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영화제 리뷰 (10) '평행의 엄마들(Parallel Mothers)': 모두들 페미니스트가 되라! ★★★★★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작 '평행의 엄마들'이 12월 24일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와 안젤리카필름센터에서 개봉됐다.
<2021. 12. 24 Update>
https://www.filmlinc.org/films/parallel-mothers
https://www.angelikafilmcenter.com/nyc/film/parallel-mothers
NYFF59 <10> 평행의 엄마들(Parallel Mothers) ★★★★★
피보다 진한 여성들의 연대... 페넬로페 크루즈 베니스 여우주연상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작 모성과 스페인 역사의 쌍곡선
*"평행의 엄마들" 예고편
https://youtu.be/Wqwc_jGfYLw
스페인 게이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óvar, 72)는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Women on the Verge of a Nervous, 1988)' '하이 힐(High Heels, 1990)' '내 어머니의 모든 것(All About My Mother, 1999)' '줄리에타(Julieta, 2016)' 등 여성들의 욕망을 멜로 드라마로 풀어내는 귀재다. 2019년 자전적인 영화 '고통과 영광(Pain and Glory)'으로 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칸 영화제 주연남우상을 안겨주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알모도바르는 시나리오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올 봄 마드리드에서 한달만에 촬영한 여성영화 '평행의 엄마들(Parallel Mothers/ Madres Paralelas)'로 복귀했다. 그의 뮤즈 페넬로페 크루즈를 캐스팅,한 '평행의 엄마들'로 9월 베니스 영화제를 개막하고, 크루즈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심사위원장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이어 뉴욕영화제 폐막작으로 초대되며, 뉴욕에 왔다.
10월 8일 '평행의 엄마들' 언론 시사회 후 대화 시간에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왼쪽부터), 통역사,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와 밀레나 스미트.
마드리드의 잘 나가는 사진작가 자니스(페넬로페 크루즈 분)는 스튜디오에서 미남 법의학 고고학자 아르투로(이스라엘 엘레할데 분)을 촬영하면서 반한다. 두 사람의 불꽃 튀는 정사 후 장면은 산부인과로 바뀐다.(알모도바르의 쾌속 스토리텔링!) 만삭의 자니스는 만삭의 10대 소녀 아나(밀레나 스미트 분)과 병실에서 만난다. 독신녀 자니스는 암과 투병 중인 아내를 둔 유부남 아르투로의 아기를 출산할 기쁨에 빠져있다. 하지만,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리다 임신한 아나는 아기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출산이 슬픔이다. 예비 엄마라는 같은 배에 탄 두 여인은 아기 아빠의 부재 속에서 싱글 맘으로 동지애를 느낀다.
Parallel Mothers by Pedro Almodóvar, NYFF59
피눈물 나는 고통 속에서 두 여인은 딸을 출산한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두 여인의 산고를 파워풀하게 담아낸다. 자니스는 할머니의 이름을 따서 세실리아라고 짓고, 가정부와 내니(오페어)를 두고 일을 병행한다. 한편, 아나는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 집에서 살았지만, 미성년 딸의 임신으로 평판을 두려워한 아버지는 딸을 쫓아낸다. 아나는 대신 지방 공연을 떠난 배우 엄마 집에서 딸 아니타를 키우게 된다.
한편, 자니스를 찾아온 아르투로는 그는 아기의 피부가 검고, 자신을 닮지 않았다며 친자확인 검사를 하라고 말한다. 미심쩍어진 자니스는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되는데... 어느날 자니스는 동네 카페에서 일하는 아나를 만나 그녀의 딸이 돌연사(crib death)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자니스는 아나를 내니로 고용하며, 아나의 유전자를 채취하는데...
Parallel Mothers by Pedro Almodóvar, NYFF59 “We Should All Be Feminists”가 새겨진 티셔츠는 2016년 크리스찬 디올의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찌아 치우리(Maria Grazia Chiuri)가 내놓았다.
'평행의 엄마들'은 반전의 반전으로 숨돌릴 틈새가 없다. 엄마 없이 할머니 아래서 자라 성공한 사진가와 결손 가정에서 자란 비행 소녀의 예상치 않았던 임신과 출산, 모성애와 친자확인, 아버지의 부재...자니스는 싱글맘으로 출산한 딸을 키우는 의무와 증조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아야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
여기에 알모도바르는 스페인의 가슴아픈 역사를 덧붙이면서 드라마에 중량감을 주었다. 1936년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쿠테타로 발발된 스페인 내전(Spanish Civil War)으로 3년간 50여만명이 사망했고, 실종된 민간인은 12만5천여명에 이른다. 프랑코는 1975년 사망할 때까지 독재자로 군림했으며, 자신의 체제를 반대한 노동자, 농민, 지식인, 공산주의 세력을 학살, 테러, 고문, 추방을 자행했다. 자니스의 증조 할아버지는 스페인 내란 때 집단 매장되었다. 할아버지의 유골을 찾아 할머니 곁에 모시는 것이 희망이다. 아나는 아르트로에게 매장처 발굴을 요청하고, 마침내 승인을 얻어낸다.
