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1 쇠젓가락 유전자
33 Keys to Decoding the Korean Wave #21 The Magic of Metal Chopsticks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1 쇠젓가락의 DNA
*33 Keys to Decoding the Korean Wave, Hallyu #6 The Magic of Metal Chopsticks <English version>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document_srl=4073422
청동숟가락과 젓가락(靑銅匙箸), 고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올림픽 여자 양궁, 여자골프, 기능 올림픽, 반도체, IT, 성형수술, 피아노, 병아리 감별사, 요리사, 네일살롱, 엄지족...
고도의 집중력, 정밀한 기술과 섬세한 손재주가 필요한 분야에서 한국인들은 혁혁한 실적을 거두어왔다. 그 배경에는 중국, 일본인들과는 다른 쇠젓가락 사용에 있을까?
#"한국 여자양궁 성공비결은 김치와 젓가락" -로이터 통신-
Reuters
2012년 7월 런던 올림픽이 한창이던 때 로이터(Reuters) 통신은 한국 여자 양궁의 우세 요인으로 '김치와 젓가락(kimchi & chopsticks)'을 지목했다. 로이터의 피터 루터포드(Peter Rutherford) 기자는 "양궁: 젓가락, 김치 손가락이 성공의 요인일까?(Archery: Chopsticks, kimchi fingers the key to succes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88 서울 올림픽 이후 7연승(바르셀로나-아틀란타-시드니-아테네-베이징-런던 올림픽)을 거둔 한국의 여자 양궁팀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그들의 이름은 바뀌고, 게임은 변하지만, 화살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 여자 양궁팀은 다시 한번 올림픽 챔피온이다... 한국 여성들이 양궁과 골프 등 감성 스포츠에 탁월한 이유는 양손과 손가락의 감수성과 민첩성 덕분이라는 이론이 있다"면서 오랜 세대를 거쳐 배추와 고추가루를 버무리는 김치 담그면서 감수성이 발달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한국 여성들은 세계 어느 나라 여성들보다더 예민한 손을 갖고 있다. 한국 여성들은 손 재주가 좋다. 요리할 때 손으로 음식의 풍미를 더한다"는 한국 여자 양궁팀 백웅기 감독의 말을 인용했다.
위키백과-올림픽 양궁 메달리스트 목록 https://ko.wikipedia.org
로이터 통신은 이와 함께 젓가락 기술도 성공의 비결로 꼽았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젓가락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들의 젓가락은 길고 나무 재질로 사용하기 쉽다. 하지만, 한국의 젓가락은 매끄럽고 날씬한 금속으로 사용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소개했다.
2005년 논문 조작 스캔달이 터지기 전 황우석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 과정에서 난자와 배아를 미세조작하는 한국인들의 재능을 쇠젓가락 문화로 설명했다.(당시 황 교수는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쇠젓가락을 사용해 식사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연구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발휘한다"고 밝혔다.) 백웅기 감독은 "의사들은 젓가락 이론을 거론하며, 우리 여자 궁수들은 손가락의 느낌이 탁월하다. 그들은 화살이 손가락을 떠난 직후 잘 쐈는지 아닌지 여부를 바로 안다"고 말했다.
양궁은 역대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이 쟁취한 금메달 총 90개 중 최다인 23개를 차지한 종목이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양궁 여자단체 금메달을 따낸 장혜진(왼쪽부터), 최미선, 기보배 선수.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12 그린의 여왕들, 골프의 여신들
#젓가락 유전자: 국제기능올림픽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개최 현황 <위키백과>/ 1981년 6월 제2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종합우승 환영식. 사진: 서울시
세계 젊은이들의 직업 기능을 겨루는 국제 기능올림픽 대회(WorldSkills)에서도 한국인들을 역량을 과시해왔다. 1977년 제 23회부터 2015년 제 43회까지 21년간 한국은 종합 우승을 19회, 준우승을 2회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왔다. 1977년 네덜란드 대회부터 우승을 거의 독점해온 한인들의 손재주를 입증한다. 70년대 기능올림픽 우승자들은 귀국 후 공항에서 도심까지 카퍼레이드를 펼치며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참가 사상 한국 선수단의 최저 성적은 2019년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대회에서 중국, 러시아에 이어 3위를 기록한 것이다.
