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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dez-Vous with French Cinema(3/3-13)

2022 프랑스 영화와의 랑데부 <3> 필립 로스 원작 '기만(Deception/ Tromperie) ★★☆

 

불륜과 소설과 영화는 '속임수의 예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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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ption /Tromperie 예고편

https://youtu.be/rYZbeiARadM

 

1996년 박사논문을 쓰는 청년이 오랜 애인과 친구의 애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야기를 다룬 '나의 성생활...혹은 어떻게 나는 논쟁에 휩쓸렸나(My Sex Life... or How I Got into an Argument/ Comment Je me suis Dispute… Ma vie Sex-uelle)'로 찬사를 받았던 아르노 데스플레생(Arnaud Desplechin) 감독이 미국 작가 필립 로스(Philip Roth, 1933-2018)의 에로틱한 글쓰기에 관한 소설 '기만(Deception)'을 영화화했다. 필립 로스는 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2회(굿바이 컬럼버스, 1960/ 안식일의 극장, 1995), 퓰리처상(미국의 목가, 1998), PEN/포크너상(휴먼 스테인, 2001/ 에브리맨, 2007), 프란츠카프카상(2001) 등 노벨상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문학상을 석권한 바 있다.  

 

소설 '기만'은 런던에 사는 미국인 소설가 필립(*작가가 본명을 썼다)이 젊은 영국인 유부녀(익명)와 집필실에서 바람을 피우는 내용이 중심이다. 소설 전체가 지문 없이 대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필립과 애인이 섹스 전후에 나누는 대화다. 이 소설은 작가의 실화일까?

 

실생활에서 필립 로스는 '기만'을 출판한 1990년 오랜 연인이었던 영국배우 클레어 블룸(Claire Bloom)과 결혼했는데, 이 소설 속 작가 필립의 부인 이름도 클레어였다. 이에 대해 블룸은 자신을 모욕한 것으로 판단했고, 이들의 결혼 생활은 고작 4년만에 끝났다. 1996년 블룸은 로스를 이기적인 여성혐오자로 폭로한 회고록 '인형의 집을 떠나며(Leaving a Doll's House: A Memoir)'를 출간했다. 이에 로스는 소설 '난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I Married a Communist, 1998)'로 클레어에게 복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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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ption/ Tromperie by Arnaud Desplechin

 

오랜 필립 로스의 팬이었던 아르노 데스플레생 감독은 이 소설에서 자신의 히트작과 유사성을 본듯 하다. 영화 '기만(Deception/ Tromperie)'의 제목을  '나의 성생활...혹은 어떻게 나는 소설을 썼나(My Sex Life... or How I Write My Novel)'로 바꾸어도 좋을 것이다. 소설가 필립은 영화에서 "내가 소설을 쓰면, 사람들은 자서전이라고 하고, 자서전을 쓰면, 소설이라고 하지! 난 멍청하고, 그들이 똑똑하니깐, 그들이 결정하게 해!"라고 불평한다. 부인이 우연히 그가 애인과의 대화를 메모한 수첩을 읽고 바람이 들통나자 필립은 "그건 상상이야!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은 것!"라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필립의 오만과 편견에 대해 볼쾌해지다가도 그가 소설가라는 이유로 용서해야 한다. 

 

소설가가 창작을 위해 바람을 피우고, 혹은 바람 피우면서 그 내용 그대로 소설로 출간한다는 것 자체가 이기적이며, 기회주의적이다. 불륜과 기만으로 명예와 부를 거머쥐는 것이 소설가의 본분일까? 필립 로스가 자신의 창작방식과 결혼생활에 대해 용기있는 고해성사를 한 것인지, 작가 자신을 위한 변명인지는 알 수 없다. 그에게는 늘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상상이라고. 소설가는 허가받은 거짓말쟁이, 이야기꾼들이니까. 

 

피카소, 마티스, 모딜리아니... 화가의 뮤즈는 영광일지라도, 소설가의 뮤즈는 배신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화가의 뮤즈들은 모델료를 받거나, 애인이 되고, 붓으로 자신이 그려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반면, 소설가의 뮤즈는 글로 은밀하게 묘사되며, 이즘(표현주의, 입체파 등)으로 승화할 수 있는 그림과 달리 문자에 의해 과장되거나, 허구이기 쉽다. 그림 속의 뮤즈는 육체의 벌거벗음이지만, 소설 속의 뮤즈는 영혼의 벌거벗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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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ption, 1990 by Philip Roth/ Deception/ Tromperie, 2021 by Arnaud Desplechin

 

총 12개의 에피소드로 풀어가는 영화는 필립과 애인의 성관계 전후의 대화가 중심이다. 마치 서로 테라피스트처럼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필립은 종종 애인에게 상상을 묘사하도록 부추긴다. 애인은 "필립이 오로지 유대인을 위한, 유대인에 의한, 유대인의 책을 갖고 있다"고 낭송하며, 필립은 메모장에 옮긴 후 소설로 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부인이 필립의 메모 수첩을 발견한 후 논쟁하는 장면과 여성들로 둘러싸인 법정에서 필립이 능멸당하는 장면이다. 

 

필립 역은 '사랑에 빠진 아이니스'에서 출판사 사장으로 분해 작가 부인과 젊은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았던 데니스 포달리데스가 분했다. 영국인 젊은 애인 역은 칸 황금종려상 수상 레즈비언 '파랑은 가장 따뜻한 색'의 스타 리아 세이두가 맡았다. 시각적으로 둘의 캐스팅은 완벽해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청각적으로는 실패한 캐스팅이다. 영화 '기만'의 가장 불편한 점은 런던을 배경으로 미국인 작가와 영국 애인의 이야기인데, 이들이 프랑스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뉴욕 장면에서 병원 직원들도 불어를 한다. 관객은 프랑스어로 말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영어를 상상해야할까? 그것은 고문이다. 히틀러가 영어를 구사하면? 현실감이 떨어진다.

 

영화의 오프닝은 1987년,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WTC)와 런던 브리지가 반씩 스크린을 차지한다. 그 어디에도 프랑스의 흔적은 없다. 과연 필립 로스(뉴저지 뉴왁 출신 뉴요커)는 신경과민의 뉴요커처럼 보일까? 젊은 애인은 영국의 유부녀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의 연기가 영화를 살렸다. 언제나 미스테리한 표정의 리아 세이두는 스크린에서 강열하게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연극배우 출신 베테랑 배우 데니스 포달리데스와 절묘한 호흡을 맞춘다. 그러나, 관객은 프랑스 배우들이 미국과 영국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기만'을 105분간 꾹 참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륜과 소설과 영화가 '속임수의 예술(l'art de tromper)'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필립 로스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게으른 필자에겐 흥미로운 영화였다. 3월 5일 상영 후엔 아르노 데스플레생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된다. 105분

Saturday, March 5 9:15 PM/ Sunday, March 13 3:30 PM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March 3-13, 2022

Walter Reade Theater (165 West. 65th St.)

https://www.filmlinc.org/festivals/rendez-vous-with-french-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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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2.03.09 13:17
    필립 로스의 소설 'Goodbye Columbus'를 오래 전에 원어로 읽고 실제같은 감정의 이입을 느낀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서 알리 맥그로가 주연으로 나와서 영화화(Goodbye, Columbus, 1969)되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소설 "기만"을 영화로 보시고 자세하게 설명을해 주셔서 많이 배웠습니디. 불어로 하는 영화는 본 기억이 생각나지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뉴욕 컬빗의 프랑스 영화 감상의 글은 매우 유익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