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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홍영혜: 워싱턴스퀘어파크의 3인 3색
빨간 등대 (48) Dancer, Dosa Man & & Rosé Man
워싱턴 스퀘어 파크의 3인 3색
Sue Cho, “Dosa Man”, April 2022, Digital Painting
그리니치 빌리지로 이사온 지 어느덧 3년, 지난 2년은 팬데믹으로 칩거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신통한 나의 산책 루트를 개척하지 못했다. 로어 맨해튼 (Lower Manhattan)은 Ave와 Street로 바둑판처럼 나누어진 그리드 시스템 (Grid System)을 따르지 않고, 고유의 길 이름과 빗변으로 가다 꺾이는 길들로 인해 헤매기 일쑤다. 어차피 지도 읽는 것에 약한 나는 아예 전화 내비게이터를 꺼놓고 하루는 이 길 따라, 또 하루는 저 길 따라 몸으로, 감으로 길을 익혀간다.
나의 우왕좌왕 산책길에 워싱턴 스퀘어 파크 (Washington Square Park)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팬데믹 이후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작년 여름 한참 마약과 범죄가 빈번해지고 치안이 좋지 않았다. 집회가 있는지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일 땐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뉴욕시에 아시안 혐오 범죄들이 끊이지 않아서 가능한 어두울 때 다니지 않고,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며 다닌다. 혹시 내 뒤에서 누군가가 떠밀지나 않을지, 이상한 사람이 다가오는 것 같으면 길을 가로지른다. 이렇게 잔뜩 조심하고 산책을 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10에이커가 조금 못 되는 워싱턴 스퀘어 파크는 NYU(뉴욕대학교) 건물로 둘러싸여, 캠퍼스가 없는 학생들에겐 광장의 역할을 한다. 봄이 되니 밴드, 춤, 무료 타이치 강습 등 문화행사와 이벤트가 시작되고, 학생, 주민,여행객들로 붐비니, 공원에 다시 싱그러운 에너지를 느낀다. 막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화사한 봄기운이 긴장하고 의심스러운 마음을 거두게 하고, 봄을 있는 그대로 잠시 즐길 수 있음이 문득 고마워진다. 그간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거닐면서 내 눈길을 끌고 마음의 가드를 내리게 해주었던 세 사람을 소개한다. 일본, 스리랑카, 세인트 루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이다.
Dancer, Let Hair Down 공원에서 춤추는 일본 유학생
나는 추운 날이나 눈비로 궂은 날은 어김없이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찾는다. 한적하고 습기를 머금은 날 공원을 거니는 게 좋다. “오늘은 이렇게 추운데 설마 안 나왔겠지.” 하면 언제나 예상을 깨고 오후 네 시경 즈음에 분수와 아치 사이에 하얀 큰 종이를 깔고 춤을 추는 동양 여인을 만나게 된다. 혹시 한국 사람인가 물어보았는데 일본에서 댄스를 공부하러 온 학생이라고 한다. 펼쳐진 하얀 종이 끝엔 @ Let Hair Down이란 가명이 쓰여 있다. “예의를 차리려고 너무 의식하지 말고, 릴랙스하고 진정한 너 자신이 되어 즐기라”라는 관용구라고 한다. 본명은 쿠사시마 카나미(Kusajima Kanami)라고 한다.
날이 추워서인지, 준비운동을 야무지게 하고 몸을 푼다. 친숙한 클래식 음악이나 팝송을 소프트한 볼륨으로 틀어놓고, 묶은 긴 머리를 풀고 춤추기 시작한다. 헐렁한 옷차림에 물 흐르듯 한 자연스러운 춤사위는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어떤 땐 발에다 검정 페인트를 칠하여 춤을 추는 동안 종이위에 발바닥 페인트를 그린다. 바로 뒤에서 시끄러운 밴드 음악 소리가 날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연하게 자신의 춤을 이어나간다.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 (Angela Duckworth)는 뛰어난 재능, 지능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오랫동안 지속해나가는 그릿(Grit)이 성공하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열쇠라고 했다. 그녀에겐 그릿이 있는 것 같다. 아무도 공연하지 않는 추운 날씨에도 거르지 않더니 이젠 개선문과 분수대 사이, 워싱턴 스퀘어 파크의 명당자리에, 그녀의 춤을 보러 모여드는 이곳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가 저녁을 준비하러 정육점에 다녀오는 길에 댄서와 주로 조우하는데 집에 오면 장바구니를 잠시 내려놓고 음악을 튼다. 풀어헤칠 머리는 없지만, 릴랙스하고 음악에 맞추어 방구석에서 몸을 풀다 보면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들이 먼지 털리듯 날아간다. 무브먼트는 언제나 옳다.
