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다큐영화제 리뷰 (3) 아들이 본 아버지 초상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2021 DOCNYC <3>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물방울은 모든 기억, 고통, 두려움을 지우기위한 것"
김오안 감독이 그린 아버지 김창열 화백의 트라우마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by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2021 DOCNYC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예고편
https://youtu.be/6kj_wnuCIJA
미술관의 그림은 말이 없다. 그림은 이미지 자체로 관람객과 소통하기 마련이다. 비평가들은 이론으로 무장하고 그림을 분석한다. 화가의 목소리는 그림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은 어쩌면 화가 자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비밀 코드일지도 모른다.
거장 김창열(Kim Tschang-Yeul, 1929-2021) 화백의 삶을 그의 둘째 아들 김오안(Oan Kim, 47)이 브리지트 부이요(Brigitte Bouillot)와 함께 다큐멘터리로 연출했다. 2021 뉴욕다큐멘터리 영화제에 초청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는 아들의 연출, 촬영, 음악, 편집, 그리고 해설로 진짜 김창열 화백의 상흔으로 가득했던 삶을 그려냈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화백의 육성을 통해 작가의 정신세계와 물방울의 진정한 의미를 고찰한다.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by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2021 DOCNYC
아버지와 늘 심연같은 갭을 느껴왔던 김오안 감독은 카메라 앞의 아버지에게 묻는다.
"영화의 첫 장면은 무엇으로 하면 좋겠어요?"
김화백은 "아기, 흰눈, 그리고 비밀이 담긴 박스를 이고 가는 노인"이라고 프랑스어로 대답한다.
다큐멘터리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김화백의 상자 속 비밀을 펼쳐보인다.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by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2021 DOCNYC
김화백은 수행의 화가다. 그에게 달마대사의 깨달음은 화두, 공책에 줄을 치고,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필사한다. 2016년 제주도에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을 때 김 화백은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물방울엔 의미가 없습니다. 왜 물방울에만 집중해서 그려왔나고 물으면 제가 못났기 때문에 그래요. 달마대사님이 10년 동안 면 보기를 했습니다. 나도 이것밖에 할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합니다. 저는 지금도 마누라한테 고함 지르고, 도가 통하기는커녕 속물같은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by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2021 DOCNYC
하지만, 영화에서 우리는 김창열 화백의 진심을 듣는다. 김화백은 아들 김오안 감독에게 프랑스어로 말한다.
"물방울을 그리는 것은 기억을, 모든 고통, 모든 두려움을 물로 지워버리려는 나의 행위다. 내게 그림을 그리는 것은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한 위로의 방법이다."
그의 영롱한 물방울들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치유하는 수행이었다. 물방울 시리즈는 그때 사라져간 사람들에게 바치는 장송곡(레퀴엠)인 셈이다.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by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2021 DOCNYC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난 김화백은 15세에 38선을 홀로 넘고, 6.25 동란 때는 총알이 귓가를 스치고, 눈 앞에서 폭탄이 터지고, 내장이 터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중학교 같은 반 학생의 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는데, 사람들 머리 위로 탱크가 지나간 후 사람들의 머리가 바람 빠진 럭비공처럼 뒹굴고 있었다.
이런 죽음의 현장에 대한 기억은 김화백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은 죽지 않았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동생은 김화백이 고모 산소에 가서 하루종일 소리 내서 울던 일을 들려준다. 물방울은 김화백의 '눈물 방울'이다.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by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2021 DOCNYC
김화백은 손녀에게 말한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꽃 그림, 여자 나체나 풍경이나 그리던 시대였다."
전쟁과 그 트라우마는 물방울의 영감이었다. 1969년 겨울 40세에 무일푼으로 프랑스에 도착한 김화백은 1971년 42세에 물방울을 발견했다. 어느날 한밤중에 일어나 그림을 거꾸로 세우고나서 물을 퍼부었다. 그랬더니 물방울이 생기더라. 그때부터 김화백은 물방울만 그려왔다.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by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2021 DOCNYC
김오안 감독은 아버지의 수많은 물방울 그림을 해설한다. 인상주의, 표현주의, 상징주의, 개념주의, 초현실주의 물방울이 있고, 우는, 분노한 물방울,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의 물방울도 있다. 김화백의 물방울은 모든 미술사조를 망라한 오브제인 것이다. 이는 보통 미술 애호가들에겐 새로운 발견이다. 아들이 가까이서 본 아버지의 그림은 이론가들의 차갑고, 난해한 개념비평과 달리 단순하며, 진실에 더 가깝다.