1950년 스페인에서 시작된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17-22세가 참가한다. 경쟁 부문은 기계(자동차정비, 냉동기술 등)/금속(배관, 용접, 차체수리 등)/공예(귀금속 공예, 그래픽 디자인, 프린팅 등)/전기-전자-정보(웹디자인, IT네트워크시스템, 통신망 분배기술 등)/건축-목재(가구, 목공, 미장, 실내장식, 조경, 타일 등)/미예(간호, 요리, 의상디자인, 피부미용, 화훼장식 등) 등으로 나뉘어 펼쳐진다.
#반도체, IT(정보통신), 성형수술, 클래식 강국
2005년 삼성전자의 광고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습니다' 중 '젓가락'편
한국이 반도체와 정보기술(IT) 강국이 된 것도 정밀한 손 작업이 필수다. 2005년 한국광고대상 수상작은 삼성전자의 광고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습니다' 캠페인 중 '젓가락 편'이었다. "쇠젓가락으로 콩을 집는 민족, IT 강국을 만들다"라는 헤드카피에 콩을 집은 쇠 젓가락을 키아트로 내세운 광고다.
"세계 최초로 체세포를 직접 복제해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 낸 우리나라 연구팀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말고 누가 쇠젓가락으로 콩을 집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우리 민족만큼 섬세한 손재주를 가진 민족이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섬세한 손재주로 가발과 인형을 만들어 코리아라는 이름을 세계에 처음 알렸습니다. 지금은 반도체, LCD, 휴대폰 같은 첨단제품도 척척 만들어 IT 코리아라는 명성까지 얻었습니다. 앞으로의 세계를 주도할 기술은 나노기술! 10억분의 1미터를 다루는 정밀한 기술이기에 누구보다 우리가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 섬세한 손재주를 가진 민족이기에…"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습니다-
삼성전자의 '젓가락' 광고는 같은 해 중앙광고대상 기업PR 부문 최우수상, 한겨레광고대상 기업 PR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15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의 CD
손가락 두개로 칠 수 있는 피아노 솔로 "젓가락 행진곡"(원제: The Celebrated Chop Waltz solo for piano)은 1877년 영국의 16세 소녀 유페미아 알렌(Euphemia Allen)이 "아서 드 륄(Arthur de Lull)"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곡이다. 예전에 한인들은 술 마시고, 흥에 겨우면 젓가락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밥상은 드럼이 되고, 젓가락은 드럼스틱이 되어 장단을 맞춘다. 식당은 노래방처럼 된다.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짧지만, 한인 피아노 연주자들은 콩쿠르에서 빼어난 기록을 세웠다. 그럼, 젓가락 사용과 피아노 연주에도 상관성이 있을까?
조성진(2015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 김선욱(2006 리즈 콩쿠르 우승), 문지영(2014 제네바, 부조니 콩쿠르 우승), 선우예권(2012 윌리엄 카펠 콩쿠르, 2017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그리고 임윤찬(2022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등 특히 피아노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85년 클리블랜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012년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은 어릴 때부터 젓가락을 사용해 손재주가 뛰어나며 선천적인 음악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13 콩쿠르 강국 KOREA
세계 최고의 엄지족도 한인들이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1월 뉴욕에서 열린 LG 모바일 월드컵에서는 한인 청소년 배영호(Bae Yeong-ho, 17)군과 하목민(Ha Mok-min, 16) 양이 우승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엄지 손가락의 규칙: 한국인들이 문자 메시지 세계를 통치하다(Rule of Thumbs: Koreans Reign in Texting World)'에서 배영호군은 초당 6개의 글자를 쳤으며, 하양은 초당 7.25개의 문자를 쳤다고 전했다.
