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Modern/Contemporary Artists
2022.07.23 22:45

Artist and Music (3) 잭슨 폴락(Jackson Pollock)과 재즈

조회 수 286 댓글 1

Jackson Pollock and JAZZ 

재즈와 액션 페인팅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일한 다른 창조적인 것은 재즈다."

-잭슨 폴락-

 

0000000MM101 - Jackson Pollock Jazz.jpg

Jackson Pollock, Jazz, 1998, MoMA/ Ornette Coleman, FREE JAZZ, 1960

 

2014년 여름 롱아일랜드 햄턴 스프링스의 폴락-크래스너 하우스(Pollock-Krasner House)에 갔을 때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거대한 물고기 판화가 걸린 키친과 거실의 재즈 레코드 컬렉션이었다.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1912-1956)은 요리광이자 재즈광이었다.  

 

잭슨 폴락은 알콜중독과 우울증에 반항적 기질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1940년대 말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의 명성을 누리다가 붓을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액션 페인팅을 포기한 후 자기파괴적인 생활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잭슨 폴락과 재즈

 

IMG_4733.JPG

Jackson Pollock: A Collection Survey, 1934–1954, Nov 22, 2015–May 1, 2016, The Museum of Modern Art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물감을 붓거나, 힘찬 붓놀림으로 그린 폴락의 회화는 재즈와 닮은 점이 많다. 즉흥성과 자유로움은 재즈와 추상표현주의의 골격이다. 

 

재즈 팬이었던 폴락은 이스트빌리지의 재즈클럽 파이브스팟카페(Five Spot Café)에서 종종 재즈 콘서트를 관람했다고 한다. 부인인 화가 리 크래스너(Lee Krasner, 1908-1984)에 따르면, 폴락은 밤낮으로 재즈를 들었다. 즐겨 듣던 음악은 뉴올리언스 재즈, 스윙 밴드,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루이스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등이었으며, 폴락은 크래스너에게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일한 다른 창조적인 것("(jazz was) the only other creative thing happening in the country)"이라고 말했다. 

 

 

pollock-jazz.jpg

폴락-크래스너 하우스의  거실. Studio at Pollack-Krasner House & Study Center.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http://sb.cc.stonybrook.edu/pkhouse

 

폴락은 재즈와 비밥(BeBop, 빠른 템포, 비대칭적 악구, 복잡한 멜로디에 치중한 스윙재즈. 핫 재즈)의 자유 형식(free style), 리듬과 에너지를 사랑했다. 폴락의 액션 페인팅은 제스쳐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굵은 붓질, 흩뿌림, 얼룩 등으로 즉흥성이 담겨 있다. 폴락의 역동적인 캔버스는 자유로움, 리듬과 즉흥성이 표현된 "재즈 심포니"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폴락은 자신의 그림 감상법에 대해 "음악을 즐기는 것처럼 즐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I think it should be enjoyed, just as music is enjoyed)"고 말한 바 있다.

 

 

z-house.jpg

폴락-크래스너 하우스의 스튜디오. Studio at Pollack-Krasner House & Study Center  http://sb.cc.stonybrook.edu/pkhouse

 

그러면, 폴락은 그림을 그릴 때 재즈를 들었을까? NO. 폴락의 롱아일랜드 작업실에 전기가 설치된 것은 1953년이었다고 한다. 그 무렵 폴락은 액션 페인팅을 중단했었다. 

 

2006년 MoMA가 잭슨 폴락의 레코드 컬렉션에서 선별한 루이 암스트롱, 빌리 할러데이, 카운트 베이시, 듀크 엘링턴, 젤리 롤 모튼, 콜만 호킨스, 라이오넬 햄턴 등의 1930-40년대 재즈 17곡을 모은 'Jackson Pollock: Jazz' CD를 냈다. 다음은 수록 곡이다. 