This Park Dancer Is Literally an Ad for New York. The NYPD Keeps Shutting Her Down.
https://www.curbed.com/2021/09/kanami-kusajima-dancer-washington-square-nypd.html
Dosa Man 도사 푸드트럭 운영하는 스리랑카 이민자
워싱턴 스퀘어 파크 남서 쪽에 유명한 Dosa Food Cart가 있다는 것을 이번 겨울에 알았다. 오랫동안 거기에 자리 잡았다고 하던데, 아이들 놀이터와 Dog Park 근처여서 잘 못 본 것 같다. 추운 겨울이어서 공원이 텅 비었는데 줄이 긴 것을 보면, 뭔가 맛있는 게 있을 것 같아 가보니 도사 (Dosa)를 팔고 있었다. 도사는 쌀과 렌틸 (Lentil)을 갈아 반죽을 발효해서 크레이프처럼 얇게 부친 음식이다. 남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유래된 음식인데, 건강한 베지테리안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도사는 몇 년 전 버몬트 여행길에서 처음 먹어 보았다. 점심 먹을 식당을 구글했더니 뜻밖에도 브래틀보로(Brattleboro) 근처 Dosa Kitchen 이라는 Food Truck이 나왔다. 주인은 맨해튼의 인도 음식점에서 일하다 버몬트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때 먹어 보았던 쌉싸름하면서 묘한 크레이프의 맛이 입안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이렇게 다시 도사를 만나다니.
지나갈 때마다 줄이 길어 엄두를 못 내다, 오늘 드디어 마음먹고 기다렸다. 30분 정도 지났는데 몇 사람 앞에서 “Closed “ 사인을 붙였다. “아니 이렇게 기다리게 해놓고는” 했는데 줄 선 사람들까지는 여분이 있나 보다. 마살라 도사(Masala Dosa)와 스페샬 판디체리 도사 (Special Pondicherry)를 주문했다. 대표적인 마살라 도사 (9불)는 감자 으깬 것과 양파 볶은 것을 속에 넣어서 삼바르 (Sambar)나 챠트니 (Chutney)에 찍어 먹는다. 스페셜 판디체리 (10불)는 야채가 더 들어갔는데, 제일 인기가 있다고 한다. 사모사(Samosa) 는 삼각형 모양의 패스트리로 그 안에 커리 감자으깬 것이 들어있데 3불이다. 도사는 즉석에서 만들어 줄을 서지만, 사모사는 이미 만들어 놓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살 수 있다. 매운 정도는 소스를 넣지 않거나, medium, hot으로 주문할 수 있다.
도사 맨(본명 티루 쿠마, Thiru Kumar)은 스리랑카에서 온 이민자로, 공사장 인부부터 시작하여, 20년 전 1만3천불로 Food cart를 장만하고 지금은 유튜브(The Legendary Dosa Man of NYC/ Street Food Icons) 조회수가 1천6백만회 이상 되는 널리 알려진 도사 맨이라고 한다. 레서피는 할머니로부터 배웠는데, "요리할 때 사랑으로 하라"는 말씀을 명심하며, 건강하고 한결같고, 10불 미만으로 먹을 수있는 도사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오전11시나 11시 반 사이에 열고 오후 3시경에 마감하지만, 그 전에 다 팔릴 수 있으니 일찍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개인적으론 버몬트에서 먹은 도사가 빠삭하지 않고 부드러워 좋았던 것 같다. 다음번 주문할 땐 크레이프를 덜 바싹하게, 맵지 않은 맛을 고를 것 같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사모사도 커리 감자 고로께처럼 맛있다.