"성형외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손재주다. 성형외과 부분에서 한국의 손기술을 따라올 국가는 없다."
-JK성형외과 주권 대표원장(2009년 뷰티경제 인터뷰)-
한국의 성형기술도 세계 최고다. 수원나누리병원 김현성 원장은 2017년 조선일보 칼럼에서 "최소침습척추수술, 특히 척추 내시경 수술 및 치료는 100세 건강을 위해 발전되어야 할 치료법이지만, 아주 세밀한 손작업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특이하게도 이 쇠젓가락 문화가 척추내시경수술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외국 의사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대한민국 의사들은 어떻게 그렇게 수술을 잘 하나요?"라고 물으면, 나의 대답은 항상 똑 같다. "대한민국은 태어날 때부터 쇠젓가락을 쓰고 있는 유일한 나라입니다. 미끄러운 쇠젓가락이 세밀한 술기를 시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듯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외국 의사들에게 쇠젓가락 쓰는 방법을 연습하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한중일 3국의 젓가락과 테크닉
성협(成夾), 야연(野宴), 성협풍속화첩(成夾風俗畵帖), 19세기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하소설 "대지(The Good Earth)"로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1932)을 수상한 펄 벅(Pearl S. Buck, 1892-1973) 여사는 태어난 지 4개월 때 선교사였던 부모와 대학 입학 전까지 중국에서 살았다. 아시아 문화에 친숙했던 그는 1960년 11월 한국을 방문했다. 한 식당에서 균일하게 잘려진 무채를 보고 기계로 잘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손으로 자른 것을 알고 나서는 "음식이 아니라 예술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초등학교에서 한 어린이가 젓가락으로 콩을 집는 것을 보고 "이건 서커스야"라고 말 한 것으로 전해진다. 펄 벅 여사가 한국인들의 손재주에 놀란 에피소드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5분의 1(15억명)이 날마다 식사 때 젓가락을 사용하고 있다. 2014년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젓가락을 매우 잘 사용한다는 인구는 15%,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다는 응답은 24%에 달했다.
초대 문화부장관(1990-1991)을 지낸 이어령 교수는 '젓가락의 문화유전자'(2016)에서 "한국과 중국과 일본은 젓가락질의 문화 유전자를 품고 있다. 세 나라가 2천년 함께 사용해 온 유일한 도구는 한자, 음식, 언어도 아니고, 오직 젓가락뿐이다. 결합하고 조합하며 연결하는 동양의 문화가 젓가락이라는 작은 도구 속에 담겨 있다. 젓가락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신체의 일부, 우주의 일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령 교수는 한국인들이 젓가락뿐만 아니라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친 '수저'를 한쌍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국, 일본과의 차이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인들은 식사 때 밥과 국이나 찌개, 그리고 반찬이 함께 먹기 때문에 수저의 사용을 조율해야 한다. 여기엔 민첩하고 정교한 손놀림이 요구된다.
#한국의 젓가락
Stainless Steel 1 Set Korean Style Metal Chopsticks Spoon Set, Amazon.com
한국에선 젓가락이 1800년 전경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18 BC- 660 AD) 왕실에선 음식에 독극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은수저를 사용했으며, 평민들은 쇠수저를 썼다. 삼국시대엔 청동 젓가락, 조선 중기 무렵부터는 놋쇠 젓가락, 1970년대 이후부터는 스테인리스 젓가락 등 금속제 젓가락을 주로 사용해왔다. 한식엔 김치같은 절임 음식이 많기 때문에 나무보다는 금속이 위생적이다. 금속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에 비해 짧고, 납작한 편이다.