 

1 Jelly Morton and His Red Hot Peppers/Beale Street Blues

2 Louis Armstrong and His Orchestra/Lazy River

3 Louis Armstrong/Mahogany Hall Stomp

4 Count Basie and His Orchestra/One O'Clock Jump

5 Billie Holiday/I Got a Man Crazy For Me (He's Funny)

6 Duke Ellington/Delta Serenade

7 Artie Shaw and Orch/It Had To Be You

8 Billie Holiday/When a Man Loves a Woman

9 Duke Ellington/Solitude

10 Fats Waller/Caolina Shout

11 Count Basie and Orch/Boogie Woogie

12 T Bone Waller/I Got a Break Baby

13 Lionel Hampton/Central Avenue Breakdown

14 Coleman Hawkins/Boff Boff (Mop Mop)

15 Coleman Hawkins/My Ideal

16 Lionel Hampton/ Jack The Bellboy

17 Louis Armstrong/St. James Infirmary

https://www.amazon.com/Jackson-Pollock-Louis-Armstrong-Orchestra/dp/B00003E4FM

 

 

오네트 콜만과 잭슨 폴락 

 

whitelight.jpg Free_Jazz_-_A_Collective_Improvisation.jpg

Jackson Pollock, White Light, 1954, MoMA/ Ornette Coleman, FREE JAZZ, 1960

 

재즈 색소폰주자 오네트 콜만(Ornette Coleman, 1930-2015)은 잭슨 폴락의 열렬한 팬이었다. 1960년 자신의 앨범 'Free Jazz' 커버에는 폴락의 그림 '화이트 라이트(White Light, 1954)를 사용했다. 폴락은 1956년 사망했고, 콜만의 첫번째 레코드 'Something Else!!!!'는 1958년에 나왔다. 두 인물은  만날 기회가 없었다. 오네트 콜만의 첫 앨범은 비밥 재즈 스타일을 벗어났으며, 두번째 앨범은 더블 쿼텟을 구성한 즉흥 앨범 모음집이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가 소장한 '화이트 라이트'는 잭슨 폴락의 말년 작품이다. MoMA의 해설에 따르면, 1954년에 완성한 유일한 그림으로 폴락은 캔버스에 물감을 튜브에서 짜서 사용해 조각같은 흰색과 검은색 덩어리로 만들었으며, 젖은 물감에 붓으로 미묘한 마블링 효과를 냈다.     

 

 

001met5.JPG

Jackson Pollock, Autumn Rhythm (Number 30, Detail), 1950,  8' 9" × 17' 3",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트럼펫주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했던 콜만은 '프리 재즈'의 주요 창시자로 비밥의 화음과 하모니를 기반으로 한 구조를 버리고, 즉흥연주와 부조화의 접근방식을 강조한 아방가르드 재즈 뮤지션이었다. 콜만은 맥아더 천재상(1994), 그래미상 평생공로상(2007), 퓰리처상(2007), 버클리음대, CUNY, 미시간대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네트 콜만도 1959년엔 잭슨 폴락이 생전 즐겨 찾았던 파이브스팟카페에서 공연했다. 이 클럽에는 폴락 뿐만 아니라 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조안 미첼, 그레이스 하티간 등 당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과 조각가 데이빗 스미스, 그리고 잭 쿠리악, 프랭크 오하라, 알렌 긴스버그 등 작가들이 드나들었다.  1957년엔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쿼텟이 6개월간 거주 밴드로 출연했으며, 색소폰주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도 함께 연주했다. 

 

 

 

JACKSON POLLOCK (1912-1956)

 

life1949.jpg

1949년 LIFE지에 대서특필된 잭슨 폴락

 

제 2차세계대전 후 뉴욕을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만드는데 공헌한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락은 44세의  굵고 짧은 삶을 살았다. 

