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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은총의 교실
2023.06.12 21:10
(674) 허병렬: 샌드위치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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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교실 (88) Sandwich Syndrome
샌드위치에 대한 명상
샌드위치맨이 지나간다. 몸통 앞뒤로 늘어뜨린 보드지의 광고를 싣고 거리를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행인들이 안보는듯 광고를 읽으면서 지나친다. 이 경우 샌드위치맨의 존재는 희미하다. 이와는 달리 샌드위치의 정작 맛은 알맹이가 낸다. 얇게 썬 두쪽의 빵 사이에 고기나 달걀, 치즈, 야채 따위를 넣은 샌드위치는 무엇을 끼었느냐가 중요하다. 거기에 따라 이름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샌드위치 종류는 몇 가지가 되나. 수없이 많다. 무엇이나 좋아하는 것을 자유로 넣을 수 있으니까. 본래는 서양의 간편한 음식이었지만 요즈음은 김치 샌드위치, 불고기 샌드위치까지 생겼으니까 그 종류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샌드위치 모양은 일정한가. 그것도 아니다. 보통 네모진 것이 많지만 그것을 반으로 자르면 세모가 된다. 둥근 빵이나 베이글로 만든 것도 있고, 긴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도 있으니까 그 종류는 더욱 많아진다.
필자가 왜 요즈음 이렇듯 샌드위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을까. 그것은 한국 내 신문 제목에 '샌드위치 현상이 되었다'는 보도가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현상이 한국의 안보나 경제에 관계가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샌드위치 현상이 두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의 비유이므로 한국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음을 말한다고 이해한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이런 현상은 역사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이니까. 언론들이 말하는 뜻은 주로 경제적인 것을 가리킨다. 세계적으로 신뢰를 얻고 있는 일본의 고품질 생산력과, 세계의 거대한 공장이 된 중국의 추격을 당하고 있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한국의 현재 입지가 매우 곤란함을 말한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다행히 우수한 그룹에 속했음을 깨닫는다. 두 나라에서 받는 강한 자극은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창의력을 북돋우어 주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 국제간에는 하향 조정하는 평준화가 실시되지 않아서 노력에 따라 개성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또한 샌드위치라면 맛을 내는 부분이나, 그 특색을 표현하는 부분은 겉을 에워싸는 두쪽의 빵이 아니고, 그 알맹이임을 생각할 때 한국의 존재가 더욱 뚜렷해진다. 그러니까 '샌드위치가 된다'는 표현은 부정적인 뜻만 있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인 해석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말에는 '위기는 기회다'는 것이 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지혜가 생기고, 지혜를 노력으로 이어갈 때 눈부신 비약을 할 수 있다. 사람은 대개의 경우 어려움 속에서 가일층의 성장을 한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샌드위치 현상에 포함되는 나라들은 동반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제각기 가지고 있는 강한 의욕이 상호 자극하면서 활발한 성장력을 과시하게 되는 이로운 점이 있다. 이것이 바로 교육에서 능력별로 교실을 나누는 이유이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이란 다양한 것이다.
학과별로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학생이 따로 있다. 비슷한 능력의 학생들이 한 그룹을 이룰 때 눈부신 경쟁력이 생긴다. 교사들은 학생의 능력에 따른 교수방법을 취하게 된다.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능력을 평등하게 다루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점이다. 나라마다 개성과 성장 속도가 다르다.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은 인접한 나라들이 비슷하게 강한 성장 의욕을 가지고 있다. 이 상태는 학교에서 우수반에 속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들을 경쟁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성장을 돕는 동반자로 보면 어떨까.
이와 같은 생각은 '샌드위치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고자 하는 까닭이다. 한국에 이롭게 생각의 방향을 바꾸자는 것이다. 샌드위치 현상이 두 사이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 양쪽의 빵맛에 영향을 주어 샌드위치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생각은 자유롭기 때문에 막힌 담도 뚫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샌드위치 현상은 우리의 영양제이다.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