중국과 일본은 젓가락 위주이며 숟가락은 부차적이다. 한국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수저)는 동등하다. 국과 밥은 숟가락으로, 요리와 반찬은 젓가락으로 먹는다. 이어령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국물 음식이 많아 수저를 함께 쓰며, 숟가락을 놋쇠나 은으로 만들어 젓가락과 세트로 맞추었다고 한다. 한국의 수저에는 음양의 철학이 내재되어 있다. 밥을 먹기엔 나무 젓가락이 쉽지만, 한국인들은 숟가락을 사용하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금속 젓가락은 무겁고 미끄러워서 중국과 일본 젓가락보다 사용하기 어려운 편이다.
#중국의 젓가락
중국은 젓가락의 본국이다. Q. 에드워드 양은 저서 '젓가락(Chopsticks)'에서 중국 신선기 문화 유적지에서 젓가락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긴 뼈막대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기원전 5천년 경 이미 젓가락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두개의 막대기, 젓가락은 사람의 손가락을 연장한 것이다.
젓가락을 식사에 사용한 것은 약 3천여년 전으로 중국에선 끓이거나 찌는 요리법이 발달하면서 젓가락은 뜨거운 국에 들어있는 건더기를 건져먹는 용도로 쓰였다. 평민은 대나무 젓가락을 썼으며, 부유층은 상아나 금, 은, 동 젓가락을 사용했다. 중국인들은 큰 원형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덜어먹기 때문에 운반의 용도로 젓가락이 길다. 튀김과 볶음 요리 등 부피가 크고 무거워서 젓가락 끝이 뭉툭하며 굵다.
#일본의 젓가락
일본은 한국보다 300여년 뒤인 1천500여년 전부터 젓가락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인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지 않고, 개인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밥그릇을 들고 먹는다. 국 그릇도 들고 마신다. 젓가락 끝이 뾰족한 것은 생선 가시를 잘 발라내기 위한 것. 주로 나무 젓가락을 사용하며, 도기나 칠기 젓가락도 있다. 젓가락은 받침대 위에 올려 가로로 배치한다.
일본에선 1980년부터 젓가락의 날(8월 4일)을 제정해 젓가락 사용법을 교육하고, 화염 속에 젓가락 다발을 던져 태우며 건강을 빌어왔다. 한국에선 2015년 청주에서 열린 제 1회 젓가락 페스티벌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1990-1991)의 제안에 의해 11월 11일을 '젓가락의 날'로 선포했다. http://www.kstick.co.kr
#이어령 교수 '젓가락 예찬'
2015년 제1회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에서 이승훈 청주시장(왼쪽)과 이어령 교수. Photo: 이어령저작권보존위원회
"먹는 도구의 이름이 인체와 연결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숟가락,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이다. 그런 면에서 젓가락은 몽둥이와 정반대의 속성을 지녔다. 몽둥이는 주먹의 연장이자 근육의 연장이지만 젓가락은 손가락의 연장이자 신경의 연장이다. 힘의 상징인 몽둥이는 주먹보다 크고 뭉툭하지만, 섬세함의 연장인 젓가락은 손가락보다 가늘고 뾰족해야 한다. 젓가락은 내 몸의 피와 신경이 통해 있는 아바타인 셈이다.” -이어령 교수-
2019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 포스터/ 이종국, 분디나무 젓가락, 청주 젓가락 페스티벌. 사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옹알이를 하며 말을 배우듯
아가야 이제는 젓가락을 쥐거라.
할머니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천 년 전 똑같이 생긴 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셨지.
그리고 젓가락처럼 늘 짝을 이루어
함께 일하고 사랑하며 오랜 날을 지내셨단다.
아느냐. 아가야 젓가락이 짝을 잃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네가 젓가락을 잡는 날
오랜 역사와 겸상을 하고
신라 사람, 고구려 사람, 백제 사람 그리고
한국인이 되고 아시아인이 되는 거란다.
아가야 들리느냐 부엌에서 도마질하는 어머니
먹기 좋게 음식을 썰고 다지는 그 마음의 소리 있어
오늘도 우리는 먹는다. 젓가락 숟가락만으로.
아! 이 생명공감(生命共感),
깃발처럼 젓가락을 들고 오너라.