 

1912년 와이오밍주의 코디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폴락은 LA 매누얼아트고등학교에서 폭행으로 퇴학당한 후 18세에 화가 지망 형과 뉴욕으로 왔다. 아트스튜던트리그(Art STudents League)의 화가 토마스 하트 벤튼(Thomas Hart Benton)으로부터 배우면서 그의 집에서 베이비시터로도 일했다. 이때 뉴욕에 왔던 멕시코 벽화가 호세 클레멘테 오르즈코(José Clemente Orozco, 1883-1949)의 영향을 받는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의 한 프로그램이었던 공공미술사업국(WPA)의 프로젝트에 참가해 돈을 벌었다. 1936년 뉴욕에서 멕시코 벽화가 데이빗 알파로 시퀘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1896-1974)의 워크숍에 참가해 액체 물감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이 경험은 훗날 액션 페인팅의 영감이 된다. 1937년부터 알콜 중독과 우울증으로 정신치료를 받았으며, 그해 MoMA에서 열린 피카소 전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moma1.JPG

Jackson Pollock, One: Number 31, 1950, Oil and enamel paint on canvas, 8' 10" x 17' 5 5/8", The Museum of Modern Art

 

1941년 브루클린 출신으로 4살 연상의 유대계 화가 리 크래스너를 만났고, 아트딜러이자 콜렉터였던 페기 구겐하임에게 발탁되어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작업할 수 있게 된다. 1945년 크래스너와 결혼 후 롱아일랜드 이스트햄턴의 스프링에서 어부의 집을 매입해 보금자리 겸 작업실을 마련했다. 

 

파블로 피카소가 모든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고 생각한 잭슨 폴락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민했다. 1946년 작업실에서 이젤을 버리고, 캔버스를 바닥에 깐 후 걸어다니며 물감을 털어트리는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 액션 페인팅을 시작했다. 무의식에서 뽑아낸 제스추어 페인팅은 폴락을 미술계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1949년 베티파슨스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앞두고 ‘라이프(Life)’ 잡지가 “이 남자가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생존 화가인가”라는 제목으로 4페이지에 대서특필한다. 

 

 

001met.jpg

Jackson Pollock, Autumn Rhythm (Number 30), 1950,  8' 9" × 17' 3",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러나, 폴락은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1950년경 드립 페인팅을 포기했다. 1951년부터는 검은 물감으로 그렸고, 전시회에서는 한점도 팔리지 않았다. 이에 폴락의 알콜 중독은 더욱 심화됐고, 외도하면서 크래스너와의 관계도 악화된다. 1956년 폴락은 그림을 중단했다. 그해 8월 폴락은 애인 루스 크리그만, 그녀의 친구와 만취해 운전하다가 집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즉사했다. 

 

할리우드에선 2000년 에드 해리스가 주연, 감독으로 전기영화 '폴락(Pollock)'이 제작됐다. 

 

 

*천재 화가와 두 여인 <1> '미국의 반 고흐' 잭슨 폴락

*천재화가와 두 여인 <2> '잭슨 폴락의 구원자' 리 크래스너 

*천재화가와 두 여인 <3> '뉴욕화단의 팜므 파탈' 루스 클리그만 

*천재화가와 두 여인 <4> 폴락-크래스너 하우스 

*잭슨 폴락 회고전(1934-1954)@MoMA, 3015

*빵굽는 화가 잭슨 폴락 요리책 Dinner with Jackson Pollock 출간

 

?
  • sukie 2022.08.18 10:32
    화가 잭슨 폴락을 잘 읽었습니다. 그가 뛰어난 작가라해도 그의 사생활을 보니까 그의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이 깡그리채 미친 붓칠로 보였습니다. 30대 후반부터 술에 찌들려서 알콜중독자로 전락했고 교통사고로 44살에 요절한 그가 더 살았어도 좋은 작품은 못 남겼을 것 같습니다.
    재즈광이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그의 그림과 재즈가 궁합이 잘 맞는 느낌입니다.
    잭슨 폴락의 그림이 1억 수천만불이라니 이해가 안가네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