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황제' '브라질의 국보' 펠레(Pelé, 82) 별세
펠레 Pelé (1940-2020)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잠들다
아프리카 토고에서 2020년 펠레의 80세 생일을 기해 발행한 우표. 2020 Brazilian Soccer Player Pele - Stamp Souvenir, Togo
브라질에 3회(1958, 62, 70) 월드컵 우승컵을 이끈 전설의 축구 황제 펠레(Pelé)가 29일 상파울루에서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브라질 정부는 3일간 국가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브라질의 국보' 펠레는 1940년 미나스제라이스주의 시골마을 크레스 코라이소이스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드송 아란치스 두나시멘투(Edson Arantes do Nascimento), 부모는 미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의 이름을 따서 지어주었다. 펠레가 태어나기 직전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축구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축구를 접었다. 펠레는 7살 때 기차역에서 구두닦기를 하며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면서 마을에서 걸레를 돌돌 말아 공을 만들어 맨발로 축구를 했다.
펠레는 평생 1363회의 경기에서 1281골을 기록했다. 1970년대 초 펠레가 은퇴하자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브라질 정부에 편지를 보내 펠레를 미국에서 뛰게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정계에 진출한 펠리는 체육부 장관(1995-1998)과 친선대사를 역임했다.
그는 취미로 기타를 연주했으며, 브라질 팝스타에게 여러 곡을 작곡해주었으나 이름을 걸지는 않았다. 그는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대중이 작곡가 펠레와 축구선수 펠레를 비교하기를 원치않았다. 축구에서 내 재능은 신의 선물이었고, 음악은 재미로 한 것 뿐이었다"고 말했다. 펠레는 1981년 할리우드에 진출 존 휴스턴 감독의 '빅토리(Victory)'에서 실베스터 스탤론, 마이클 케인과 공연하기도 했다.
2007년 펠레 자서전/ 아프리카판 '타임'지의 표지
투병 중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시청한 펠레는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에게 "우승할 자격이 있다", 준우승을 거둔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에겐 "축구의 미래"라고 전했다. 펠레의 등번호 10번을 달고 뛰어온 브라질의 축구스타 네이마르는 인스태그램에 "펠레는 축구를 예술로 바꿨다. 축구와 브라질은 왕(펠레) 덕분에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마법은 남아있다. 축구는 영원하다"고 올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00년 그를 '20세기 최고의 선수'로 선정했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펠레는 나의 이론과 모순되는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한명이었다. 15분의 명성 대신 15세기의 명성을 갖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펠레는 14세에 만난 로즈메리 촐비와 26세에 결혼, 1남 2녀를 두었다. 촐비와는 1982년 이혼했으며, 1994년 심리학자이자 가스펠가수 아씨리아 세익사스 레모스와 결혼 쌍둥이를 두었다. 2016년엔 사업가 마르시아 아오키와 세번째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