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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파월 Colin Powell(1937-2021)

할렘에서 베트남, 걸프, 워싱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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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L. Powell, 84)이 11일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파월의 가족은 성명에서 파월이 백신 접종을 완전히 받았으며,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월터리드국립군사의료센터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콜린 파월은 1937년 뉴욕 할렘의 자메이카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테어나 사우스 브롱스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맨해튼 가먼트 디스트릭트의 운송 책임자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뉴욕시립대에서 지질학과를 전공하며 ROTC를 통해 입대했다. 1957년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어빌에서 ROTC 훈련을 받은 후 뉴욕으로 돌아가는 길 딥 사우스의 주유소에서 분리된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강요당하면서 인종차별을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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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의 콜린 파월

 

제대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해 35년간 복무한 파월은 미 최고의 군인이자 외교관이며,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했다. 파월은 베트남전에서 싸웠고, 냉전이 끝날 무렵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무기 조약 협상을 지원했다. 합참의장이 된 후 1989년 파나마 침공과 1991년 페르시아만 전쟁을 지휘했으며, 1993년 군대에서 은퇴할 때까지 솔직함, 리더쉽, 자질, 그리고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무뚝뚝한 말투 등으로 국민의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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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파월은 자신을 분석 평가했다. 

"파월은 문제해결사다. 그는 군인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의견이 있지만, 이념은 아니다.

그에겐 열정이 있지만, 광신자는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문제 해결사다."

 

은퇴 후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이후 가장 정치적인 장군이 되어 대통령도 꿈꾸었지만, 1995년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합참의장을 지냈으며,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2003년 2월 5일 UN 연설로 사담 후세인의 위험성을 제기하면서 미국의 이라크전 참전 길을 터주었다. 2008년 대선 캠페인을 2주 남기고 공화당계 파월은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을 '변혁적인 인물(transforming figure)'라 평하며 강력하게 지지했다. 

 

콜린 파월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소수의 공화당계였다. 이라크 참전의 길을 터준 유엔 연설은 그의 생애 최고의 실수였다. 

"나는 후회한다. 나는 항상 그것을 후회할 것이다...

변명거리를 찾고 있지 않다.

난 모든 것의 2중, 3중 출처를 찾아 정확하다고 믿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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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알마 파월과의 결혼식

 

콜린 파월은 1962년 군 복무 중 만난 알마 존슨(청력학자)과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다. 아들 마이클 파월은 FCC 의장을 지낸 후 로비스트로 활동 중이며, 딸 린다는 배우다. 콜린 파월은 취미로 오래된 볼보와 사브 자동차를 복원했다. 1995년 600만 달러 선불을 받고 출간한 회고록 'My AMerican Journey'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Colin Powell, Who Shaped U.S. National Security, Dies at 84

A former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secretary of state and national security adviser, Mr. Powell died on Monday of complications of Covid-19, his family said.

https://www.nytimes.com/2021/10/18/us/politics/colin-powell-dea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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