The Legendary Dosa Man of NYC/ Street Food Icons
https://www.youtube.com/watch?v=sxt4YCIsn2I
Rosé Man 세인트 루시아에서 온 장미파는 남자
Sue Cho, “The Rose Seller”, April 2022, Digital Painting
워싱턴 스퀘어 파크 동남쪽 코너 건너편에 NYU Bobst 도서관이 있다. 지난 가을 부터인지 도서관 옆 모퉁이에서 장미를 파는 노인이 눈에 띈다. 나이가 지긋한데 보라색 베레 모자와 은빛 머리, 렘브란트인지, 그의 그림 속 인물인지를 연상시킨다. 매일은 아니지만 오후 시간에 종종 만난다. 많지도 않은 3 다즌 정도의 빨간, 하얀, 분홍 장미가 조그많고 긴 플라스틱 통에 담겨 있다. 한송이 장미를 손에 들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로제, 로제”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외친다. 그(마틴 프리체, Martin Fritsche)는 카리비안 섬 세인트 루시아 출신으로 Yale 대학 주변에서도 오랫동안 장미를 팔았다고 한다. 아주 춥거나 더우면 장미가 상하니까 날이 좋을 때 나온다고 한다.
나를 위해 장미 한 송이를 선뜻 사게 되지 않다가, 친구가 방문하는 날, 분홍장미 한 송이를 5불 주고 샀다. 열흘이 지났는데 한 송이 장미가 고개 숙이며 예쁘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전에 “나이를 잘 먹는 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을 하다 길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적이 있다. 지하철에서 열심히 책을 읽는 노인, 머리를 깨끗하게 단장하고 화장을 한 노인, 자전거를 들고 지하철을 탄 노인, 그리고 장바구니와 함께 꽃을 안고 버스에 오른 노인 …. 찍었던 사진들이 머리에 스쳐간다.
젊었을 때는 지금보다 여유는 없는데 꽃을 더 많이 샀던 것 같다. 나이가 드니 점점 필수적인 것만 사고 부수적 것은 아깝다고 잘 사게 되질 않는다. 식탁 위에 있는 장미 한 송이가 시들어 갈 때까지 눈길을 보내며, 가끔은 나를 위해서도 장미 한 송이를 사고 싶다.
Q&A: Meet the guy behind the rose cart
https://nyunews.com/culture/2022/02/22/meet-the-rose-guy-by-bobst
홍영혜/가족 상담가
수 조(Sue Cho)/화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홍영혜씨 반갑습니다. 워싱톤 스퀘어 파크를 읽고 나의 옛날 NYU Language School 시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68년도에 만하탄 103가에 살면서 영어를 잘해보고 싶어서 랭귀지 스쿨에 등록을 했습니다. 매일 96가에서 지하철을 타고 4스트릿에 내려서 NYU를 다녔습니다. 점심 때는 친구와 같이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싸가지고 와서 위싱톤 스퀘어 파크에서 조잘거리면서 맛있게 먹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학부학생들이 떼를 지어와서 광장에서 춤도추고 기타도 연주하곤 해서 제목도 모르는 live music을 실컷 듣곤 했습니다. 때로는 쥬이시 학생들이 몰려와서 "타도 나세르(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을 외치는 광경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구루마에서 음식을 파는 행상도 없었고 광장 그 자체였습니다. 이민 초기라 중국인, 인도인 정도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국사람은 중국인으로 간주하기 일상이었지요.
홍영혜씨의 워싱톤 스퀘어 굉장을 읽으니까 그때와는 너무 많은 차이점이 납니다. 그러나 워싱톤 광장은 누구에게나 낭만과 추억을 남겨주는 공통점이 있네요.
수 조님의 그림은 색채가 마음을 끌리게 합니다. 밝은 느낌을 줘서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초록색과 보라색이 넘 좋아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