤다.
남편은 작은 이삿짐을 방불케하는 짐을 보고 후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올 여름 새로 장만한 코코넛 망치를 보여주면서 가는 길에 코코넛 2통 사서 빨대에 꽂아 시원하게 먹고 가자며 툴툴거리는 남편의 비유를 맞춘다. 배리 매닐로우의 노래 '코파카바나'가 귀에 쟁쟁 울리는 듯하다. 이렇게 (지금 생각하면 약간은 정신나간) 뉴욕서 시카고까지 로드 트립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펜실베니아주는 은근히 동서로 길고 구불구불해서 여기를 빠져나가면 절반을 온 느낌이다. 펜주는 200개가 넘는, 미국에서 커버드 브리지(covered bridge)가 제일 많이 남아 있는 주라고 들었다. 가는 길에 쉴 곳을 찾아보다가 블룸스버그(Bloomsburg) 근처에 커버드 브리지가 세 군데나 있어, 그중 가장 가까운 루퍼트 브리지(Rupert Bridge)에 들렀다. 브리지가 철도길과 나란히 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Rupert Bridge (1847)
오래된 나무 다리를 차로 건너도 되나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나가기도 하고, 차가 없을 때는 다리 속을 걸어 다니며 트러스(truss, 교량을 떠받치는 구조물)의 모양도 살피고, 틈으로 비치는 밖의 경치를 내다 보기도 한다. 다리 밑에 내려가 잠시 쉬기도 하고, 근처의 길들을 걸어보기도 한다. 30분 정도면 족하게 하이웨이의 빠른 속도에서 빠져나와 한적한 시골의 뒷길에서 쉬어감도 좋은 것 같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펜실베니아주의 아름다운 커버드브리지 11군데를 추천한 사이트가 있다.
*The Most Beautiful Covered Bridges in America
영화 속의 커버드 브리지
커버드 브리지 하면 영화 '매디슨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를 떠올린다. 촬영차 아이오와주 시골에 온 사진작가(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와 시골에서 꿈을 묻고 사는 중년 부인(메릴 스트립역)의 로맨스 배경에는 로즈맨 커버드 브리지(Roseman Covered Bridge, 1883)가 중심에 있다. 메릴 스트립이 다리 안에 격자 틈으로 살짝 훔쳐보다가 들꽃을 꺾어 부케를 만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찾는 장면이다.(사진 위)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는 드라마 'Anne with an E'는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Prince Edward Island)를 비롯해 캐나다 온태리오의 아름다운 정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을 사회의식이 좀 더 부각되게 흥미롭게 각색한 TV 시리즈이다. Anne의 친구 Diane과 Jerry가 몰래 사귀다가 헤어지는 장면에도 커버드 브리지가 한몫한다.(사진 아래)
커버드 브리지의 유래
많은 로맨스의 시작과 헤어짐을 목격한 커버드 브리지는 'Kissing Bridge'란 별명처럼 로맨틱한 장소이며, 무더운 여름 시원하게 물가에서 발을 담그고 낚시와 물놀이를 하던 옛 미국 정겨운 시골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붕을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비를 피하거나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리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실용적인 이유라고 한다. 지붕과 사이딩이 트러스(truss)를 보존하여 20년 정도의 다리의 수명을 100년으로 연장해준다고 한다.
미국에는 1825년에서 1875년 사이에 약 1만 4천개의 역사적인(historic) 커버드 브리지가 세워졌다고 한다. 이후에는 비용이 절감되고 강한 철강, 콘크리트로 대치되고 커버드브리지는 오래되어 무너지거나 홍수에 휩쓸리거나 불에 타서 현재는 750개 남짓 남아있다고 한다. 낭만적인 정취뿐 아니라, 근대 토목공학이 발전하기 전에 긴 다리를 지지하기 위해 삼각형과 아치형으로 트러스를 구축한 목공건축기법은 높이 평가되고 역사적 가치로 보존되고 있다.
내가 추천하는 커버드 브리지
커버드 브리지는 뉴욕시에선 적어도 2시간 거리에 있다. 때문에 다리 하나 보려고 가기에는 부담스럽지만, 로드 트립을 하다 보면 의외로 근처에 있어 놀라게 된다. 특히 뉴잉글랜드와 펜실베니아주는 커버드 브리지의 보고이다.
Sunday River Bridge(1872), 별명이 'Artist's Bridge'
내가 처음 본 커버드 브리지는 선데이 리버 브리지(Sunday River Bridge) 로 메인주의 Newry 에 갔다가 우연히 길 안내표지를 보고 들렀다. 미 초창기 인상주의 화가로 뉴잉글랜드 풍경화의 대가인 존 에네킹(John Enneking, 1841-1916) 이 이곳 풍경에 반해, 자주 다리 근처에서 그림을 그려 “Artist's Bridge”란 별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커버드 브리지에 대한 나의 관심도 이 다리에서 시작되었다.
뉴햄프셔주 화이트마운틴 자락의 플룸 고지(Flume Gorge)는 기회만 되면 또 가보고 싶은 곳이다. 화강암으로 된 협곡과 폭포 주변을 하이킹하면서 아름다운 커버드 브리지를 두 군데 볼 수 있다. 센티넬 파인 브리지(Sentinel Pine Bridge)는 근처 물가에 심어진 100년도 넘은 90피트의 소나무가 허리케인으로 날라가 그 소나무로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입구에 있는 Flume Bridge는 그야말로 어여쁜 다리다.
Flume Bridge (1871), Sentinel Pine Bridge (1939)
뉴햄프셔와 버몬트주 사이 코네티컷 리버(Connecticut River)를 가로지르는 코니시-윈저 커버드 브리지(Cornish–Windsor Covered Bridge)는 차로 지나갔는데, 449 피트 5인치나 되는 미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긴 커버드 브리지라고 한다.
Cornish–Windsor Covered Bridge(1866) between Vermont and New Hampshire
뉴욕에서 시카고까지 자동차 여행을 여러 번 했었다. 시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김밥 열줄을 한줄씩 먹으면서 거의 하루에 오곤했는데. 단지 그때는 청춘인 걸 깜빡했다. 다시는 긴 로드 트립을 안한다는 남편을 보면서 글쎄 과연 그럴까? 참 이상하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는 이 정신 나간 짓을 다시는 안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더위와 긴 여행에 지쳐 피곤하고 다투던 기억은 어느듯 사라지고 아름답고 잔잔한 기억만이 남는다. 나만의 생각일까? 다음엔 코코넛 대신 뭐가 약발이 먹힐까? 올 가을에 펜실베니아와 뉴 잉글랜드를 로드 트립할 기회가 있으면 가을 단풍과 어우러진 커버드 브리지를 보고 싶다.
Sue Cho, “River runs under the covered bridge”, 2021, Digital Painting
홍영혜/가족 상담가
수 조(Sue Cho)/화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아이오와주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생각납니다. 이 소설을 단숨에 읽고 눈물을 닦은 추억이 있습니다. 다리 위에 지붕을 세운 게 비를 피하거나, 남녀가 다리를 지날 때 낭만적인 분위기를 내게 할려는 것이 아니고 다리의 수명을 튼튼하게 연장시키려고 지붕을 이었다니 낭만을 앗아가는듯 하네요.
수 조님의 커버드 브리지 그림이 마음을 밝게 합니다. 색상이 봄 여름을 합친 결정체 같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