오늘 아침 처음 젓가락을 잡은 내 아가야.
-이어령, '생명공감(生命共感) 속으로'-
젓가락에 관한 책들
#미 한인 이민자 주력 업종: 병아리 감별사, 네일 살롱
Chickens, Keith Weller(USDA ARS) /Joy Joy Nails, 18m, 2017, directed by Joey Ally
1970년대 많은 한국인들이 병아리 감별사(chicken sexer) 교육을 받고 미국에 취업 이민을 왔다. 양계업에서 부화 직후 산란용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하는 이 기술자들은 항문에 있는 돌기, 날개를 통해 암수 병아리를 구별한다. 시력이 좋고, 섬세하고 빠른 손놀림과 고도의 집중력, 그리고 지구력이 요구되는 병아리 감별사는 한인들이 다수를 차지한 고소득 직종이었다.
오늘날 세탁업, 청과상회(델리)와 함께 미국 내 한인 이민자들의 주요 업종인 네일업계 역시 한인들의 손재주가 빛나는 업종이다.
1970년대 이전 뉴욕의 네일살롱 대부분은 러시아계 이민자들이 운영했었다. 이후 러시아계 이민자들의 영어와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른 업종으로 이전해갔고, 교육수준이 높지만, 영어 장벽이 높았던 한인 이민자들로 대체됐다. 1992년 뉴욕 시내엔 1천400여개의 한인 네일살롱에서 1만여명의 기술자들을 고용했다. 이는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수치였다. 2013년엔 70%를 차지했으며, 3만여명의 한인 기술자가 일했다.
뉴욕한인네일협회(KANSA, Korean-American Nail Salon Association of New York)에 따르면, 2020년 1월 현재 뉴욕의 한인 네일업소는 2천여개, 뉴저지엔 1천400여개에 달한다. 중국, 베트남, 남미계가 네일업계에 진출하며 네일살롱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고급화, 차별화 전략으로 매니큐어, 페디큐어 외에도 페이셜 등 스킨케어와 마사지, 왁싱 등 스파를 도입하며 고급 살롱으로 진화했다.
2015년 5월 뉴욕타임스는 '반짝이는 매니큐어에 숨겨진 네일 미용사들의 어두운 삶(The Price of Nice Nails)'에서 한인들이 운영하는 뉴욕 네일업소의 노동착취 상황을 심층보도했다. 한편, 조이 앨리(Joy Ally) 감독은 뉴욕 한인 네일살롱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영화 'Joy Joy Nail'(2017)을 연출했다.
https://jinsoon.com
뉴욕의 한인 네일살롱 중 최진순(Jin Soon Choi)씨가 운영해온 웨스트빌리지의 진순 내추럴 핸드-풋 스파(Jin Soon Natural Hand-Foot Spa)는 고급화 전략, 기술, 서비스로 뉴욕 최고의 살롱이 됐다. 진순 내추럴 핸드-풋 스파는 기네스 팰트로, 사라 제시카 파커, 테일러 스위프트, 앤 해서웨이, 세레나 고메즈 등 유명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1991년 미국으로 이주한 최진순씨는 네일 기술을 익힌 후 1999년 이스트빌리지에 자그마한 살롱을 연 후 웨스트빌리지, 어퍼이스트사이드, 트라이베카에 럭셔리 살롱 4곳과 네일 컬러 브랜드 'JINsoon Nail Lacquer'를 운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네일계의 도사(Nail Guru)'로 부른 최진순씨 역시 한인 특유의 정교하고 치밀한 손기술과 감각이 있었기에 뉴욕 최고의 네일 아티스트가 된 것이다. 수족 스파(Hand & Foot Treatments)로 Essence of Soul/The Balm of Purity/Summer Oasis/Breath of Milk and Honey/Magic Clay Slipper/Spirit of the Beehive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연광철씨는 이용훈씨와 같이 세계 오페라계를 빛낸 인물이라 자랑스럽습니다. 라메르무어를 감상할려고 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