Parallel Mothers by Pedro Almodóvar, NYFF59
프랑코 총통의 독재 속에서 수많은 남자들이 처형됐으며, 가정은 여자들이 이끌어왔다. 자니스의 히피 엄마는 미국 로커 재니스 조플린(Janice Joplin)의 이름을 따서 딸 이름을 지어놓고, 조플린처럼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강인한 할머니 아래서 자라 사진작가로 성공한 자니스는 뒤늦게 엄마가 되지만, 병원 치 친구 아나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자니스와 아나에겐 자매애를 넘어선 연정이 싹트게 된다. 하지만, 자니스에겐 언젠가 밝혀야할 비밀이 있었고, 정직성과 도덕성의 딜레마에 빠진다.
'평행의 엄마들'은 전통적인 혈연 중심의 가부장적인 가족의 해체를 보여준다. 현대는 비혼 동거가구, 동성애 가구 등 가족의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만, '평행의 엄마들'은 물이 피보다 진할 수 있다고 시사한다. 남자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자니스와 아나는 엄마가 되는 법을 깨우쳐 나간다. 자니스와 아나의 친밀감은 동성애라기보다는 동지애처럼 자연스럽다. 이들은 세실리아의 두 엄마가 되는 것이다. 자니스 곁으로 돌아온 아르트로는 이 가족에서 어떤 위치가 될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Parallel Mothers by Pedro Almodóvar, NYFF59 /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 Barcelona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는 '성스러운 가족의 성당'이라는 뜻이다. 성모 마리아, 예수님, 요셉의 성가족을 교회 이름으로 지은 것은 가족애를 중시하는 스페인의 전통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오늘날 전통적인 가족의 견고한 정의는 무너져가며, 새로운 의미의 가족이 탄생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 매장소에 누운 10명의 남자들은 스페인의 치욕적인 역사 속에서 부재했던 남성성을 상징하는듯 하다. 때문에 스페인은 강인한 여성들이 가족을 이끌어왔다. 자니스가 입은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라고 쓰여진 티셔츠는 알모도바르의 메시지일 것이다.
Parallel Mothers by Pedro Almodóvar, NYFF59
16살에 데뷔해 연기 인생 30년을 넘긴 페넬로페 크루즈(47)는 일생일대의 연기를 보여준다. 서른여섯살에 스페인 배우 하비에 바르뎀과 결혼 후 1남 2녀를 낳고 키우는 어머니답게 진한 모성애의 본능을 몸으로 연기했다. 인스태그램에서 발굴됐다는 밀레나 스미트는 결손가정에서 애정결핍으로 자란 미성년자의 불안정한 안나를 섬세하게 포착해 크루즈와 절묘한 케미스트리를 자아낸다. 스미트는 15살 때부터 모델 활동을 시작한 후 웨이트레스, 베이비시터, 상점 점원, 호텔 리셉셔니스트로 일하다가 2020년 'Thou shalt not kill'로 데뷔했으며, 이번이 두번째 영화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8일 언론 시사회 후 대화 시간에서 스미트가 "수퍼스타감"이라고 치켜 세웠다.
Parallel Mothers by Pedro Almodóvar, NYFF59
아트 콜렉터이기도 한 알모도바르는 '스크린의 마티스'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자니스의 아파트와 의상은 황홀한 원색의 강열한 컬러 팔레트로 현란하게 채색된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콤비 작곡가인 알베르토 이글레시아스(Aberto Iglesias)의 탱고풍 음악이 이 영화의 극적인 반전을 예고하며 스릴감에 빠트린다. 자니스가 아나에게 감자 토르티야(오믈렛) 조리법을 가르쳐주는 맛깔스러운 장면, 자니스가 모델과 상품을 촬영하는 장면까지 '평행의 엄마들'은 오감까지 만족시키는 영화다. 120분. 12월 24일 링컨센터 개봉.
Parallel Mothers/ Madres Paralelas
WEDNESDAY, OCTOBER 8 6 PM, 9 PM
https://www.filmlinc.org/nyff2021/films/parallel-m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