달마대사는 잠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눈꺼풀을 베어버렸다. 김화백도 엄격했다. 김오안 감독은 어릴 적 형(김시몽 고려대 불문과 교수)과 워키토키를 사려고 돈을 훔쳤다가 들켰다. 엄마(마르틴 질롱 여사)는 한달간 TV를 금지시켰지만, 아버지는 두 아들을 벽에 세워놓고 회초리로 힘을 주어 이들의 장딴지를 때렸다. 프랑스인 어머니는 한국식 체벌에 엉엉 울었다.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by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2021 DOCNYC
김화백은 침상 옆에서 부채질해주는 부인을 향해 노래를 불러준다. 이브 몽땅의 샹송 '고엽(Les feuilles mortes)'으로 시작해서 어느덧 민요 창부타령 중 박연폭포로 흘러간다. "박연폭포로 흘러가는 물은 범사정으로 감 돌아든다/ 에헤라 에헤야 좋고 좋다~" 그가 기억하는대로 부른다.
김화백은 또한 '나그네 설움'도 흥얼거린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폭포와 눈물과 물방울은 모두 김창열 화백의 트라우마 코드일 것이다.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by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2021 DOCNYC
아들은 다시 아버지에게 묻는다. "영화 마지막 장면은 무엇으로 하는게 좋을까요?"
아버지는 말한다. "맹. 산."
그의 고향이다. 구글 지도로 현재 고향땅의 모습을 바라보는 김화백, 실향민의 깊은 슬픔이 배어난다.
아버지에게 가장 큰 후회는 무엇일까?
"평생을 호랑이 꼬리를 잡은 사람처럼 진지함으로 살았다. 호랑이 꼬리를 한번 잡으면 놓칠 수 없으니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호랑이가 우리를 잡아 삼킨다."
거장 김화백의 운명이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소용돌이치는 물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해서 찻잔 속의 물, 강물, 빗물, 폭포, 냇물 그리고 수영장의 김화백까지 다양한 물의 형태를 포착하며 김화백의 삶을 그린다. 아들의 카메라는 노장의 클로즈업뿐만 아니라 뒷 모습, 옆 모습까지 '아버지 김창열'의 삶을 다각도로 그려낸다. 영화는 아들의 나레이션과 함께 김화백의 육성으로 샹송과 민요, 가요가 담겼고, 판소리 '심청가'가 흐르며, 김오안 감독이 작곡하고, 징과 퉁소 등 국악기를 넣어 편곡한 명상적인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이 평온하게 이어진다.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by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2021 DOCNYC
영화 '위대한 환상'(1937) '게임의 규칙'(1939) 프랑스 거장 감독 장 르누아르(Jean Renoir, 1894-1979)는 인상주의 화가 아버지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의 삶을 담은 책 'Renoir, My Father'(1962)를 출간한 바 있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에서 잠든 마르틴 질롱 여사의 머리 맡에 이 책이 놓여있다.
아들 김오안이 카메라와 음악으로 그린 아버지 김창열의 초상은 친밀하고, 담백하며, 진솔하다. 이 다큐멘터리가 아니었다면, 김창열 화백과 물방울은 미술사에서, 우리에게서 오해의 심연 속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한 시대의 획을 그은 거장 김창열 화백의 삶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의도와 비평가의 시각 및 언론과 감상자의 관계, 이미지와 진실,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 등 인식의 문제를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다.
THE MAN WHO PAINTS WATER DROPS
November 17, 2021 7:15 PM @Cinépolis Chelsea (260 W 23rd St.)
This screening will be followed by a Q&A with Directors Oan Kim and Brigitte Bouillot
November 11 - November 28, 2021 Online Screening
https://www.docnyc.net/film/the-man-who-paints-water-drop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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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화가의 다큐멘터리를 읽었습니다. 이상한 감회를 느꼈습니다. 쓸쓸하다고 할까, 고독하다고 할까, 그런 감정이 왔습니다. 나이 40에 무일푼으로 불란서에 가서 삶을 시작한 것부터가 배고품을 느끼게 하네요. 물방울이 눈물방울로 보입니다. 물방울이 인생의 전부인 화가는 김창열뿐인가 합니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영롱한 빛을 발하네요. 그의 예술혼을 존경합니다.
아들인 김오안씨가 한국어로 해설을 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저는 불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Elaine-
와 닿네요.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